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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병간호에서 얻은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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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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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0일 겨울답지 않게 추위도 없이 지나는 평범한 목요일이다. 인문학 수업을 마치고 복지관에서 점심을 먹은 후 왠지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도 안 마시고 곧장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음식 타는 냄새와 더불어 연기가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깜짝 놀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집사람이 난간 문을 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가스레인지에서는 찌개가 타서 나는 연기와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화를 버럭 내면서 “주방에서 무엇을 할 땐 지켜봐야 한다고 했는데, 딴전을 피우다가 불을 낼 뻔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문이란 문은 다 열어 젖히고 연기와 냄새를 빼냈다.
 
그런데 집사람이 방에 들어가서 웅크리고 아파서 애를 쓰면서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왜 그러냐고 하니까 주방 뒷문을 열다가 넘어졌다고 하면서 다리가 아파서 꼼짝을 못 하겠다면서 애를 쓴다.
 
내가 안아서 일으키니 서지 못하고 주저앉는 게 아닌가?
아뿔싸 넘어지면서 다리가 골절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급히 끌어안고 지하주차장까지 내려가 차에 태우고 동네 정형외과로 갔다. 업으면서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는데 아파서 만지지를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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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담당의사가 넓적다리관절이 골절되었다면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넓적다리관절 전문치료병원을 소개해줬다.
병원 구급차를 불러서 해당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촬영과 각종 검사를 실시했다. 바로 수술을 해 달라니까 다음날까지 지켜보자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원장을 만나서 수술계획을 듣자고 하니 내과 의사가 심장과 폐에 이상이 있어 곤란하다고 하고, 마취과 의사는 너무 허약해서 마취가 곤란하다고 하면서 미적거린다. 다시 내과 CT와 골다공증 검사 등 추가 검사를 했지만, 결론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화가 났다. 그렇다면 대학병원으로 보냈어야 할 것 아니냐.
 
문제는 마취하면 혈압이 떨어지고 수액 주사를 하면 심장과 폐에 무리가 가서 어렵단다. 어찌 되었든 최선을 다해서 수술을 해보자고 의논해서 다음 날 10시로 일정을 잡았다. 마취는 하체 위주로 약하게 하고 심장과 폐를 살피며 합동으로 수술하기로 했다. 집사람도 어떤 어려움도 참을 수 있으니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실 문밖에서 지켜보는 나는 얼마나 길고 지루하며 초조했던지 모른다. 모든 수술환자의 보호자가 내 심정과 같으리라. 이번이 세 번째 수술이다. 먼저는 척추협착증 수술, 두 번째는 대장수술, 이번은 넓적다리관절 수술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내가 너무도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나는 군 생활로 타지에서 근무하고 애들 셋을 키우며 공부시키느라고 고생고생하며 살아온 여인인데 왜 이리도 아픈 곳이 많은가! 모든 게 내 잘못이고 남편 잘못 만나 고생하는가 싶은 게 나 자신이 밉고, 집사람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생각이 나를 옥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수술실 문이 열렸다. 수술이 잘됐다고 한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른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야윈 얼굴에 힘없는 모습이 내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한다.
 
