정보경의 개인전 《사유를 앞질러》가 오는 6월 19일부터 7월 5일까지 한남동 OMG에서 개최된다.
전시는 정보경 작가의 모노타입 작업으로만 구성된다. 전시에 소개되는 모노타입은 모두 자화상이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자화상은 전통적 의미의 초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작가는 자기 얼굴을 직접 재현하는 대신, 꽃병이나 인형, 사슴 같은 상상의 형상으로 자신을 그려낸다.
자기 얼굴을 바라보고, 그 얼굴을 그리는 자화상은 흔히 가장 직접적인 형식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어떤 작가에게 자화상은 정면 응시보다 오히려 우회와 변형을 통해 더 깊어진다. 자신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다른 형상 속에 자신을 숨기고 비틀고 이식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날것의 감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정보경의 개인전 《사유를 앞질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생각으로 자신을 규정하기 전에, 손과 몸이 먼저 움직인 자리에 남은 흔적들이다. 이번 전시는 그렇게 탄생한 모노타입 자화상들로 채워진다.
이 설정은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탐구해 온 정보경에게 자화상은 ‘내가 어떻게 생겼는가’보다 ‘나는 나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정면으로 붙잡기보다 우회하고 변형하며 화면 속에 드러내 왔다. 결국, 이번 전시의 자화상은 자기 복제나 자기 설명이 아니라, 자기 인식이 얼마나 흔들리고 미끄러지며 다른 형상 속으로 번져 가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들에 가깝다.
전시의 중심 매체인 모노타입은 매끈한 원판 위에 잉크로 그림을 그린 뒤 이를 종이에 전사하는 판화 기법이다. 일반적인 판화와 달리 같은 이미지를 반복하여 제작할 수 없고, 잉크가 마르기 전에 작업을 끝내야 한다. 곧 망설일 시간이 길지 않다는 뜻이다.
정보경은 작업에 대한 사유가 막힐 때마다 판화 공방을 찾았다고 한다. 머릿속 생각이 오히려 손을 붙들 때, 오래 머뭇거릴 수 없는 모노타입의 조건은 작가를 다시 몸의 감각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인 《사유를 앞질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 작업은 실제로 생각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자리에서 탄생했다. 모노타입은 계획된 완성보다 순간의 판단과 압력, 속도와 호흡이 더 큰 역할을 하는 매체다. 이런 의미에서 정보경의 이번 작업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몸이 먼저 반응하는가”에 더 가까이 서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보다, 자기 자신이 화면 위에 어떻게 흘러나오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판화에 대한 오래된 통념도 다시 묻게 만든다. 판화는 흔히 복수 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회화보다 덜 유일하고, 덜 직접적이며, 덜 독자적인 장르로 오해받아 왔다. 그러나 모노타입은 그 통념을 정면으로 비튼다. 판화의 형식을 빌리되 복제가 불가능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노타입은 “복제 가능한 매체를 통해 복제 불가능한 이미지의 만든다”라는 역설 위에 서 있다. 바로 그 점에서 판화 특유의 물질성과 우발성, 그리고 한 번뿐인 압인의 긴장감이 더 선명해진다.
또한, 모노타입은 작가 혼자만의 결과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쇄 공정을 이끄는 판화가와 스태프들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 점 역시 이번 전시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회화가 흔히 개인의 표현으로 읽힌다면, 모노타입은 개인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타인의 기술과 호흡을 통과해 비로소 완성된다.
즉, 정보경의 자화상은 철저히 개인적인 탐구이면서도, 동시에 협업의 결과로 만들어진 이미지다. 자기 자신을 다룬 작업이 오히려 타인과의 공동 작업 속에서 완성된다는 점은 이번 전시가 품은 또 하나의 역설이자 긴장이다.
《사유를 앞질러》의 또 다른 특징은 고스트 프린트(Ghost Print)의 소개에 있다. 고스트 프린트는 모노타입을 찍어낸 뒤 판 위에 남은 잔여 잉크로 다시 한번 인쇄하는 작업을 말한다. 보통은 본 인쇄 이후의 흔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것이 독자적 감각을 드러내는 주요 장치로 제시된다.
정보경과 남천우 디렉터(프린트아트 리서치센터)가 오랜 시간 협업해 만든 이 작업들은 작가가 즉흥적으로 쏟아낸 스트로크와 색채의 이면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결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첫 번째 인쇄가 표면의 발화라면, 고스트 프린트는 그 뒤에 남은 잔향 같은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전시는 자화상의 의미를 한층 더 넓힌다. 직접적인 자기 고백 대신 우회와 변형을 통해 드러나는 자화상, 그리고 한 번의 인쇄 뒤에 남은 흔적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이미지다.
정보경의 작업은 자아가 언제나 한 번에 완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보여 준다. 우리는 자신을 직접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더 진실한 것은 한 번 지나간 뒤에 남는 흔적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보이는 나”보다 “남겨지는 나”에 더 가까운 전시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전시 기간에 앞서 6월 12일부터 18일까지 프리뷰가 진행된다. 관람은 전화 또는 문자 예약을 통해 가능하다. 또한, 전문 홈스타일링 브랜드 메종 엘 바라와의 협업으로 정보경의 모노타입 이미지를 활용한 제품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이 협업은 전시 이미지를 단순한 감상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생활의 표면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예술이 벽 위에서만 머물지 않고 사물과 공간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 역시 이번 전시의 여운을 넓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사유를 앞질러》는 자화상에 관한 전시이면서, 동시에 이미지가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관한 전시다. 자기 자신을 그린다고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고, 판화라고 하지만 복제가 불가능하며, 하나의 인쇄가 끝난 뒤 남은 흔적이 또 다른 핵심 작업이 된다.
이 전시는 그렇게 익숙한 개념들을 조금씩 비껴가며, 오히려 그 틈에서 더 정직한 감각을 끌어낸다. 생각이 앞서면 때로는 이미지가 굳어 버린다. 그러나 손이 먼저 움직인 자리, 몸이 먼저 반응한 흔적 속에서 우리는 설명보다 더 진실한 어떤 형상을 만나게 된다. 정보경의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순간을 붙잡고 있다.
관람 예약은 전화 또는 문자(☎010-5718-9989)로 하면 되고, 전시 및 작품 관련 정보는 OMG 공식 웹사이트(www.omg-kr.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