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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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접속 장애로 겪었던 어려움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나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밤에는 1시간씩 동호인끼리 영어 번역 공부를 하고 있다. 전화를 이용하다가 얼마 전부터 화상회의 앱 ‘줌(Zoom)’을 통해서 화상으로 서로 얼굴을 보며 하고 있었다. 그런데 3주 전부터 줌(Zoom)에 연결이 안 되어 나만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속상해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아무런 접속 장애 없이 잘 사용했는데 웬일일까? 그런데 연결만 하려고 하면 내 휴대폰의 와이파이 신호가 사라지면서 연결이 안 되었다. 공유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도, 휴대폰을 껐다가 다시 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접속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나를 기다리지 말고 공부를 시작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혼자서 아무리 애써보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은 포기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각종 해결 방법들을 시도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 후에 휴대폰에 와이파이 신호 세기가 강하게 표시되기에 다시 연결해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알 수 없는 장애로 연결이 안 된다”는 메시지만 뜰뿐 접속이 안 됐다. 그날도 나는 허탕을 쳤다. 몇 시간을 씨름하여 교재를 다 번역해 놓고 공부 시간만 기다렸는데 접속이 안 되니 속이 많이 상했다.   이 방면에 능숙한 지인에게 요청해서 시도를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아내의 휴대폰으로 하면 접속이 잘 되었다. 전화기 때문인 것 같아 A/S 센터에 가보았지만, 휴대폰의 문제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A/S 센터에서 공유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통신사에 고장 신고를 하여 온라인으로 점검을 해보아도 정상이라고 했다. AS기사가 방문을 해서 전파 측정기로 검사하더니 신호가 잘 잡히니 공유기는 정상이라고 했다.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Zoom 연결”, “와이파이 끊기는 문제”를 몇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어디엔가 전화기의 와이파이 문제를 해결할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마지막으로 휴대폰에서 “네트워크 설정 초기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지시한 대로 따라 해서 초기화를 시키고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연결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연결이 되었다. 2주 동안 못 보았던 동호회 회원들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는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 줌(Zoom)으로 한창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데이터가 다 소진되어 이제부터는 요금이 부과된다”는 메시지가 뜨는 것이 아닌가.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데이터가 모두 소진되어 있었다.   추가 사용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요금이 부과되어 있었다. 그동안 줌(Zoom)을 연결하는데 와이파이가 아닌 휴대폰 데이터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방법은 공유기를 바꾸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새로 구입한 공유기에는 안테나가 네 개나 달려있었다.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공유기 밑면에 비밀번호가 있다고 쓰여있다고 했다. 그 번호를 입력했더니 와이파이 기호가 떴다. 이제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지금도 전에 사용하던 공유기에서는 아내 휴대폰은 되고, 내 것은 왜 안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디지털 기기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자주 애를 먹이지만, 시니어들에게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그러더라도 지치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가다가 보면 끝내는 해결할 길이 나오는 것이다. 시니어들의 자산은 풍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축적된 지혜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들의 경쟁력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이 또한 시니어들의 저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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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6-07
  • SNS 사용에서 주의할 점과 대응 지혜
