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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훈장-대통령 표창’ 받은 서현영, 생활축구 부흥 일조한 숨은 일꾼
        [시니어투데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으스대는 게 아니라 내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KFA) 생활축구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서현영(79) 옹은 일평생을 두 가지 일에 몰두했다. 하나는 애향사업, 또 하나는 생활축구 부흥이다.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피난 온 그는 실향민 1세대로서 황해도 연백군 명예군수 직함도 갖고 있다. 이북도민 권익 신장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그는 지난해 10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그런 그가 애향사업만큼이나 애착을 갖는 일은 다름 아니라 생활축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서 위원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5년 동안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엘리트와 생활체육 일원화에 기여하는 등 생활축구 활성화의 기틀을 놓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2016년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가 통합된 이후에는 자문위원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활축구 발전을 위해 일했다. ‘KFA 홈페이지’가 2019년 세밑에 서 위원을 만났다. 그 나이 또래가 으레 그러하듯 호적 신고가 늦어 한국 나이로 여든을 넘긴 그는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신다”는 필자의 덕담에 서 위원은 “속은 썩었어요. 축구를 하다가 양쪽 무릎 인대가 모두 끊어져서 수술했습니다”라며 웃었다. - 최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셨어요. 축하 드립니다. “제가 실향민이라 애향사업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북도민을 위한 체육행사, 도민의 날 행사 등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제가 축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축구를 통해 실향민을 하나로 뭉치게끔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황해도 장학회 이사도 맡고 있는데 후진양성을 위해 장학금 모금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 2002년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으셨네요. “국민훈장이 이북도민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면 대통령 표창은 생활체육 발전을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제가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서 협회장기, 서울시장기, 육군참모총장기를 두루 다녔는데 그때 문체부 장관께서 그 모습을 좋게 보시고 추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 위원님이 살아오신 과정을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6·25 전쟁 때 피난 내려와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한성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학교를 다니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겨우 졸업했죠. 당시 한성고 럭비부가 유명했는데 저도 럭비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반대로 럭비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게 됐는데 운동을 계속 하고 싶어서 동네 조기축구회를 나가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축구는 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부가 됐습니다.” -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 체육단체장을 맡게 되셨잖아요. “네, 제가 좋아하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체육단체장도 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부터 서울시 구로구 생활체육회장, 서울시 생활체육회 수석부회장을 시작으로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 체육단체장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을 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상벌위원장도 겸임했는데 상벌기준을 강화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만 해도 생활축구 운동장에서는 싸움이 자주 일어났거든요.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별의별 소동이 일어났죠. 그래서 저는 운동장에서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설을 하면 강력하게 처벌했습니다. 처음에는 처벌 받는 당사자들이 강하게 저항했지만 나중에는 폭력, 욕설 문화가 많이 시정됐습니다. 지금은 운동장에서 즐기는 축구,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많이 정착된 것 같습니다. 정몽규 회장이 2013년 부임 이후 리스펙트 캠페인을 꾸준히 실시한 것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 엘리트와 생활체육 일원화에도 큰 기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은 초기부터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두 상위 단체가 일원화되면 자연스럽게 회원종목단체인 대한축구협회와 전국축구연합회도 통합이 되는 것이죠. 