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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단 한 번의 결혼 주례사와 아픈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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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7.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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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가 결혼식 주례 사연이 적혀있는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책갈피 사이에 누렇게 바랜 채 끼어있는 그 쪽지는 나를 40대의 추억으로 빠져들게 했다.
 
1980년대 결혼식은 지금에 비하면 소박하고 촌스러웠다. 그때 나는 남들처럼 결혼식에 자주 참석한 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신랑·신부와 하객들 앞에서 주례사를 멋지게 해 봤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유명인도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인 내게 누가 주례사를 부탁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주례 예약에 밀려 동분서주하는 남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아내와 어린 자식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 것 같아 괜한 심술이 났다.
 
내 평생 한 번 만이라도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품어 보았지만, 그냥 세월만 갔다. 그러다가 1984년 내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하늘의 별 따기 같은 평생소원을 이룬 셈이니 이만저만한 자랑거리가 아니다.
 
결혼식 주례를 부탁한 사람은 고향 후배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헤어졌다가 입대 전에 잠깐 만났었을 뿐 오랫동안 소식을 모르고 있었는데 전화 연락이 왔다. 그때 나는 40세였고 학부형인데, 39세인 그 친구는 아직도 노총각이었다. 지금이야 그 나이가 뭐 별거냐 하겠지만 그땐 홀아비나 마찬가지였다.
 
그 친구는 자기 결혼식이 4월 29일이니 참석해 달라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참석 의사를 전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결혼식 사회를 꼭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내 나이에 아무래도 어색하긴 했지만, 이유를 달지 않고 알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게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식을 성수동 자기 형 집에서 전통방식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은 자신이 없어 못 하겠다고 거절했으나 하도 조르는 바람에 응낙하고 말았다.
 
어느덧 결혼식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막상 사회를 맡아 진행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다. 보통 예식장에서 하는 것이라면 사회자는 그냥 정해진 순서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전통결혼식은 구경한 지도 오래되어 자신도 없는 데다 주례자가 사회까지 맡아 모두 진행해야 하니 큰일이었다. 지금이야 관련 자료를 쉽게 얻어낼 수 있지만 그때는 누구한테 조언도 들을 수 없어서 큰 고민이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게 가정대백과사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1년도에 삼중당에서 출판한 1,600쪽의 두꺼운 책이다. 넉넉지 못한 신혼살림임에도 꼭 가져보고 싶어 큰맘 먹고 거금을 주고 할부로 구매한 나의 유일한 지식 보물창고였다. 지금도 낡고 빛바랜 채 책장에 진열되어 있는데 꺼내서 책갈피 줄을 위로 당겨보니 곧바로 구식결혼에 관한 내용이 펼쳐졌다. 33년 전에 여러 번 읽고 고심했던 흔적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그 책에 보니 전통혼례에 대하여 상세히 나와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 송나라의 4례 예식을 따랐다. 신랑 집에서 신붓집으로 사주를 보내는 납채(納采), 신붓집에서 택일단자를 보내는 연길(涓吉), 신랑 집에서 신붓집으로 예물과 폐백으로 청실홍실을 보내는 납폐(納幣), 신랑이 친히 신붓집에 장가갔다가 예식을 치른 후 신부를 맞아 오는 친영(親迎)의 4례다. 그렇다면 친구가 내게 결혼식 사회를 부탁한 의도는 결국 신랑 집에서 친영의식인 초례식을 진행해 달라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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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초례식을 상상하며 주례로서 진행해야 모든 것들을 꼼꼼히 메모했다. 볕가리개와 병풍, 신위 상과 정화수를 준비하고, 신랑은 사모관대, 신부는 나삼에 칠보 족두리를 하고 연지를 찍는다. 신랑이 신부에게 한번 절하면 신부가 두 번 절하고 답례로 신랑이 한번 절한다. 이어서 신부가 일어나 재배하면 신랑이 답례로 한번 잘함으로 상견례를 마친다.
 
이후 향을 피우고 재배하므로 하늘에 부부 됨을 알리고 맹세를 한다. 이어서 청실홍실을 감은 축복의 술잔을 신부가 신랑에게 건네면 조금 마시고 신부에게 건네서 마시게 한다. 다음 반대로 한 번 더한다. 이어서 맞절을 하고 축하객에게 인사한 후 신위에 재배하면 초례가 끝난다는 것 등을 메모했다. 그리고 친구에게도 설명하고 준비하게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뭔가 허전했다. 내게 제일 중요한 관심사인 주례사가 빠진 것이었다. 전통예식에는 별도의 주례사가 없다. 평생소원이 주례자가 되어 품위 있게 주례사 한번 멋지게 해 보는 것인데 고작 사회자로만 끝낼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안타까웠다. 모처럼 굴러온 기회를 놓칠 것 같은 조바심에 생각을 바꿔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주례사를 순서에 넣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주례사라는 말이 격에 맞지 않을 것 같아 고심 끝에 묘안을 찾아냈는데 주례사를 축사로 바꾸면 되겠다 싶었다. 내 잣대로 정했지만, 기분은 최고였고 마음도 편해졌다.
 