    [시니어투데이]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도착하는 이메일은 그중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일단 삭제하고 남은 것들을 시간 나는 대로 읽어본다.   그중에 한 SNS에 ‘친구 요청’이 있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그 SNS에서 보내주는 이메일 가운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는 요청이 많아 보통은 삭제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Jennifer라는 사람으로부터 요청이 왔다. 외국인이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경우라서 열어 보았다. 나의 SNS 계정에 들어와 내가 쓴 글들에 ‘좋아요’ 표시를 여러 번 해 놓았다.   계정에 들어가서 둘러보니 귀엽게 생긴 아가씨다. 군복을 입고 동료들과 찍은 사진도 여러 장 보였는데 아마 여군인 모양이다. 그런데 며칠 후 메시지가 와있어 열어보니 ‘제발 좀 친구로 추가해주세요’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친구 요청을 거절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다시 요청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까짓것 별일이야 생기겠나 싶어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내 SNS 계정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기는 시리아에 있는 미국 군인인데 반갑다고 인사를 보낸 것이었다. 나도 반갑다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메일을 열었는데 별도의 메신저로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열어보니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자기는 한국계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7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군인이 되어 지금 시리아에서 정보통신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커다란 시련을 겪어서 힘들었겠지만 씩씩한 군인이 되었다니 장하다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시리아라면 한밤중 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몇 시쯤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새벽 2시라고 했다. 그래서 밤이 늦었으니 다음에 얘기하고 어서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야간 근무 중이라 괜찮다고 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묻는다. 가르쳐 주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연결하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통화는 안 되었다. 잠시 후에 메시지가 왔다. 군사시설이라서 보안 때문에 통화가 어렵다고 하면서 ○○톡을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라고 했더니 ○○톡 아이디를 묻는 것이었다. ○○톡은 아이디가 없이 그냥 이름으로 등록이 되었는데 아이디라니? 그래서 아이디는 없다고 하니 잠시 후에 자기 아이디를 알려주며 친구추가를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톡 연결이 되었다. ○○톡으로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통화할 수 없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점차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SNS 프로필을 보고 가장 믿을만한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다. 자기는 자살폭탄 공격이 심한 이곳에서 군에서 퇴직하여 민간인으로 살고 싶다.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가 사촌들과 조부모님도 찾아 정착하여 살고 싶다. 자기를 좀 도와 달라”는 요지의 부탁이었다. 나는 시골에 사는 노인이라서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갈수록 다음과 같은 놀라운 요지의 말을 늘어놓는다. 수색 중에 큰돈을 발견했다. 아마 저항군들의 군자금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이것을 네 명이 나누기로 했는데 자기 몫은 5백만 달러쯤 된다. 달러가 가득 들어 있는 철제상자와 전투 현장의 사진들도 보냈다.   “한국 정착자금으로 사용할 이 돈 상자를 화물로 보낼 터이니 보관을 부탁한다. 자기는 물건이 도착한 2주 후에 한국에 입국하겠다. 액수의 30%를 수고비로 드리겠다. 주소를 알려 달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도 싫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노인이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제발 도와 달라. 당신이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매달린다.   나는 아침에 아내와 공원에서 조깅한 후 시장에 들려오기로 한 터라 더는 붙들고 있을 수도 없어 그냥 ○○톡을 끝내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어린이날 손자들을 데리고 아들 내외가 왔을 때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고 얘기를 하며 ○○톡을 보여주었다. 아들은 이런 사건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가끔 있었던 일이라고 말하며 낯선 메시지는 무시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SNS에 프로필을 노출하다가 보니, 편리함도 있지만,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없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과도한 사생활이나 개인정보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SNS가 편리하고 관계를 통해 존재의 힘을 과시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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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1