당시에 저는 두 단체의 일원화가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가고 있는 것 같아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한 일원화 논의는 꼭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하는 내용이 포함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2015년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며 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상위 단체 통합이 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축구계도 대통합을 이루게 된 거죠.” - 2002 한일월드컵 때는 월드컵 홍보위원으로도 활동하셨어요. “당시 서울시 체육회장과 함께 응원 분위기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국민들이 축구를 통해 하나된 느낌을 받으셨잖아요. 그때 제가 홍보위원으로서 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 생활축구 저변 확대를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정몽규 회장이 부임하면서 대한축구협회 임원진이 젊어졌어요. 이 자체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방향으로 가겠구나 싶었죠. 특히 협회가 디비전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의욕적으로 하고 있는데 생활체육인 입장에서 참 감사한 일이에요. 디비전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정착된다면 생활축구의 저변 확대 뿐만 아니라 엘리트 축구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겁니다. 특히 생활축구 영역인 K5, K6, K7리그에 많은 생활축구인들이 참여했으면 하네요.” - 앞으로 축구 발전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과거에 대학교수님과 함께 생활체육 지도자 육성체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종목이든 후진 양성이 필요합니다. 저는 후진 양성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이제 저는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내려놨습니다. 인간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삽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욕심을 버리게 되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니까 삶이 편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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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6
  • 어르신 머리 다듬어 주는 ‘사랑의 가위손’
      [시니어투데이] 윤찬헤어를 찾은 박 모(여.81세) 할머니는 머리를 감겨주고 말려주는 손길과 마음씀씀이에 고마움을 전했다. 금정구(구청장 정미영) 윤찬헤어 서동점(대표 이성호·서동로 148-1)은 지난 10월부터 매달 첫째 화요일마다 저소득 어르신 10여 명을 대상으로 무료 헤어커트 봉사를 실시하고 있다. 바쁜 오전시간을 내 기꺼이 봉사를 하고 있는 이성호 윤찬헤어 대표는“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못하죠. 어르신들을 보면 훗날의 내 모습 같으니까 더 정성껏 다듬어 드리게 된다”고 말했다. 윤찬헤어 서동점은‘다함께 행복한 동네를 꿈꾸는 가게.호점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후원하여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서2동 행정복지센터 김경희 동장은 “주민들이 어려운 이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봉사활동에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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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8
  • ‘NO老(노노)’로 신명을 창출하는 시니어
       노인은 그저 사회복지의 수혜 대상자가 아니라 엄청난 지혜의 보물창고다.   초고령사회를 향해 가는 대한민국은 노령인구와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을 찾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700만 명 정도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자)가 살고 있다. ‘5575세대’(55세~75세)로 확대하면 1천만 명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초고령사회로 향해 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노령인구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가운데 “고령화는 고령화로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김태유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김용무 단장과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 회원들(왼쪽에서부터 배영환, 이매자, 윤순희, 김용무)       따라서 이런 맥락에 부합하는 시니어들이 주목받게 된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토질과 기후에 따라 자생하는 식물이 다른 것처럼 사람도 자신이 선호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곳으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관장 황준호)에 유난히 열정이 넘치는 시니어들이 많은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활력이 넘치는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 여러 동아리 가운데 ‘노노 신나라 색소폰’도 왕성한 활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이 동아리 김용무 단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여러 역할을 소화해 낸다. 화성시 향남면 상두리에서 500여 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곳에서 사는 김 단장에게서는 긴 세월에서 이어진 연륜의 아우라(Aura)가 풍긴다.   ▲ '노노 신나라 색소폰' 동아리 김용무 단장       자신을 평범한 촌로라고 말하는 김 단장이지만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 운영위원, 광산 김씨 판교공파 부회장, 화성시 광복회 운영위원도 맡고 있다. 여전히 손수 적잖은 농사를 지으며 관계된 일은 물론, 이웃의 크고 작은 일에도 열과 성을 다한다.   김 단장의 이렇게 성실한 삶에는 맏형의 애국애족 정신이 어려 있다. 김 단장의 맏형이 바로 애국지사 김용창(1926-1945) 선생이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미처 그해 봄기운을 다 느껴보지도 못한 4월 3일 차디찬 감옥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였기에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독립은 보지 못했다. 김 단장은 맏형을 생각할 때마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말한다.    김 단장은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처우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지자체나 후손들이 묘지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것부터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후세대가 나라 위해 몸 받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온고지신(溫故知新)하도록 세밀한 지원과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에서 공로상을 받는 김용무 단장(오른쪽)과 황준호 관장       김 단장은 ‘NO老’를 외친다. 동아리 이름에도 ‘NO老’가 맨 앞에 붙는다. ‘늙은이’라는 말이 풍기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늙음’을 ‘낡음’처럼 인식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지다.   노인은 그저 사회복지의 수혜 대상자가 아니라 엄청난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고령화의 문제는 고령화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며 누가 찾아주고 도와주기만 기다리지 말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자고 말한다.   김 단장을 만나고 돌아서 오는 길에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힘이 솟아났다. 이것은 그와의 만남에서 발생한 공감에서 창출되는 에너지였다.   취재위원 배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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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9
  • ‘땡스기브’가 디자인하는 아름다운 세상
       ‘땡스기브’는 아름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 되고 싶어 한다.   “여보세요? 거기 작은 도서관이나 지역아동센터에 책을 지원해 주시는 곳 맞나요?” “예! 맞습니다.”   서슴없이 책을 지원해준다는 응답에 ‘(사)땡스기브’가 어떤 단체이진 매우 궁금해졌다. 봄기운이 무르익어 가는 3월 끝자락에 ‘(사)땡스기브’를 찾아갔다. 규정에 따라 작은 도서관이나 지역아동센터에 책을 지원하는 ‘(사)땡스기브’의 나동훈 대표는 뜻밖에도 디자인 전공 박사였다. 디자인의 안목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 (사)땡스기브 나동훈 대표       인간의 삶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동훈 대표는 ‘프란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의 삶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참된 미덕의 본질》을 통하여 새로운 눈을 떴다고 한다.   특히 문화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사)땡스기브’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문화는 대립과 갈등으로 몰고 가는 이념과 달리 삶으로 느끼고 공유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 삶 속에서의 공유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 가운데 글로써 교감하게 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할 수 있어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땡스기브’에서는 격월로 를 발행한다. 잠시만이라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돌려 책을 보게 하는 가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비록 작은 영역이기는 하나 이 아름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 되고 싶다고 한다.   이 취기에 공감하는 교수, 판사, 목사, 교사, 학생, 주부 등 남녀노소 구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이 일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서 봉사하고 있다.         ‘(사)땡스기브’는 개인이나 기업의 후원으로 연간 2만 여 권의 책을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작은 도서관 등에 나누어 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   물질중심의 자본주의 사회는 스스로 한계를 드러내면서 지식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성하며 희망차고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꿈의 사회(Dream Society)’를 끌어당기고 있다.   ‘(사)땡스기브’도 이런 일에 이바지하는 나눔공동체다. ‘꿈의 사회(Dream Society)’는 그저 말만 무성한 사회가 아니라, 물질이나 과학기술을 희망과 아름다운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실천을 통해 만들어내는 행복한 세상이다. 이런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좋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길도 닦는다. 가정, 학교, 교회, 직장 등에서 독서토론을 하도록 돕고 있다.         나동훈 대표와 대화하는 내내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다. ‘(사)땡스기브’의 일들도 나 대표와의 만남처럼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나누고 있다.   꽃이 피고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봄도 농부의 노력이 있어야 곡식의 씨앗을 싹틔우고 키울 수 있듯이 아름답고 복된 세상도 ‘(사)땡스기브’와 같은 아름다운 손길들이 모여서 열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형묵 기자 chm@seniortoday.net  
