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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훈장-대통령 표창’ 받은 서현영, 생활축구 부흥 일조한 숨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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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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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투데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으스대는 게 아니라 내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KFA) 생활축구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서현영(79) 옹은 일평생을 두 가지 일에 몰두했다. 하나는 애향사업, 또 하나는 생활축구 부흥이다.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피난 온 그는 실향민 1세대로서 황해도 연백군 명예군수 직함도 갖고 있다. 이북도민 권익 신장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그는 지난해 10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그런 그가 애향사업만큼이나 애착을 갖는 일은 다름 아니라 생활축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서 위원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5년 동안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엘리트와 생활체육 일원화에 기여하는 등 생활축구 활성화의 기틀을 놓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2016년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가 통합된 이후에는 자문위원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활축구 발전을 위해 일했다.

‘KFA 홈페이지’가 2019년 세밑에 서 위원을 만났다. 그 나이 또래가 으레 그러하듯 호적 신고가 늦어 한국 나이로 여든을 넘긴 그는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신다”는 필자의 덕담에 서 위원은 “속은 썩었어요. 축구를 하다가 양쪽 무릎 인대가 모두 끊어져서 수술했습니다”라며 웃었다.

- 최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셨어요. 축하 드립니다.
“제가 실향민이라 애향사업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북도민을 위한 체육행사, 도민의 날 행사 등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제가 축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축구를 통해 실향민을 하나로 뭉치게끔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황해도 장학회 이사도 맡고 있는데 후진양성을 위해 장학금 모금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 2002년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으셨네요.
“국민훈장이 이북도민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면 대통령 표창은 생활체육 발전을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제가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서 협회장기, 서울시장기, 육군참모총장기를 두루 다녔는데 그때 문체부 장관께서 그 모습을 좋게 보시고 추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 위원님이 살아오신 과정을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6·25 전쟁 때 피난 내려와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한성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학교를 다니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겨우 졸업했죠. 당시 한성고 럭비부가 유명했는데 저도 럭비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반대로 럭비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게 됐는데 운동을 계속 하고 싶어서 동네 조기축구회를 나가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축구는 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부가 됐습니다.”

-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 체육단체장을 맡게 되셨잖아요.
“네, 제가 좋아하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체육단체장도 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부터 서울시 구로구 생활체육회장, 서울시 생활체육회 수석부회장을 시작으로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 체육단체장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을 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상벌위원장도 겸임했는데 상벌기준을 강화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만 해도 생활축구 운동장에서는 싸움이 자주 일어났거든요.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별의별 소동이 일어났죠. 그래서 저는 운동장에서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설을 하면 강력하게 처벌했습니다. 처음에는 처벌 받는 당사자들이 강하게 저항했지만 나중에는 폭력, 욕설 문화가 많이 시정됐습니다.

지금은 운동장에서 즐기는 축구,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많이 정착된 것 같습니다. 정몽규 회장이 2013년 부임 이후 리스펙트 캠페인을 꾸준히 실시한 것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 엘리트와 생활체육 일원화에도 큰 기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은 초기부터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두 상위 단체가 일원화되면 자연스럽게 회원종목단체인 대한축구협회와 전국축구연합회도 통합이 되는 것이죠.


당시에 저는 두 단체의 일원화가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가고 있는 것 같아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한 일원화 논의는 꼭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하는 내용이 포함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2015년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며 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상위 단체 통합이 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축구계도 대통합을 이루게 된 거죠.”

- 2002 한일월드컵 때는 월드컵 홍보위원으로도 활동하셨어요.
“당시 서울시 체육회장과 함께 응원 분위기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국민들이 축구를 통해 하나된 느낌을 받으셨잖아요. 그때 제가 홍보위원으로서 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 생활축구 저변 확대를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정몽규 회장이 부임하면서 대한축구협회 임원진이 젊어졌어요. 이 자체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방향으로 가겠구나 싶었죠. 특히 협회가 디비전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의욕적으로 하고 있는데 생활체육인 입장에서 참 감사한 일이에요. 디비전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정착된다면 생활축구의 저변 확대 뿐만 아니라 엘리트 축구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겁니다. 특히 생활축구 영역인 K5, K6, K7리그에 많은 생활축구인들이 참여했으면 하네요.”

- 앞으로 축구 발전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과거에 대학교수님과 함께 생활체육 지도자 육성체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종목이든 후진 양성이 필요합니다. 저는 후진 양성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이제 저는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내려놨습니다. 인간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삽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욕심을 버리게 되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니까 삶이 편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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