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더 아름다운 나날을 기대하며
치료를 시작하고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한두 달이면 낫겠지”라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두 달, 석 달이 지나서 일 년이 되었다. 참으로 세월은 빠르다. 시간을 맞춰 다니다 보니 점심시간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간을 맞추어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통원치료를 받으러 갈 때도 도시락을 싸서 가야 했다.
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치료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이었다. 조금만 잘 못 먹으면 당장 탈이 나기 때문이었다. 약을 먹는 시간과 치료 시간을 맞추려면 점심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러서 차 안에서 먹기도 했고, 어느 때는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어느 때는 공원으로 가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옆에 다가와 멀리서 놀러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해놓고 멋쩍어서 혼자 웃기도 했다.
젊었을 때 이러한 일을 겪게 되었더라면 무척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라도 치료할 수 있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소풍 다니는 것처럼 즐기며 다녔다. 공원을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시락을 먹는 즐거움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날마다 죽과 함께 일 년을 보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1년이 다 되도록 김치를 못 먹었던 것이 무척 힘들었다. 또한, 누가 외식하자고 하면 그것도 참 곤란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언젠가는 마음 놓고 외식하게 될 날을 고대했다. 그렇게 6개월을 더 보내고 두 번째 추석을 보냈다. 나는 병원 약을 더는 먹지 않겠다는 용기를 냈다.
내 나름대로 지식을 얻어 약이 아닌 다른 식품으로 다스리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이제는 죽이 아니라, 질게나마 밥을 먹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단맛이 나고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동안 잘 참은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설날이 다가왔다. 아들네 가족이 이번 설에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어쩌면 음식 때문에 고생할지도 모르지만, 용기를 냈다. 그동안 외식을 금하고 나들이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가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맛있는 음식도 많을 것 같았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식사 시간이 되었다. 먼저 음식이 걱정되었다. 식당에 들어가 시금치 카레를 시켰다. 너무나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이렇게만 먹을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은 아주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호텔에 들어가니 마침 내가 먹기 좋은 음식들이 많았다. 아들 내외가 나보다 더 좋아하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3박 4일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는 동안 아들 내외가 내 음식에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2년 만에 간 가족 여행은 지난날의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문제가 생겼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됐다. 또다시 죽을 먹으며 속을 달랬다. 이렇게 몇 번이고 밥과 죽으로 번갈아 먹으며 관리했더니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는 육류도 먹을 수 있다. 참으로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이제는 한 끼니만 안 먹어도 배가 고프다. 몸무게는 겨우 40kg 정도밖에 안 되지만, 사람들은 나를 보며 건강해 보인다고 말한다. 얼마나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인가? 새롭게 세상을 태어난 기분이다.
사람은 건강할 때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 한번 잃은 건강은 무척 회복하기 어렵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라도 그것을 잃어보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지닌 것이 귀한지도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 한번 잃어다가 회복함으로써 진한 감사 가운데 살 수 있다면, 이것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바로 내가 그렇다. 이 질병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의 기도와 격려의 덕택이다. 앞으로도 이 감사를 잊지 않고 더욱더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즐거운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