내친김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축사를 근사하게 써보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글쓰기가 맘대로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종이쪽지에 내 나름대로 요점만 간단히 적어 철저히 준비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이발은 물론, 정장까지 차려입고 한껏 모양을 내고서 결혼식을 할 장소에 도착하니 모두 반겨 주었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넉넉지 못한 형편임에도 마당에 볕가리개를 쳐서 햇빛을 가려놓고, 병풍이며 초례상 등을 그런대로 잘 차려놓았다.
 
친구인 신랑과 눈인사를 한 후 메모한 순서대로 맞절도 시키고, 술잔도 오가게 했고, 반지도 서로 끼우게 하며 잘 진행을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반예식장에서 하는 성혼선언문까지 낭독한 것은 좀 과했나 싶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주례사였다.
 
이윽고 기다리던 주례사를 할 시각이 되었다. 주례사가 아닌 축사로 격하되어 좀 아쉽기는 했다. 나는 약 5분 동안 주례사를 하는 기분으로 축사를 위엄 있고 힘차게 외쳤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여 적어본다.
 
축사
우리는 1년을 기대하며 곡식을 심고, 10년을 기대하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기대하며 사람을 심는다고 한다. 오늘 100년을 위해 사람을 심는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며 가는 것이다. 한자 사람 인(人)자의 모양을 설명하며 서로 의지하며 살라고 했다.

신랑과 신부를 두 개의 질그릇으로 비유하며 사용하기에 좋은 그릇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해야 한다. 용서와 이해로, 상대의 좋은 것은 빨리 보고 나쁜 것은 더디 보라. 또 서로 관심을 가지라는 뜻에서 악의 두목 선거에서 무관심이 전쟁과 질병을 물리치고 선출된 예화를 들려주었다.

2. 씻어낸 질그릇에 사랑을 담으라 했다. 혹자는 자신, 돈, 쾌락, 지식, 지위, 권세를 담으나 희생적인 사랑을 담아라. 또 목표와 꿈을 담아라. 꿈이 없으면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여기 까지다. 그다음은 메모한 쪽지가 없어져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축복받으며 행복하게 잘 살라고 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마치고 마루에서 국수 한 그릇을 대접받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자랑하니 아내도 덩달아 좋아하며 아이들한테 나를 치켜세워주었다.
 
그 후 열흘 정도 지났을 즈음 친구에게 전화하여 신혼 재미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그들은 나를 크게 실망하게 하고 말았다. 결혼 일주일 만에 헤어지고 만 것이었다. 아름답고 소중하게 기억될 나의 보람을 그들이 한순간에 날려 보낸 것이다. 친구가 하는 말이 신부가 가정이 있는 유부녀였고 나이까지 속여 사기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어 나름대로 마음을 다해 위로해 주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그들이 너무 미웠다. 잘 살기를 바라며 축사 아니, 주례사까지 했는데 사기 결혼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결혼식 진행을 위해 백과사전을 찾아보며 열흘 동안이나 정성껏 준비했던 나의 수고가 일순간에 사그라진 것 같아 너무 공허했다. 그 친구는 지금까지 독신으로 살고 있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그냥 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33년이 지난 요즘의 결혼식 주례자들은 어떤 마음일까? 세대 구분 없이 이혼하는 가정이 너무 흔하다 보니 주례를 부탁받으면 선뜻 두려운 마음부터 들 것 같다. 그래서 주례 없는 결혼식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주례 덕분에 행복한 가정을 꾸몄다는 보람과 성취감에 많은 주례자는 그 임무를 계속 이어갈 것 같다.
 
주례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결혼식 끝나기가 무섭게 여행을 떠나는 요즘의 신랑·신부들이 성혼선언을 해준 주례자의 이름과 주례사의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주례자와 주례사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주례자는 성혼선언만 한 것이 아니라 이혼을 막아낼 책임도 있다.
 
이제껏 단 한 번 한 결혼식 주례사인데 그만 아픈 추억이 되고 말았다. 33년이 흘러간 지금도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그 일이 못내 안타깝게 느껴진다. 물론 그 일은 애당초 남을 속인 잘못된 일이었기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러나 정상적인 만남에서 이루어진 결혼이라면 이혼은 절대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일이며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는 매우 성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최병우 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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