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투데이 뉴스추천뉴스2026. 4. 29. 오후 6:31:55

‘생각 없음’의 의미

박시우 작가
‘생각 없음’의 의미

책은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다. 인간은 불과 바퀴만으로 문명을 이룬 것이 아니다. 생각을 저장하고, 시간을 건너 전하고, 서로 다른 시대의 정신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게 한 책이 있었기에 오늘의 문명도 가능했다. 

책을 통해 인류는 경험을 전수했고, 지식을 축적했으며, 자기 시대를 넘어서는 질문을 창출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독서는 단지 정보를 얻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재료를 공급받는 일이고, 자기 안에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훈련이며, 삶을 성찰하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가지 취미를 갖지 않는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의 재료를 스스로 차단하는 일과도 같다. 사람은 재료 없이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다. 읽지 않고,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삶은 결국 빈약한 내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생각은 공급받고, 부딪히고, 훈련되어야 비로소 깊어진다.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책은 내 생각을 대신해 주지 않지만, 생각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준다.
따라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의 결핍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그리고 생각의 결핍은 단순한 무지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시야를 좁히고, 자기 입장만 옳다고 여기는 아집을 키우며, 다른 관점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선에 빠지게 한다. 

생각이 없는 사람이 반드시 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악에 저항할 능력을 잃기 쉽다. 자기 삶의 방향을 점검하지 못하고, 자기가 속한 조직과 사회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며, 그저 주어진 명령과 관습, 유행과 편의에 따라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을 깊이 파고든 사람이 한나 아렌트다.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연구하며, 그의 죄가 단순히 잔혹한 악마성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각 없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아이히만은 피비린내 나는 잔혹성을 즐기는 괴물이기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체제에 순응하여 명령을 수행한 인물로 드러났다. 아렌트는 바로 이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악은 언제나 특별히 사악한 사람만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멈춘 평범한 사람이 체제와 명령 속에 자신을 맡길 때도 가능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악이란 늘 비범한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익숙한 질서에 순응하며, 자기 행동의 의미를 묻지 않는 일상적 태도 속에서도 자라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먼 과거의 독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선택을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에 협조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지 못한 채 편리함과 습관, 조직의 논리와 다수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길 때, 어느새 그는 악을 가능하게 하는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이런 논지에서 보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교양이 부족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자신이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는지조차 판단할 힘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동으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독서는 사람에게 멈추어 생각할 기회를 준다. 다른 시대의 사람과 대화하게 하고, 자기 생각을 의심하게 하며, 익숙한 신념을 다시 검토하게 만든다. 

그것은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자기 확신을 절대화하지 못하게 하며, 무엇보다 ‘나는 옳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한다. 이 질문이 사라질 때 사람은 위험해진다.

‘생각 없다’라는 말은 흔히 가볍게 쓰인다. 그러나 실은 대단히 무거운 말이다. 생각 없다는 것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 안에 윤리와 사상이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닥치는 대로, 편리한 대로, 유리한 대로 살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작은 타협일 수 있다. 조금만 눈감고, 조금만 모른 척하고, 조금만 자기 이익을 앞세우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반복되면 사람은 점점 자신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무감각과 무비판성이 ‘악의 평범성’이 자라나는 토양이 된다.

생각 없는 삶은 결국 외부의 힘에 끌려가는 삶이다. 광고가 말하는 대로 사고, 대중이 흥분하는 대로 흥분하고, 조직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시대가 편리하게 제공하는 대로 소비한다. 

자기 판단은 사라지고, 자기 성찰은 줄어들며, 자기 영혼의 방향을 묻는 것이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므로 생각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생각 없는 효율은 차갑고, 생각 없는 순응은 위험하며, 생각 없는 삶은 결국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해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이 점에서 독서는 단지 지식을 넓히는 일이 아니라, 양심을 깨어 있게 만드는 일이다. 좋은 책은 사람을 느리게 만든다. 즉각 반응하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자기감정과 판단을 점검하게 하며, 세상을 단순한 흑백으로 재단하지 못하게 한다. 

독서는 인간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복잡함은 혼란이 아니라, 성숙의 시작이다. 단순한 확신보다 숙고된 판단이 더 어렵지만 더 안전하며, 빠른 결론보다 깊은 성찰이 더 느리지만 더 인간적이다.

‘생각 없음’의 의미는 단순한 무관심이나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험하게 만드는 내면의 공백이다. 생각이 비어 있는 자리에는 편견이 쉽게 들어오고, 아집이 자라며, 권위에 대한 맹종과 타인에 대한 무감각이 뿌리내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하기 위해 읽어야 한다. 책은 인간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자기 시대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법도 가르쳐 준다. 바로 그 힘이 우리를 ‘악의 평범성’으로부터 지켜 주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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