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20일 전북특별자치도청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전북대학교와 ‘지역 성장엔진 연계 인재 양성 및 공동연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이원택 전북특별자치도지사, 양오봉 전북대학교 총장, 신승규 현대자동차그룹 RH PMO 부사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는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세우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설을 운용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산업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갈 사람이 함께 준비돼야 한다. 지역에 투자가 이뤄져도 필요한 인재를 외부에서만 충원하고, 지역 청년이 그 성장 과정에서 배제된다면 산업단지는 만들어질 수 있어도 지역의 미래까지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자동차가 전북특별자치도, 전북대학교와 함께 미래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과 공동연구 체계 구축에 나선 것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피지컬 AI와 로봇, 수소에너지 분야의 계약학과를 지역 대학에 설치하고, 기업의 실제 기술 수요를 대학 교육과 연구에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기업 투자와 교육, 연구, 지역 정착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번 협약은 전북 지역에서 피지컬 AI, 로봇, 수소에너지 등 첨단산업 계약학과를 설립해 기업 수요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산학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전북 새만금에 구축하고 있는 ‘새만금 AI 밸리’의 실행력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 내 첨단산업 생태계와 일자리 기반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 계약학과로 산업 현장과 대학 교육의 간격 줄인다
세 기관은 우선 피지컬 AI, 로봇, 수소에너지 등 미래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계약학과 설치를 추진한다. 계약학과는 기업과 대학이 협력해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요구되는 역량을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대학 교육이 학문적 기초와 이론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계약학과는 특정 산업의 기술 변화와 직무 수요를 더욱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북대학교는 계약학과 설치에 필요한 학사제도와 교육과정, 학생 선발 등 종합 운영 체계를 마련한다. 현대자동차는 산업 수요를 제시하고 교육과정을 자문하며, 실무 전문가의 교육 참여를 지원한다. 전북특별자치도는 협약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 지원을 담당한다.
이번 협력에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새로운 학과를 하나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지역의 미래산업 투자 계획과 대학 교육과정을 직접 연결하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술과 역량이 교육에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데에 있다. 피지컬 AI와 로봇, 수소에너지는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인 만큼 교과서와 강의실만으로 기술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기업이 가진 현장 경험과 대학의 교육·연구 역량을 결합해야 하는 이유다.
현대자동차는 임직원과 분야별 전문가가 객원교수, 특강 강사, 프로젝트 멘토 등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산업 현장의 기술 흐름과 실제 프로젝트 운영방식을 보다 가까이서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대학 교육을 기업의 단기 직무훈련으로 축소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론과 현장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학생들이 기술의 실제 적용 맥락을 이해하도록 돕는 구조로 볼 수 있다.
계약학과 설립 일정과 교육과정 이수 학생의 채용 연계 여부, 채용 규모 등은 향후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협약만으로 졸업생의 채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지역에서 교육받은 인재가 지역 산업과 연결될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 교육을 넘어 공동연구로… 산업 수요에서 과제 발굴
세 기관은 맞춤형 인재 양성과 함께 미래산업 분야의 공동연구와 기술협력 기반도 강화한다. 이를 위해 산업계와 대학 연구자가 함께 연구 과제를 발굴하고 논의하는 ‘기술협력 포럼’을 운영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는 산업 수요를 바탕으로 연구 과제를 제안하고, 연구 방향 설정과 전문가 참여, 공동연구 수행을 지원한다. 전북대학교는 연구 공간과 인력, 학내 연구조직을 연계하며 연구의 실행 기반을 마련한다. 전북특별자치도는 행정·재정 지원과 함께 지역 정책 및 제도와의 연계를 담당한다.
이러한 구조는 산학협력의 방향을 논문이나 단기 과제 중심에서 실제 산업 문제 해결 중심으로 옮기려는 시도다. 기업은 생산과 기술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대학은 이를 학문적 분석과 연구 역량을 통해 풀어 갈 수 있다. 공동연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기업은 기술혁신의 속도를 높이고, 대학은 연구성과의 현장 적용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
협약 기관들은 우선 산업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시범 과제를 중심으로 공동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후 연구성과와 우수성이 확인된 분야를 중심으로 융합연구소나 고등연구원 등 보다 큰 규모의 협력 체계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이는 처음부터 거대한 연구조직을 세우기보다, 실제 과제를 통해 협력의 가능성을 검증한 뒤 점진적으로 규모를 넓히겠다는 접근이다. 산학협력은 협약서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연구 주제의 적합성, 기관 간 역할 분담, 성과 활용 방식이 실제 과제 수행 과정에서 확인되어야 장기적인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 연구성과를 기술이전과 사업화까지 연결
현대자동차와 전북자치도, 전북대학교는 공동연구가 선언적 협력에 머무르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실행형 산학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공동연구를 통해 확보한 성과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고, 미래 핵심 분야의 기술 교류와 기술이전, 사업화로까지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공동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연구 결과가 어디에서 끝나는가다. 보고서와 특허 등록에 그치면 기업과 지역이 체감할 수 있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반대로 성과가 생산공정 개선, 신기술 개발, 창업과 사업화, 새로운 일자리로 연결될 경우 산학협력은 지역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실질적 기반이 된다.
