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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허균이 살았던 과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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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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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동부승지, 삼척 부사, 부제학,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허엽(許曄)은 30년간이나 관직에 머물렀는데도 생활이 검소했고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한 인물이다.
 
허엽의 호는 초당(草堂)이다. 오늘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초당 순두부의 본고장이 바로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이다.

 
허균.jpg
 
 
 
이곳에서 허엽의 아들 허균(許筠, 1569~1618)이 태어났다. 교산(蛟山) 허균은 명문가의 자제로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내 모든 것이 보장된 인물이었지만, 불우한 계층을 대변하는 삶을 선택했다.
 
이런 까닭으로 허균은 조선시대 반역의 상징 같은 인물이 되었다. 일찍이 평등사상에 눈을 뜬 허균의 급진적인 개혁 사상은 오늘날에 와서는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단과 반역을 도모하는 사회전복세력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쓴 《홍길동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허균이라는 인물을 볼 때, “역사는 현대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항상 새롭게 해석되고 평가될 수 있기에 역사를 보는 모든 이들의 시각은 상대적이다”고 말한 영국의 정치학자이며 역사가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 1892년~1982년)의 견해가 더욱더 공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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