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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피어나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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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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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나 흔한 시대여서 손주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무얼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그렇게 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특별하지 않은 학용품은 싫증 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잊어버리더라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들은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어떤 것을 선물해 주어야 할지 무척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편하게 현금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황금만능주의 시대가 된 것일까?

 

어린이날이 지나면 곧 어버이날이다 보니, 어느 하루를 정해서 함께 식사하거나 놀이동산을 찾기도 한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손녀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이 됐다. 내가 자라던 시대는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작은 것이라도 생길라치면 그것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니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새록새록 추억이 되살아난다. 나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크레파스를 사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상으로 받은 크레파스가 있어서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등학교 3년 동안에는 물감을 사 본 일이 없다. 그러니 물감이 필요한 미술 시간이 내게는 아주 고통스럽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추억이 떠올라서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손녀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다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샀다. 아들네 가족과 함께 바람도 쐬고 식사도 하려고 독산성을 향하여 출발했다. 나는 자동차 안에서 손녀에게 선물을 주며 나의 과거 이야기를 했다. 손녀야 부족한 것도, 크게 부러울 것 없겠지만, 특별히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선물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학창시절 12년 동안 사보지 못했고,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손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들을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이 손녀에게 전달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독산성에 오른 우리는 산책 가운데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산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우리처럼 3대가 모여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러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도 3대가 어울린 가족들로 붐볐다. 손녀는 내가 사준 크레파스가 정감이 가는가 보다. 손에서 놓지 않고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pexels-photo-1322611.jpg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그리고 난 후 할머니를 그리겠다고 내 앞에 스케치북을 펼쳤다. 계속하여 나를 바라보면서 손놀림을 했다. 탁자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그리더니 한쪽으로 가서 무엇인가 열심히 글을 썼다. 그리고는 그림과 그 옆에 쓴 글을 내 앞에 내놓았다.

 

“할머니 사랑해요. 4살 때 산에 가서 술래잡기, 숨바꼭질 같은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했던 것이 8살이 돼서도 생각나요. 다리 아플 때는 할머니가 어부바해주어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하진 올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감춰 두었던 향기처럼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피로가 싹 사라졌다. 흐뭇한 마음이 몸 맘에 가득해지며 행복이 출렁거렸다.

 

특히 노인들은 자식들이 자주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점점 더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다행히도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이 있어서 외로운 노인들을 챙겨주기도 한다. 이런 처지를 바라보노라며 가정의 달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서글프다.

 

뉴스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버이날 무료급식소에 제일 먼저 나온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자녀가 없습니까?”라고 기자가 묻는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4형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혼자 살면서 어버이날인데도 무료급식소에 나와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들이 바빠서 명절 때만 본다고 한다. 정말 바빠서일까?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

 

그뿐인가? 듣고 싶지 않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 부모의 잔소리가 싫어서 자살하는 사건 등 말로 표현하기조차 곤혹스럽고 부끄럽다.

 

효의 민족이라고 불리던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랑도, 정도, 사라지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득해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지만 행복지수는 높아 가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할까?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인데 행복하다는 말보다 불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누구의 탓이 아니다. 모두가 우리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너를 보기 전에 먼저 나를 본다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나를 보지 않고 너를 보고 있다. 나를 보지 못하고서는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

 

수십억 원을 들인 행사가 끝난 다음, 그 자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는 일도 다반사다.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탓일까? 수십억 원의 유발 효과가 겨우 쓰레기란 말인가.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을 배우고 익히지 못한 탓이다. 나를 돌아보며 우리를 생각하는 성찰적 실천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읽고,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면 서로가 행복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아주 작은 것이나 소소함에서도 사랑과 행복이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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