이번 협약은 교육과 연구를 따로 운영하지 않고, 인재 양성에서 공동연구, 기술이전과 산업 적용까지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학생은 교육과 프로젝트를 통해 산업을 이해하고, 대학 연구자는 기업의 실제 문제를 연구하며, 기업은 연구성과를 현장에 적용하는 구조다. 지방정부는 이 과정이 지역 정책과 산업 발전으로 이어지도록 제도와 재정을 뒷받침한다.
▼ ‘새만금 AI 밸리’의 지속가능성, 결국 사람에 달렸다
이번 협약의 배경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전북 새만금 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약 9조 원 규모의 ‘새만금 AI 밸리’가 있다. 새만금 AI 밸리는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 클러스터, 수전해 플랜트, 태양광 발전시설, AI 수소시티 등을 결합한 미래산업 생태계 구축 사업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2월 업무협약 체결 이후 계획된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사업 가운데 AI 데이터센터는 2027년 착공해 2029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 수전해 플랜트와 태양광 발전시설도 2027년 착공해 2029년 1차를 완공한 뒤 단계적으로 용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로봇 제조 클러스터는 2028년 공사에 착수해 2029년부터 1단계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새만금은 AI와 로봇, 수소에너지, 재생에너지가 결합된 복합 산업지역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첨단시설이 들어서는 것만으로 산업 생태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개발과 운영, 유지관리, 생산과 사업화를 담당할 인력이 지속해 공급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에 안정적인 교육·연구 기반이 없다면 기업은 외부 인재 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투자의 지역 파급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
이번 계약학과와 공동연구 협력은 바로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기반으로 볼 수 있다. 새만금 AI 밸리에 필요한 인재를 지역에서 직접 양성하고, 기업의 기술 수요를 전북대학교의 연구 역량과 연결함으로써 투자의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 기업 투자에서 지역 정착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세 기관은 기업 투자와 지역 인재 양성, 취업과 지역 정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고 있다. 지역의 학생이 지역 대학에서 미래산업을 공부하고, 산학 프로젝트와 공동연구를 경험한 뒤 지역 기업이나 관련 산업에서 일하게 된다면 첨단산업 투자의 효과는 지역 내부에 더 오래 축적될 수 있다.
이는 지역균형발전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도 고급 인력과 핵심 기술이 수도권에만 집중된다면 지역은 생산시설의 입지만 제공하고 부가가치는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다. 반면, 교육과 연구, 기업 활동이 지역 안에서 연결되면 기술과 인재, 일자리가 함께 축적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선순환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계약학과의 교육 내용과 산업 수요가 지속해 조정되어야 한다. 학생이 단기적인 특정 기업 기술에만 종속되지 않도록 학문적 기초와 폭넓은 직무 역량을 함께 갖추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채용 연계와 지역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경로가 마련되는지, 공동연구 결과가 실제 사업과 일자리로 이어지는지도 앞으로 확인해야 할 과제다.
현대자동차는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기업뿐 아니라, 인재를 육성하는 대학과 이를 지원하는 지역 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협력을 통해 육성한 지역 인재들이 미래 비즈니스의 핵심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인식은 첨단산업 경쟁이 단순한 자본과 시설의 경쟁을 넘어 인재 생태계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학과 함께 교육과 연구의 구조를 설계하고 지역 사회가 이를 뒷받침해야 장기적인 경쟁력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현대자동차와 전북특별자치도, 전북대학교의 이번 협약은 미래산업을 ‘유치하는 것’에서 ‘지역 안에서 키우는 것’으로 정책의 시선을 넓힌 사례라 할 수 있다. 새만금에 데이터센터와 로봇 공장, 수소 설비를 짓는 일이 산업의 외형을 만드는 것이라면, 계약학과와 공동연구 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그 산업을 지속시킬 내부 역량을 만드는 일이다.
지역의 미래는 건물의 규모보다 그 안에서 배우고 연구하고 일할 사람의 존재에 달려 있다. 이번 협력이 교육과 연구, 채용과 지역 정착까지 실질적으로 이어진다면 새만금 AI 밸리는 단순한 투자 프로젝트를 넘어 지역이 미래산업의 주체로 성장하는 모델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