아내가 여러 번 수술하기는 했지만, 이번같이 길게 느껴 보긴 처음인 것 같다. 병실에 들어와 꼼짝 못 하고 누워있어 내가 옆에서 24시간 일일이 돌봐주어야 하는 것은 나뿐 아니고 같은 병실환자 보호자 모두가 똑같은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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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다 하겠는데 잠자리가 고역이었다. 보호자가 잘 수 있는 게 좁은 평의자 하나였다. 그것도 키가 큰 내게는 맞지 않았다. 옆으로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이 마치 관속에 드러누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문제가 또 하나 생겼다. 내가 잘 때 코를 고는 소리가 너무 커서 병실 사람들이 잠을 못 잔단다. 죄송하다고 하면서 침대에 머리를 대고 뒤척이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이렇다 보니 무척 힘들었다. 문병을 오면서 애들이 가져온 것, 내가 산 것을 나눠주고 얼버무리며 양해를 구해 위기를 잘 넘겼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못 잔다고 하는데 50여 년이 넘게 함께 살아온 집사람이 어떻게 견디고 살았을까 싶었다. 이 또한 집사람한테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럭저럭 병원생활 20여 일 만에 병원조치는 끝나고 퇴원해서 집에서 2주에 한 번씩 외래진료를 받으면서 부러진 뼈가 완벽히 붙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부터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병원에서는 삼시 세끼 식사는 주니 간식과 반찬만 구해서 주면 되고 소변은 소변 주머니로 들어가고 대변만 받아서 정리하면 되었다. 잠시 자리를 비울 때는 간호사나 옆에 있는 환자 보호자에게도 부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모든 것을 내가 다 챙겨야 하다 보니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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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끼니때 마다 식사 준비하기가 보통이 아니다. 밑반찬이야 시장, 마트에서 사다가 해결하면 되고 밥이야 전기밥솥이 있으니 쌀 씻어서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지만, 국과 찌개를 끓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애들이 보낸 전복을 죽을 쑤려니 만만치 않아 할 수 없이 노인정 할머니들에게 부탁했다. 사골은 내가 전에도 고아 먹었으니 해결했다. 순두붓국은 식당에서 사다 끓여 주었다. 국은 마트에서 파는 것으로 하려니 그것은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한다. 노동보다 입맛에 맞게 한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더욱더 힘든 문제였다. 다시 한 번 주부들의 살림살이 고충이 얼마나 크고 고된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직접 당해 보지 않고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깨닫지 못했을 텐데, 주위의 어려운 환경에 있는 분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먹고 입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것(세면, 양치질, 대소변 가림 등)을 돌봐주는 장애인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고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옆에만 지켜볼 수 없어 아내는 방에 두고 나는 거실에서 책이나 TV를 보았다. 그럴 때도 수시로 나를 찾는다. 요리하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불러도 잘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 종을 하나 살까도 생각했는데 집에 있는 바가지를 효자손으로 두드리니 해결되었다. 효자손이 등 긁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주위의 필요한 것을 끌어당기는 데도 아주 유용했다.
 
이번 일에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기도해 준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 오늘(2016년 1월 23)로 43일이 지나갔다. 그래도 요새는 누운 상태에서 혼자 앉기까지는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식사 후 양치질, 세숫물 준비 버리기, 청소 빨래 등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모를 지경으로 보내고 있다. 언젠가는 옛날과 같이 건강하게 걷고 움직이고 복지관에 가서 기체조, 요가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희망을 품고 오늘도 정성껏 간호하며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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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외래진료 날이다. 아침 일찍 휠체어로 주차장에 가서 차를 타고 가서 진료받았다. 이제부터는 보조기를 가지고 조금씩 걷는 연습을 하면 따뜻한 봄에는 마음대로 걸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집사람의 얼굴에 환한 희망의 미소에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그래 춘삼월이면 정상으로 걸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나도 무척이나 기뻤다.
 
집에 와서는 바로 의료보조기 가게에 가서 고령자용 실내 보행차를 사서 시험을 해 보았다. 한 달 반 만에 움직이는 것이다. 아내는 힘이 들었지만 희망을 품고 걸음마를 해본다. 제발 빨리 건강이 회복되어 같이 구경도 다니고 먹고 싶은 것도 사 먹으면서 지내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나를 아는 모든 분이 염려해줌에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낸다.
 
나라도 건강해서 집사람을 돌봐 주는데 감사하며 혼자서 사시는 분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자식이 많아도 다 제 먹고살기에 바빠 직장에 나가고 각자 일이 있어 돌봐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보니 부부가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것인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빨리 완쾌되어 함께 마음대로 다닐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매일 매일을 희망차게 보내려 노력하고 있다.
 
배영환 취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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