    • 인물이야기
    2016-04-04
  • 요양보호에 헌신한 배영웅 원장이 사는 삶의 향기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일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어야 한다.   봄이 더욱더 기다려지는 겨울의 끝자락에 서울시 양천구에 있는 ‘사랑나눔복지센터(원장 배영웅)’를 찾았다. 입구에서는 오가는 시민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준비로 분주했다. 그 모습에서 복지센터의 이름에 ‘사랑’과 ‘나눔’을 넣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배영웅 원장의 생각은 온통 사회복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쉴 새 없이 사회복지에 대한 비전과 현실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조목조목 진단하고 대안과 비전을 쏟아냈다.     ‘사랑나눔복지센터’에서의 주요 업무는 요양보호사를 교육하고 파견하는 일이다. 요양보호를 해야 하는 어르신을 간호하고 돌보는 서비스를 진행하는 최전방 복지센터라고 할 수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요양보호에 필요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센터를 통해 요양보호를 요청하는 가정을 방문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휠체어 이동, 신체활동, 마사지, 몸 관리, 욕창 예방, 낙상 방지를 기본으로 가사서비스와 정서 활동까지 제공하게 된다.   이런 서비스는 자식이라도 날마다 하기는 어려운 일들이다. 국가에서 이런 복지체계를 마련한 것은 매우 다행하고 바람직하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매우 필요한 복지정책이다.   ▲ 배영웅 원장(사랑나눔복지센터). 배 원장은 두 시간이 훌쩍 넘도록 사회복지와 요양보호 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열정을 쏟아 냈다.     배 원장은 이런 좋은 제도가 현실적인 이해부족으로 겉돌고 있다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국가의 최저임금제와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요양보호사들의 활동을 위축시켜 요양보호 수급자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할 수 없게 만들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수급자들을 돌보는 시간을 줄여서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려는 것은 매우 단기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요양보호는 사회복지에서 한 부분에 속하는 좁은 영역이다. 국민 대다수가 관심을 쏟는 분야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포퓰리즘적인 발상에서만 처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요양보호사 직무교육   요양보호 수급자나 가족들의 처지에서는 매우 급하고 절실한 문제다. 이런 문제에 봉착한 당사자나 가족은 삶이 붕괴할 수도 있는 엄청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들에게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음은 수급자들이 가져야 할 인식에서도 전환이 필요하다. 요양보호서비스를 선용해야 하는데 요양보호사들을 가사도우미처럼 활용하려 든다면 스스로 제도를 망치는 것이다. 마음대로 부리는 하인 취급을 한다든지,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함부로 대하고 교체를 요구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요양보호사의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요양보호사는 국가의 복지정책을 수행한다는 마음과 수급자를 부모와 같이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존중과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 요양보호사들은 요양보호에 필요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전문가들이다.   요양보호센터는 국가를 대신해 요양보호서비스를 수행하는 비오톱(biotope·다양한 생물들이 군집하는 서식처)이다. 이런 곳이 서서히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우리는 요양보호센터라는 복지의 비오톱이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도록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 국민 모두는 자신도 수급자나 그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이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어디 요양보호에 관한 문제뿐이겠는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일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어야 한다. 사회라는 말에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 요양보호사는 국가의 복지정책을 수행한다는 마음과 수급자를 부모와 같이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존중과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   배 원장은 두 시간이 훌쩍 넘도록 사회복지와 요양보호 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열정을 쏟아 냈다.   전직이 궁금해서 물었더니, 특전사에서도 특수임무를 띠고 국방의 의무를 다한 예비역 소령이었다. 아직도 군에서 얻은 질병의 후유증을 달고 산다는 배 원장은 투철한 국가관을 지닌 사람이었다.   