  • 과학도를 꿈꾸며 2021년 대학 생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시니어투데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팬데믹(pandemic)으로 온 세상이 힘들었던 2020년이 저물어가던 즈음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대학에 지원한 외손자의 합격 소식이었다.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외손자가 희망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기에 무척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외손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과학을 좋아했고, 학교 대표로 출품한 각종 과학 관련 대회에서 자주 입상하여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아이였다. 명절 때 외가인 우리 집에 오면 과학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수준이 높아 공대를 나온 나도 대답하는 데 쩔쩔매기가 일쑤였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을 했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 외에는 아는 것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고 사양했다.   한번은 가족 모두가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큰일이 벌어졌던 일도 있었다. 외손자가 중학생 때였는데 엄마, 아빠가 모두 외출하고 없는 시간에 혼자서 주방 식탁 한쪽에 실험도구를 차려놓고 화학실험을 하다가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외손자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 얘가 입원해 있다는 화상 전문병원에 가보니 얼굴과 손이 온통 붕대로 감겨있어 눈앞이 캄캄했었다. 다행히 몇 달 후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여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얘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종이로 만든 우주선을 건네고 갔다. 어느 날 책장에 올려놓은 그 종이 우주선을 보고 소망을 담아 적어 본 시다.   종이 우주선   책장 위에서 발사대기 중인 U-3069호 종이 우주선 언제 창공으로 솟아오를까?   우주과학자가 되겠다는 꽃 같은 우리 외손자 놀러 와 만든 꿈을 기도 속에 키워주었다.   주방 한쪽 너의 작은 실험실에서 들린 폭발음은 먼 훗날 네 종이 우주선이 날아오를 전주곡이었을까.   온통 붕대밖에 보이지 않던 그날 병실에서는 가슴이 내려앉았었는데   이제는 그 꿈 펼칠 나날 그리며 쉼 없이 달려가는 네 모습이 할아버지 마음에서 행복하게 솟아오르고 있구나.   나는 과학도로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될 출발을 앞둔 외손자와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될 많은 젊은이에게 축복과 함께 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과학자는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할까.   과학 연구에 대한 과학자의 태도는 인류의 삶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교통기관의 발전에 이바지함으로써 인간의 활동 범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질병과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는 신비로운 힘이 되었다. 이제 인공지능, 로봇 등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인류에 대해 남다르게 따뜻한 감성을 지녀야 한다. 겸손한 마음과 뛰어난 공감력 및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룬 성과이고 이루어갈 미래인데 왜 그래야 하는가?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부모와 두뇌 및 신체적 조건 그리고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한 개인은 자신과 인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수한 자질을 지닌 것과 그에 따른 노력으로 얻은 결과는 그 개인의 영광임과 동시에 인류의 공적 자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삶은 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연구하는 분야의 수많은 선행연구자의 연구 성과와 그를 가르쳐준 많은 스승 그리고 국가적 지원 등 주변의 다양한 도움도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과학자들은 남다른 시대적 사명을 지녀야 하고,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본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에 따른 사명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남다른 자질을 지닌 사람은 그만큼 영광도 크기에 그에 따른 사명감을 보람으로 여기는 넓은 마음과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뜨거운 열정과 큰 노력으로 이루어낸 대학 입시 결과로 과학도로 출발할 시점을 앞둔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자신의 발전을 통해 인류의 행복에도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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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1-11
  • 차량용 빗물받이 교체, 직접 해결하다
