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조직과 사람은 늘어나는데, 정작 사회는 왜 쉽게 달라지지 않는가.
좋은 의도는 많고, 프로젝트도 적지 않고, 전문성도 높아졌는데 왜 현장에서는 “열심히 일했는데 판이 바뀌지 않는다”라는 피로감이 쌓이는가. 루트임팩트가 이번에 내놓은 연구는 바로 이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성장해 온 임팩트 생태계(Impact Ecosystem, 좋은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들과 조직의 전체 판)가 이제는 오히려 자기 관성과 익숙한 관행 속에서 움직임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의 확대가 아니라 구조 자체를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루트임팩트(사회혁신과 임팩트 생태계를 지원하는 조직)는 임팩트 생태계의 현주소를 진단한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시스템 체인지(System Change, 문제를 만드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 관점에서 생태계의 다음 단계를 모색하기 위한 새로운 협력 방식을 제안했다.
루트임팩트가 진저티프로젝트(이번 연구를 함께 진행한 공동 연구 파트너), 임팩트리서치랩(임팩트 분야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조직)과 함께 진행한 연구 「판을 바꾸는 협력: 사회혁신 생태계에 던지는 새로운 제안」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임팩트 생태계 구성원 103명 가운데 37.9%는 현재 생태계를 성장이 정체된 ‘고착’ 국면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재를 ‘성장’ 국면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22.3%에 그쳤다.
이 수치는 단순한 체감 조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임팩트 생태계가 양적으로는 확장됐을지 몰라도, 그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답답한 정체 상태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를 단순한 침체나 실패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구조와 관행이 안정화되면서, 새로운 시도와 전환의 가능성이 줄어든 상태로 해석했다. 쉽게 말해 생태계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져 움직임을 잃어버린 상태라는 진단이다.
현장에서 포착된 징후는 더 선명하다. 연구는 생태계의 고착을 보여 주는 특징으로 △전문성은 높아졌지만 서로의 언어와 관점은 멀어진 ‘분절된 각개전투’ △정량 성과 중심의 ‘숫자 강박’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기계적 협업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는 관행 등을 제시했다.
이 표현들은 다소 날카롭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사회혁신 생태계가 제도화되고 전문화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문제를 함께 보는 힘보다 자기 영역을 방어하는 힘이 더 강해졌다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분절된 각개전투’라는 표현은 지금의 임팩트 생태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처럼 들린다. 각 조직은 각자의 언어로 성과를 말하고,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전문성을 높인다.
그러나 사회문제는 그렇게 나뉘어 있지 않다. 돌봄은 돌봄만의 문제가 아니고, 빈곤은 빈곤만의 문제가 아니며, 청년 문제도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거, 교육, 노동, 관계, 건강, 지역, 정책이 얽혀 있는 복합 문제를 각자 따로 풀겠다고 나서는 순간, 생태계는 전문화될수록 오히려 분절된다.
연구 결과는 이런 현실을 더 뚜렷하게 보여 준다. 응답자의 83.5%는 오늘날의 사회문제가 과거보다 더 복잡해졌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히 문제가 많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제들이 서로 더 깊게 얽히고, 원인과 결과가 한눈에 드러나지 않으며, 한 영역의 해법이 다른 영역의 문제와 맞물리지 않으면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따라서, 연구진은 더 많은 사업을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를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와 관계, 자원 흐름, 사고방식까지 함께 변화시키는 ‘시스템 체인지’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프로젝트 중심의 대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해의 사업비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정해진 지표를 달성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방식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바꾸기 어렵다.
왜냐하면 문제는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그것을 반복 생산하는 힘은 제도와 관계망, 이해관계, 자원 배분, 익숙한 관행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체인지는 결국 “무엇을 더 할 것인가”보다 “왜 이 문제가 계속 되풀이되는가”를 묻는 접근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4일 서울 성동구 KT&G 상상플래닛에서는 ‘플래닛 서밋 2026: 판을 바꾸는 협력의 조건’이 열렸다. 행사에는 사회혁신 분야 활동가와 연구자, 투자자, 중간지원조직 관계자 등 생태계 구성원 54명이 참석해 연구가 제기한 문제의식과 앞으로의 협력 방향을 함께 논의했다.
보고서가 단지 진단서로 끝나지 않고, 생태계 내부의 토론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상징적이다. 문제를 아는 것과 그 문제를 함께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인데, 루트임팩트는 적어도 그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패널 토크에 참석한 임팩트얼라이언스 전일주 팀장은 “임팩트 생태계가 성장과 함께 더욱 세분화되면서 서로 다른 영역 간 간극이 커지고 있다”라고 진단하며, “앞으로의 협력은 이러한 분절을 연결하고 공통의 문제 인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혁신단(SSIR Korea 센터) 강창모 센터장은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기 성과 중심의 접근을 넘어 서로 다른 주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 여러 주체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사람이나 조직)’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라며, “생태계 차원의 협력 구조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임팩트 생태계가 이제 단순히 ‘좋은 조직이 많아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준다. 중요한 것은 좋은 조직들 사이를 누가 연결하느냐, 각자의 전문성이 어떻게 공동의 문제 인식으로 번역되느냐, 그리고 그 연결을 유지하는 구조에 누가 투자하느냐다.
결국 시스템 체인지의 실질적 조건은 선한 의지의 총합이 아니라, 그 의지들을 엮어 구조적 변화로 전환하는 협력의 설계에 달려 있다.
패널 토크와 연구 발표에 이어 루트임팩트는 협력 실험 계획도 공개했다.
연구에서 제안한 방향을 실제 현장에서 검증하고자 오는 8월부터 ‘돌봄’을 첫 번째 파일럿(Pilot Project, 먼저 시험해 보는 작은 실험) 주제로 선정하고, 연구기관·공공·기업·솔루션 조직·당사자가 함께 참여하는 ‘시스템 체인지’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개별 사업의 성과를 넘어 새로운 협력 방식을 실험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발표자로 나선 루트임팩트 박은비 매니저는 “이번 연구가 생태계 구성원들에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할 수 있는 하나의 지도가 되기를 바란다”라며, “지도는 결국 직접 걸어보기 위해 존재하는 만큼 이제는 연구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새로운 협력 방식을 실험하고 검증해 볼 차례다”라고 말했다.
임팩트 생태계의 고착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새로운 해답을 한 조직이 단독으로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또 다른 고착이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루트임팩트는 완성된 모델을 선언하기보다, 함께 배우고 조정하고 다시 설계하는 과정을 열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지금 생태계에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태도일지 모른다. 더 뾰족한 답보다 더 넓은 질문, 더 빠른 성과보다 더 깊은 구조 이해, 더 많은 프로젝트보다 더 나은 협력의 문법이 필요하다.
루트임팩트는 이번 연구를 시작으로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실험과 학습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 전문은 루트임팩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은 왜 우리는 열심히 일했는데도 판이 바뀌지 않는다고 느끼는가이다. 그 답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사회문제가 더 복잡해졌다면, 해법도 더 복합적이어야 한다. 전문성이 높아졌다면, 이제는 그 전문성을 연결하는 방식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시스템 체인지는 거창한 유행어가 아니라, 더는 예전 방식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생태계가 자신에게 던지는 생존의 질문에 가깝다. 루트임팩트의 이번 보고서는 그 질문을 피하지 말자고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