배 원장은 요양보호에 대해서도 군 복무 시절 못지않게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사랑나눔복지센터’는 최고의 서비스를 위하여 욕구사정과 그에 따른 케어플랜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2015년 장기요양기관 평가 최우수기관으로 선정   이런 결과로 장기요양보험 실시 이후 두 번의 평가에서 모두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효의 실천과 장기요양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학생체험 인턴제도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시니어 인턴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요양보호에서 그치지 않고 매주 무료 급식에서 100여 명의 어르신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등 삶의 총체적 의미로서의 사회복지실현에 앞장서고 있다.   ▲ 학생들에게 효의 실천과 장기요양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학생체험 인턴제도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시니어 인턴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던 2008년부터 기관을 운영하는 배 원장은 제도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해 사단법인 정보나눔회의 설립을 주도하여 이사로 섬기고 있으며, 서울시 장기요양기관 수석부회장을 역임하였다.   장기요양기관의 “권리보장과 급여 수준의 적절성, 서비스에 대한 용이성과 불평등 문제”를 과제로 삼아 정책 토론을 주도하는 등 장기요양기관의 발전, 요양보호사의 권익과 처우에 대한 꾸준한 노력으로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표창과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기도 하였다.   문화사회복지팀   
    • 인물이야기
    2016-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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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국대 고영초 교수, 카자흐스탄에 희망 선물
    뇌종양, 수두증 치료로 고려인연합회 감사패 받아 ▲ 수술 이후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영초 교수(가운데)의 진료실을 찾은 아이린과 엄마 리엘레나씨. 사진제공 - 건국대학교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은 4일 고영초 원장(건국대병원 신경외과)이 카자흐스탄 고려인 연합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수년간 뇌종양과 수두증 등의 뇌질환을 치료받지 못해 고통을 겪은 카자흐스탄인들을 치료해왔다. 연합회는 감사패를 통해 “고영초 교수는 뇌신경 분야 최고의 명의”라며 “성공적인 치료로 카자흐스탄인들에게 생명과 희망을 선물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고영초 교수와 카자흐스탄의 첫 인연은 임마리나(30)씨였다. 그는 2010년 뇌실 주변에 수십 개의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많은 병원을 찾았지만 치료가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 때 카자흐스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로부터 건국대병원에 대해 듣고 한국을 찾았다. 고 교수에게 진료를 받은 임마리나씨는 그해 겨울, 수술과 감마나이프를 통해 종양이 모두 제거돼 완쾌했다. 임마리나씨의 뇌종양 완치 소식은 카자흐스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아이린(4)의 부모도 이 소식을 듣고 고 교수를 찾았다. 아이린은 태어날 때부터 뇌실출혈 진단을 받고 머리에 물이 차는 수두증을 앓고 있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션트(튜브)를 이용해 뇌실에 찬 물을 복강으로 유도하는 ‘뇌실복강단락술’을 받았으나 션트에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러시아의 의료수준으로는 치료할 방법이 없어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당시 아이린은 한쪽 뇌가 두개골에 눌려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걷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또 뇌가 자라지 못하면서 언어 장애도 찾아왔다. ▲ 고영초 교수가 받은 감사패(왼쪽). 건국대병원도 함께 감사패를 받았다(오른쪽).사진제공 - 건국대학교 고영초 교수는 2010년 잘못된 션트를 바로잡는 수술을 통해 수두증을 치료했다. 이후 뇌가 자랄 수 있도록 두개골을 넓히는 두개골 성형술을 시행했고, 수술 이후 아이린은 건강과 함께 얼굴도 제자리를 찾았다. 언어장애도 나아져 이제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진료를 기다린다. 또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장난치고 놀 수 있게 됐다. “아이린의 변한 모습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라요. 고영초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료 대기 중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린을 바라보며 엄마인 리엘레나(30)씨가 환한 미소로 말했다. 아이린의 수술 성공 후 임마리아씨와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친척 블라드미르 보바(23)씨도 고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이렇듯 성공적인 수술로 새 삶은 찾은 이야기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연합회에도 전해졌다. 고려인 연합회 김로만 회장은 “치료를 받은 모든 분들이 고영초 교수님께 고마워하고 있다”며 “그 마음을 모아 감사패를 드리게 됐다”고 전했다. 고영초 교수는 “병을 고치기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한국까지 온 환자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며 “이를 계기로 건국대병원의 위상도 높인 것 같아 뿌듯함도 크다”고 말했다.
    • 인물이야기
    2016-01-10
  • 자동차정비 기술로 세상에 사랑의 온기를 전한다