    [시니어투데이] 언제부터인가 내 차의 조수석 뒤쪽 좌석 창문 위에 달려있던 빗물받이가 한쪽이 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했지만, 중요한 부품도 아니어서 그대로 타고 다닌 지가 1년이 넘은 것 같다. 그러다가 얼마 전 좁은 길을 지나는데 물건을 내리려고 주차하고 있던 화물차 기사가 갑자기 뒷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내 차의 조수석 백미러가 떨어져 나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는 놀라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려서 보니 앞바퀴 윗부분과 그쪽 문에도 흠집이 생겨있었다. 물론, 화물차 기사가 100% 자신의 과실이라고 인정하여 그쪽 보험사의 부담으로 수리를 다 마쳤다.   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에 보니 조수석 창문에 부착되어있던 빗물받이도 일부가 깨져 있는 것이었다. 그때 사고로 깨진 것이 확실하지만, 뒤늦게 청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를 알고 나니 눈에 거슬려 과감하게 새것으로 교환하기로 했다.   집 부근의 카센터에 가서 교환을 부탁했더니 일을 맡지 않으려 했다. 차량용 부품점에 가면 부품을 살 수 있으니 거기에서 사서 붙이라는 것이었다. 수리비를 많이 받을 수도 없는 하찮은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센터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차량용 부품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순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차량용 빗물받이를 검색하니 차종별로 많은 제품이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서 내 차에 알맞은 빗물받이를 선택하여 주문했더니 며칠 후 물품이 도착했다.   택배로 도착한 빗물받이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파손된 것을 떼어내기만 하면 나도 쉽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조각이 떨어져 나가도 일부는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수리를 의뢰하러 카센터로 갈까 하다가 좀 더 해 보기로 하고,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글로브 박스(glove box)에 넣어두었던 드라이버를 몇 년 만에 꺼내 들었다. 오늘따라 기온도 낮았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힘을 내서 드라이버를 틈새로 끼워 넣는 등 한참 동안을 씨름해서 겨우 모두 떼어낼 수 있었다.         새로 산 빗물받이에는 양면 접착테이프가 붙어있었고, 그 표면에서 보호용으로 부착된 종이를 떼어낸 다음 적당한 위치에 단단히 붙였다. 이렇게 하면 될 것을 그동안 깨어진 빗물받이를 달고 다녔던 것이 안타까웠다.   요즘은 차량용 이외에도 소비자가 손쉽게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용품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불편함을 처리하고 발전적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와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시니어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보다 체력과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시니어들에게는 일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가 있지 않은가.   장비를 쓰는 것이나 조작과 사용이 편리하게 만들어진 용품들이라면 이를 하는 데에서는 힘보다는 지혜가 더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의 강점이고 더욱더 힘차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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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0-11-30
  • 컴퓨터 없는 생활에서 느낀 소회
    [시니어투데이] 내가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가 자주 말썽을 부린지가 여러 달 되었다. 아들이 쓰던 것을 가져와 오래 써왔다. 그동안 바이러스 때문에 포맷도 여러 번 했다. 얼마 전부터는 커서가 꼼짝하지 않기도 하고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정상적으로 컴퓨터를 끄지도 켜지도 못해 강제로 전원을 꺼야 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본체를 떼어서 여러 차례 컴퓨터 수리점에 맡겨야 했다. 컴퓨터 기사를 집에 불러 수리를 맡길 수도 있지만, 출장비를 주어야 하고 또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서 내가 가지고 가서 수리하는 게 편했다. 처음에는 수리해 온 컴퓨터에 다시 케이블을 연결할 때는 전원 케이블, 인터넷 선, 그리고 모니터, 키보드, 프린터, 스피커 등 많은 선 들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도 여러 번 했더니 이력이 생겨 눈감고도 할 수가 있을 정도로 숙달이 되었다.   그러다가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데 또 갑자기 커서가 꼼짝을 않는다. 강제로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켰더니 한참 쓴 글이 다 날아가 버렸다. 다시 작업하다가 한 5분쯤 후에는 또 그런 현상이 반복되더니 결국은 켜지지도 않았다. 또 수리점에 가려고 케이블들을 떼어내는 것을 보던 아내는 이참에 아주 새것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했다. 머리가 허연 사람이 컴퓨터를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더는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젠 나도 툭하면 멈춰버리는 컴퓨터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것을 사기로 했다. 이렇다 보니 컴퓨터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에도 들어갈 수 없어서 아들에게 연락했다. 아들은 얼마 후 컴퓨터를 주문했다고 연락을 했다. 마침 추석 때문에 택배가 많아서 연휴가 끝나야 배송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컴퓨터가 없으니 컴퓨터와 함께 시간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매주 영어 공부를 하고 있기에 회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하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컴퓨터를 좀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곤란하다고 한다. 