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년 전 조선을 향해 건너온 한 외국인 선교사의 두루마리 편지가 복원을 거쳐 처음으로 공개됐다. 얼핏 보면 오래된 문서 한 점이 다시 세상에 나온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공개는 단지 낡은 종이를 살려낸 복원 작업이 아니다. 한국 근대 의료의 출발기와 당시 조선의 생활상을 함께 품은 기록유산을 오늘의 연구와 사회적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원장 이용철)은 제54주년 ‘보건의 날(4.7.)’을 맞아 양화진기록관이 소장하고 있는「로제타 셔우드 홀의 두루마리 기행 편지」를 전면 복원하여, 최초로 공개한다고 7일 밝혔다.
복원된 기록물의 주인공인 ‘로제타 셔우드 홀’은 국내 최초의 여의사 교육기관인 ‘조선여자의학강습소’ 설립했고, 국내 최초 한글 점자 교재를 제작하는 등 한국 현대 의학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녀는 선교사 은퇴(1933년) 후 미국으로 돌아가 1951년(85세) 생을 마감했다. 이후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이런 인물이 조선에 오기까지의 여정과 도착 직후의 현실을 직접 기록한 편지가 136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 우리 앞에 다시 놓인 것이다.
이번에 공개되는 기행 편지는 로제타가 1890년 의료선교를 위해 미국을 떠날 때부터 조선에 도착한 직후까지의 활동(1890.9.∼1891.1.)을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전하기 위해 쓴 것이다.
정갈한 영문 필기체로 낱장의 편지 94매를 이어 붙여 만든 이 편지는 가로 16.4cm, 세로 길이가 무려 31.8m에 달하는 방대한 두루마리 형태(총 2건)다.
편지에는 1890년 9월 4일 샌프란시스코항에서 증기선을 타고 호놀롤루와 일본을 거쳐, 10월 14일 조선에 도착하기까지 40일간의 태평양 횡단 노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이동 경로를 적은 사적인 편지이지만, 그 안에는 한 시대가 들어 있다.
조선 도착 이후 1891년 1월 초까지 3개월간의 기록은 더욱 특별하다. 136년 전 외국인 선교사의 시선으로 본 당시 척박했던 조선의 의료 환경과 주민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한국 근대 의료의 시작과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 기록은 단순히 “누가 무엇을 보았다”라는 차원을 넘어, 당시 조선이 어떤 의료 현실 속에 있었고, 그 사회가 어떤 일상적 표정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료로 읽힌다.
특히, 전통 한옥 진료소인 ‘보구녀관(普救女館)’의 모습, 가마와 전통 혼례, 고종이 청나라 사절단을 맞이하는 행렬 등 로제타가 직접 촬영한 희귀 사진 59점이 함께 부착되어 있어 당시 시대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문장과 이미지가 함께 시대를 증언하는 보기 드문 기록이다.
「로제타의 기행 편지」는 희귀본임에도 불구하고 부착된 비닐 테이프의 변색 및 접착제 경화와 당시 필기 매체인 아이언 겔 잉크(Iron Gall Ink) 의 부식으로 글자 부분이 갈색으로 변하고 종이가 바스러지는 등 훼손이 심화된 상태였다.
아이언 겔 잉크는 중세에서 19C까지 사용된 대표적 필기용 잉크로 철(iron), 탄닌(tannin) 성분이 산화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글씨 부분이 부식 및 갈변되며 종이가 떨어져 나간다.
또한, 기록물이 지름 0.3cm의 작은 나무 축에 32m 길이로 말려있어 꺾임, 접힘 등으로 활용이 어려운 상태였다.
국가기록원은 약 18개월에 걸쳐 오염물질 제거와 탈락된 글씨의 결실부를 복원용 한지로 보강하여 안정성과 보존성을 높였다.
또한, 두루마리 형태에 대한 물리적 손상 방지와 안정성 및 보존성 향상을 위해 원본 크기에 맞는 ‘굵게말이축’을 사용하여 말림의 횟수를 최소화해 편지를 안정화하고,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하여 복원처리를 완료했다.
‘굵게말이축’은 전통 회화의 족자, 두루마리 등을 보관할 때 주름, 꺾임 방지를 위해 굵게 마는 보조 도구다.
아울러, 이후 열람과 연구, 전시 등에 활용할 복제본 제작을 위해 고해상도 스캐너를 이용하여 디지털화를 진행했다.
기록은 남아 있다고만 해서 보존된다고 할 수는 없다. 읽을 수 있어야 기록이고, 다룰 수 있어야 유산이다. 복원 후 이 편지는 제대로 살아 그때의 사실을 전달해 주게 되었다.
복원된「로제타 셔우드 홀의 두루마리 기행 편지」의 원문은 소장처인 양화진기록관 누리집(https://yanghwajinarchives.org)과 국가기록원 누리집(www.archives.go.kr)을 통해 국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이처럼 역사적 가치가 높은 국가기록물의 보존 수명을 연장하고 후대에 전달될 수 있도록, 2008년부터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현재까지 81개 민간·공공기관의 기록물 9,272매를 복원해 왔다.
큰 수고와 노력을 쏟아온 결과다. 숫자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숫자 하나하나가 사라질 뻔한 시간의 조각을 다시 사회의 언어로 되돌려 놓았다는 사실이다. 기록은 복원을 통해 다시 읽히고, 연구를 통해 다시 해석되며, 전시와 교육을 통해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온다.
강요섭 양화진기록관장은 “우리나라의 근대 의료와 교육의 초석을 놓은 로제타 셔우드 홀 선교사의 기록물이 국가기록원의 도움으로 다시 숨을 쉬게 되어 깊이 감사드린다”라며, “선교 역사와 근대사를 연구하는 소중한 기록유산으로 널리 활용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용철 국가기록원장은 “이번「로제타 셔우드 홀의 두루마리 기행 편지」가 복원돼 보건 의료 종사자를 기리기 위한 보건의 날에 국민에게 공개되고, 연구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라며, “앞으로도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우수한 복원 기술로 소중한 기록유산들이 안전하게 영구 보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공개는 한 선교사의 오래된 편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문서가 아니라, 한 시대의 의료 현실과 생활 풍경, 그리고 낯선 땅에서 사람을 살피고 기록했던 시선까지 함께 되살려내는 일이다.
기록은 과거를 박제하는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사회적 기억의 매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복원은 단순한 공개 행정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후대에 남겨야 하는지, 또 무엇을 잃지 말아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되물은 작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