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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송산그린시티의 새로운 주민자치센터 '새솔동'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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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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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지역학연구소장  정찬모

 

▶새솔동의 민속 문화적 배경

송산 그린시티 동쪽 지구 마을 및 시설 명칭 부여를 위한 학술 용역을 2017년 1월 20일 수자원공사와 화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가 계약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김용덕 박사, 김정수 박사, 강현모 박사, 정찬모 향토사학자가 작성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새로운 동명인 새솔동이 확정되었다.

 

현재의 새솔동 지역은 시화방조제가 완공된 후 바다의 갯벌을 매립한 지역이다. 새솔동의 지명은 순수한 우리말에서 동쪽을 의미하는 “새”를 사용하였는데 이 “새”는 처음이라는 의미도 있다. “솔”은 소나무를 나타내는 우리말로써 송산의 동쪽과 ‘새로운 송산’이라는 이미지를 나타내고자 제정하였다.

 

새솔동 지역에 있는 신외리, 장전동, 유포리의 땅이름의 뿌리와 구비문학, 보존하고자 하는 민속신앙과 문화적 배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 신외리

예부터 포구를 이룬 마을로서 구한말에는 지형이 인천과 닮았다 하여 남양인천(南陽仁川)으로 불렸다. 그 후에 인천항이 발전함에 따라 ‘신외리’로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인천부 이포면의 지역으로서, 1895년(고종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남양군 화척지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고잔, 화수개, 내동, 중동, 외동을 병합하여 신외리이라 하여 수원군 음덕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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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외리 길가에 선 장승들

 

 
기존 자료에 의하면 신외리에는 곶의 지형인 ‘곶안-고잔’이 있고, 안동네로 불리는 ‘내동(內洞)’과 바깥 동네로 불리는 ‘외동(外洞)’, ‘신외리’의 복판에 있는 ‘중동(中洞)’과 ‘화수개’라는 마을이 있다.

 

‘신외리’는 ‘외동’과 ‘내동’ 모두 ‘터줏가리’를 당으로 모시고 마을신앙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신외 1리’에서는 약 10년 전부터 도당굿의 형태로 마을 공동제의를 올리고 있다. 굿을 큰 제사라고 한다면 유교식 제의는 상대적으로 작다. 그런데 ‘신외 1리’는 그 규모가 오히려 커진 상황에 해당한다. 본래부터 도당굿의 형태로 진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신외 1리’에서 신목으로 모시는 느티나무는 일제강점기 때인 소화 12년이라는 팻말을 붙이고, 지정목으로 관리가 되었다. 당시에 사기 팻말을 해두었으나 없어진 상태이다. 제의는 10월 상달에 행해지나, 최근 몇 년간은 중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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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외리 당산나무와 터줏가리

 

 
‘신외 2리’에도 1리보다 그 크기가 좀 작으나 터줏가리 형태의 당이 있다. 이 마을의 신목은 소나무였으나, 본래 소나무를 신목으로 모시지 않았을 개연성도 높다. 어른들의 기억으로는 이곳에 무당들이 들어와 당굿을 행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지역은 시화호가 막히기 전에 인천과 더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바다 일과 관련된 일들을 생업으로 하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규모와 형식이든 무속에 의존하였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신외 2리’에서는 우물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중단된 지는 20년 정도라는데, 제수 비용은 마을 주민들이 추렴하여 마련하고, 돼지를 희생으로 샘물이 잘 나게 해달라고 제의를 드렸다고 한다.

 

신외리의 어업은 인원수가 각기 다른 조별로 이루어졌다. 그런 까닭으로 뱃고사를 지내는 형식과 규모에서도 차이가 있다. 보통은 서낭에 가서 떡을 해 다 놓고 풍어를 기원한다. 그렇지만 멀리 배를 타고 나가거나 그 인원이 많으면 돼지를 잡고 떡을 하며 큰 규모의 뱃고사를 지냈다. 이때는 징, 꽹과리가 동원되며 두레의 기와 같은 농기(뱃기)를 앞세우고 어로에 나선다. 그리고 만선을 하면 멀리서부터 꽹과리와 징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마을에는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터주를 모시고 제석, 대감, 성주 신앙이 있었으며, 목살을 풀고 뜬 거, 탓 등을 풀어냈으며 정월 고사, 홍수 막이, 칠석고사 등을 지냈다. 단골은 집마다 차이가 있다. 인천의 무당들이 단골로 들어오던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민간요법에는 삼, 하루거리, 두드러기, 홍역, 마마, 푸닥거리 등이 조사되었다. 삼을 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 조사되었으나, 고잔에서 생선을 젓가락으로 찔러다가 청수 그릇 위에 놓고 ‘내 병 떨어졌다.’ 하고는 팥을 청수에 떨어뜨려서 잡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홍역의 경우는 바람을 쐬지 않게 하면서 보리 물만 뜨겁게 하여 먹였다. 또 마마의 경우는 ‘손님 할머니, 손님 할머니’ 하면서 장독에 청수를 떠 놓고 빌었다고 한다. 손님을 마마라 이르는 것은 높여 부르는 것으로, 퇴치 대상의 격을 높여줌으로써 물리치는 주술적 방법의 하나이다. 또한 푸닥거리의 경우 칼을 던져서 칼끝이 밖을 향하면 잘 풀린 것으로 믿는 것이 일반적인데, 고잔에서는 칼을 마당 끝에서 꽂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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