읍사무소에 물어도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없다고 한다. 도서관에 연락해보니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은 있지만, 코로나19로 도서관 전체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성당 교우에게 컴퓨터 좀 쓰자고 전화로 부탁하고 방문을 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며칠 동안 벌써 100여 통이 들어와 있었다. 우선 회원들에게 자료를 발송해주고 나서 문서를 열어보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해당 문서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궁리 끝에 복지관에라도 가서 이메일도 보내고 내가 맡은 한 페이지라도 번역작업을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면이 있는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했더니 복지관에 와서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허락을 해주었다.   차로 30분을 달려 복지관에 갔더니 예전에는 그렇게 비좁던 주차장이 대부분 비어있어 적막감마저 들었다. 강의를 듣던 인문학반 컴퓨터에서 회원들에게 메일을 발송하고 나서 내가 공부할 자료를 열었는데 문제는 프린터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가지고 간 USB에 문서를 저장한 후 사회복지사에게 인쇄를 부탁했다. 급한 대로 내가 발표할 두 페이지를 번역하여 프린트하고 나니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일 처리를 하고 보니 컴퓨터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마침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를 중계하고 있어서 결승이 끝날 때까지 열흘간은 TV를 보느라 거의 온종일 컴퓨터 없이도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여러 시간 TV를 혼자서 차지하지 못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노래를 좋아하지도 않던 아내가 가수 김호중의 열성 팬이 되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데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주문했던 컴퓨터가 도착해서 아들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있다며 전화를 했다. 다음날 내 서재에는 새 컴퓨터가 놓였다. 이제 컴퓨터에서 문제가 발생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도 상쾌해졌다. 우선 쌓여있는 200여 통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난 후 다시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이제 컴퓨터는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메일 주고받기, 인터넷 쇼핑몰 이용, 인터넷 뱅킹, 인터넷 서핑 등 컴퓨터의 용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이처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만큼 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시니어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지식을 갖춤으로써 더욱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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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색단풍이 가득한 오대산 선재길 걷기
    화성시 걷기연맹 (회장 김명순)은 10월 26일 대한걷기연맹에서 실시하는 동계올림픽 평화 국제 걷기대회에 45명이 참가하여 평창오대산 선재길 걷기 대회에 참가했다.   국제 걷기연맹 회원 16개국에서 150여명이 참가하고 국내에서 500여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종전까지 원주에서 26회나 개최하였으나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든 평창에서 세계인들과 함께 걷고 싶어 하는 소망을 담아 대한걷기연맹 이강옥 회장이 이를 받아들여 평창군과 진부면에서 개최하였다.        행사는 진부면 체육공원에서 가수들을 초대하여 진행했으며, 지역주민들에게도 함께 걷도록 하고 양파등 지역농산물도 나누어 주었다.   평창군수외 진부의 사회단체와 차를 타고 월정사까지 이동하는데 단풍객들과 어울러 교통체증이 있었다.   좁은도로에 수 많은 차량들 20여 분 거리를 1시간 이상 이동하였으나 경찰의 특별 배려로 한 차선을 막고 행사차를 진입시켜 겨우 11:30에 도착하였다. 걷기를 시작하여 젊은 사람들은 왕복 하는 20km를 택하고 나이든 분들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10km를 택하여 완보했다.         선재길은 그 옛날 스님들이 두 곳의 사찰을 오가고 불사를 하든길로 몇 해전 일부 구간을 보완하고 나무 테크와 교량을 설치하여 냇물의 돌다리를 걷지 않게 해 놓은 길로 최근 힐링의 바람을 타고 유명해지고 있다.   함께한 많은 분들이 비록 단풍은  다소 떨어진 상황이지만 간간히 붙어 있는 단풍과 맑고 계곡의 바위들과 어울리는 계곡의 운치에 하루종일 즐거워했다.   16:00시에 종료하고 외국인들은 알벤시아 올림픽 메인장소로 이동하여 하루 더 걷고 갈 예정이나 우리는 진부에 나와서  산채나물 한정식으로 식사하고 이웃한 메밀 부침과 감자떡의 농산물을 사서 싣고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 빠르게 도착했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10-27
