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인공지능 시대라고 한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인간이 하던 많은 일들이 기계와 알고리즘으로 대체되거나 재편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 변화를 두고 효율의 시대, 속도의 시대, 자동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흐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오늘의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은 ‘창의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반복과 계산은 기계가 더 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에게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무엇을 새롭게 보고, 어떻게 다르게 연결하며, 어떤 방향으로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상상력과 판단력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창의성은 결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창의성을 아이디어의 새로움이나 성과의 차별성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창의성은 인간의 본질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
아무리 기발한 발상이라도 그것이 인간을 해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며 자연과 조화를 깨뜨리는 방향으로 쓰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창의성이 아니라 파괴적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성, 윤리성, 공동체성이다.
왜 이것이 전제되어야 하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의미를 묻고, 선과 악을 분별하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책임을 지는 존재다.
만일 인간이 인간됨을 실현하는 데 방해되는 방향으로 문명을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결국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는 일이다. 인간을 위해 만든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던 발전이 오히려 관계를 무너뜨리고 존엄을 해친다면, 우리는 발전의 이름으로 퇴보와 존재적 가치 부인을 선택한 셈이 된다.
따라서, 창의적 사고의 토대가 되는 지식은 인간의 존재적 가치와 본질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의 존재적 가치와 본질에 따른 넓은 정보와 깊은 학습, 복합적 사고 능력 없이 발휘되는 창의성은 공허해질 수 있다. 지식은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가치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인간다운가, 무엇이 공동체를 살리는가를 묻는 도덕성과 윤리성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지식은 쉽게 권력의 도구가 되고, 창의성은 경쟁의 무기가 된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교육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그 앎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인간다움을 바탕으로 한 목적 실현이 배제된 채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겉으로는 성취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자기 자신에게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사람은 수단이 아니라 존재이기 때문이다.
목표를 위해 자신을 끝없이 소모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희생하며, 삶의 의미와 균형을 잃어버리는 태도는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태도는 타인에게도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목표 달성을 위해 사람을 도구처럼 여기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절대선처럼 여길 때, 타인의 존엄과 공동체의 선은 쉽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꿈이라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꿈을 크게 가지라고 배운다. 물론, 꿈은 필요하다. 꿈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을 현재의 삶 속으로 끌어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크기만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 꿈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자연과의 조화를 깨뜨리고, 사람과의 공존을 해치며, 공동체의 상생을 무너뜨리는 꿈이라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결국은 공허한 욕망일 뿐이다. 꿈을 가지는 일도, 그것을 현실화하는 일도, 모두 자연과의 조화, 사람과의 공존과 상생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삶의 의미가 있다. 삶의 의미란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더 크고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 가는 데 있다. 혼자만의 성공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는 삶, 나의 성취가 타인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삶, 나의 발전이 공동체의 발전과 연결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적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 한 사람의 욕망을 채우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삶의 의미를 더 넓고 깊게 만들어 가며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 바로 인간 존재의 품격이다.
이 점에서 교육의 본질도 분명해진다. 교육은 단지 취업을 위한 훈련이 아니며, 성과를 위한 경쟁 시스템이어서도 안 된다.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식을 가르치되, 그 지식이 어떤 책임과 연결되는지를 함께 묻는 일이어야 한다. 사고력을 기르되, 그 사고가 공동체를 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세워 주는 일이어야 한다.
결국 교육은 능력을 키우는 일인 동시에 존재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것이 무너질 때 사회는 유능하지만, 위험한 사람들을 길러 내게 된다.
따라서, 정치도, 사회도, 문화도, 외교도, 국방도, 과학도, 기술도, 경영도 모두 이 원리 위에 바로 서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공동체의 선을 도모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그 분야의 발전은 정당성을 얻게 된다.
반대로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만큼이 오류다. 그만큼 인류는 손해를 입고, 그만큼 고통은 커진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삶은 불안해지고, 경제는 성장했는데 공동체는 해체되며, 국가는 강해졌는데 인간은 황폐해진다면, 그것을 결코 발전이라고 부를 수 없다.
오늘 우리는 꿈과 현실의 관계를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꿈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을 파괴하는 욕망이어서는 안 된다. 현실은 꿈을 시험하는 자리지만, 꿈의 방향을 잃게 만드는 감옥이어서도 안 된다.
결국 꿈과 현실은 인간다움이라는 기준안에서 만나야 한다. 그 만남이 이루어질 때 꿈은 비로소 희망이 되고, 현실은 단지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의미를 실현하는 무대가 된다.
인공지능 시대가 깊어질수록, 창의성이 중요해질수록, 우리는 더 자주 본질을 물어야 한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만드는가를, 얼마나 빨리 가는가보다 어디로 가는가를, 얼마나 크게 성공하는가보다 그것이 인간과 세계에 무엇을 남기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꿈은 사람을 살리고, 현실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다시 인간다움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