      국내 제1호 자동차정비 명장 김관권 교수, 17년 간 학생들과 함께 장애인 대상 봉사활동 실시   지난 17년간 3,000여명의 장애인 차량을 무료로 정비해온 국내 제1호 자동차정비 명장인 서울정수캠퍼스 김관권 교수(59)는 ‘장애인의 카매니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자동차공업사에 취직해 자동차정비와 인연을 맺었다. 낮에는 정비공장에서, 밤에는 야간기계공고를 다니며 학업을 계속했고, 국립중앙직업훈련원을 졸업한 1982년 정수직업전문학교에서 그토록 바라던 교사의 꿈을 이뤘다.   빠르게 발전하는 자동차 기술을 먼저 배워 학생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어 서울산업대학교 기계공학과와 한양대 기계공학과 야간과정에 진학해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을 만큼 그 열정도 남달랐다.   ▲ 제자들에게 자동차정비 교육을 하고 있는 김관권 교수. 사진제공 - 한국폴리텍대학     자동차 정비 부문의 명장 제도가 신설된 1989년 경연대회를 통해 자동차정비 명장에 등극한 김관권 교수는 후학들을 길러내며 자동차정비기능장, 건설기계정비기사 등 14개의 자격증을 따냈다.   김 교수가 길러낸 3,000여명의 제자들은 자동차 업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1993년 일생일대의 큰 시련이 닥쳤다. 사고로 머리를 다쳐 하반신 일부가 마비되어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몸이 불편해지자 비로소 불편한 몸을 가진 장애인들이 더 깊이 느껴 1988년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료 정비 행사라고 해도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어 동사무소에도 협조를 구하고 여기저기 안내문을 써 붙여 겨우 17명의 장애인이 혜택을 받았다.   지금은 총 3,000여대의 장애인 차량을 꾸준히 정비하고 있다. 재학생들은 실제 사용되는 자동차들을 직접 정비하면서 현장감을 익힐 수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김관권 교수는 “명장은 투철한 장인정신과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내가 가진 재능으로 자동차 사고예방과 사회적 약자에게 안전을 돌려주는 사회적 책무를 학생들에게도 심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 인물이야기
    2016-01-10
  • 광주 수피아여고, 애국·자율·인권의 전통 온고지신
       믿음에 굳게 서고, 실력을 양성하고, 정성껏 실천하는 학교   광주 수피아여고(교장 박정권)는 1919년 이 지역의 ‘삼일만세운동’의 발원지라는 자부심과 ‘광주학생운동’의 정신을 통해 오늘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1908년 4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Dr. Eugene Bell)가 허름한 방 한 칸에서 몇몇 여자아이들을 모아놓고 기독교정신에 따라 신학문을 가르쳤던 것이 수피아여고의 시작이었다.     ▲ 광주 수피아여고(교장 박정권)는 1919년 이 지역의 ‘삼일만세운동’의 발원지라는 자부심과 ‘광주학생운동’의 정신을 통해 오늘을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절실한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우며 기도했다. “믿음에 굳게 서자, 실력을 양성하자, 정성껏 실천하자”는 교훈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수피아여고는 불의와 타협을 거부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일제의 신사 참배라는 부당한 요구 앞에 당당히 맞서 1937년 9월 6일 폐교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45년 12월 5일 복교된 수피아여고는 여성에 대한 교육과 인권의 절실함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며 대한민국 여풍(女風)의 발원지라는 자부심으로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박정권 교장은 이런 힘이 자유, 평등, 평화, 사랑과 같은 기독교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2011년 가을 1학년 5명이 금요일 저녁 식사 시간에 모여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토대가 되어 현재 200여 명의 학생이 ‘세수(洗手·세우소서! 수피아)기도회’라는 모임으로 꾸준히 모이고 있다.   ▲‘세수기도회’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이끌어가는 기도 모임으로 현재 2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세수기도회’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이끌어가는 기도 모임이다. 금요일 저녁 시간에 이루어지는 이 모임을 위해 저녁 식사도 포기하는 학생들도 있을 만큼 열기가 대단하다.   이 시간을 통해 진정한 기도를 체험하며 기독교신앙을 더욱더 깊이 깨달아 가는 학생들은 선배들의 삼일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수피아여고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각자의 사명을 일깨운다.   참여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입시 스트레스, 교우관계, 학교생활의 여러 문제는 물론, 친구들의 문제까지 품고 기도한다. 이런 기도는 나눔, 배려, 존중, 사랑과 같은 마음을 넓혀줌으로써 공감능력을 키워준다. 이런 마음이 실천의 힘으로 나타나면서 수피아여고는 청소년 위기관리에 문제가 없는 모범학교로도 인정받고 있다.   ▲ 박정권 교장(왼쪽)은 교직원들이며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세우소서! 수피아’를 줄인 ‘세수(洗手)’라는 단어에는 ‘씻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었다. 한 주간의 끝자락에 모인 학생들은 이 시간에 마음을 씻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교사들은 보람과 함께 새로운 의욕이 솟구친다.   박정권 교장은 “교직원들이며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모두와 함께 수피아여고를 넘어 대한민국의 더 많은 행복을 일구어 나가는데 땀을 흘리겠다”고 말했다.   수피아여고 정문에 있는 “광주 3.1만세운동기념비”를 한 바퀴 돌아 교문을 나서려니, 1919년 3월 1일 그날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광주 박관식 기자  pgs@seniortoday.net    
    • 인물이야기
    201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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