  • 참 좋은 여유를 누린 짧은 여름 여행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휴가 계획으로 마음이 들뜬다. 휴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산이나 바다. 그리고 계곡에 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푹 쉬면서 지친 몸의 원기를 회복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떠나 누구라도 같은 마음은 함께 하고픈 사람들과 휴가를 즐기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시니어들이라고 이것이 다를 리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마침 지인을 만나 1박 2일로 경기도 포천으로 떠났다. 나이 든 사람이 바다나 계곡을 간다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여 허브 랜드로 향했다. 허브 랜드는 개장한 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부지가 매우 큰 곳이었고 허브와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젊은이들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갖가지 꽃과 허브로 만든 물품들이 가득하다.   어린이처럼 사고 싶은 것을 고르는 재미를 느끼다 보니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즐기다 보니 배가 고팠다. 허브로 만든 식사를 마치고 포천 아트밸리로 향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니 천문과학관이 있었다.   아트밸리 천문과학관은 다양한 과학체험 전시물과 별자리를 볼 수 있는 천체투영실이 있어 포천의 아름다운 별빛을 최첨단 망원경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올라가면 병풍처럼 둘린 50m 높이의 화강암 절벽이 있고 밑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호수가 있었다.     픽사베이     뜨거운 햇빛을 받은 파란 호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돌을 캐낸 이 자리에서 물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절벽과 함께 흐르는 호수는 마치 북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렇게 높은 산에 파란 호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시원하게 했고 그 옆에는 야외공연장까지 있었다.   50m의 화강암 절벽과 천주호 사이에 설치된 무대는 약 3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4월-10월 주말 및 휴일에는 화강암 절벽을 활용한 영화 상영과 소리 울림 현상을 이용한 독특한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이곳은 본래 채석장이었던 곳이었는데 폐쇄된 석산을 아트밸리로 조성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화강암 포천석은 다양한 건축자재 및 기념비나 비석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포천석은 화강섬록암으로 타지역의 화강암보다 밝아 매우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던 화강암 채석장이 폐쇄되어 애물단지가 되었다가 이제는 아트밸리로 부상하여 지역의 관광단지로 효자 노릇을 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치혁신이 아닌가. 자연이나 물건이 낡았다고 폐품이 아니다. 가치를 혁신하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은 사람도 다르지 않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 아니라, ‘Know 人’(인생을 제대로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냉소적이고 폐쇄적인 생각은 삶을 망칠 것이다. 이것은 뇌과학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긍정적 생각은 뇌를 활성화하고 면역력도 높여준다는 것이다.   애물단지였던 채석장이 한 사람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멋진 관광지로 변화한 것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숙소를 찾았다. 이곳저곳을 탐색한 결과, 값도 저렴하고 시설도 좋은 호텔로 정한 것이다.   개인별 차고가 있고 복도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무인 시스템으로 되어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얻은 결과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을 테지만, 스마트폰 하나면 얼마든지 이렇게 저렴하고 좋은 곳을 찾을 수가 있다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세상도 보는구나”라고 하면서 우리는 즐거워하였다.   다음 날 아침은 생식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평강랜드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 나무가 있고 꽃이 있는 산을 택했다. 넓고 큰 산에다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시설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동갈비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동갈비식당’을 찾아갔다.   어느 식당은 손님으로 가득하고, 어느 식당은 텅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손님이 적당히 있는 집을 택했다. 2인분을 시켜 둘이서 난생처음으로 이동갈비를 먹는 추억을 남겼다. 1박 2일로 짧은 시간이었으나 우리는 너무나 행복한 휴가를 보냈다.   이런 쉼과 여유를 평소엔 누리기가 어려울까? 정말로 바빠서일까? 아니면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일까? 잠시만 내려놓으면 된다. 이런 결단에서 삶의 여유와 행복이 피어나는 것이다. 굳이 해외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아름답고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렴한 비용으로도 즐길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다음에도 이런 추억을 남길 꿈을 꾸면서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8-20
  • 꿈 너머 꿈을 꾸자
    세상에서 어린 생명이 태어나는 날만큼 기쁘고 행복한 날도 없을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한 가정의 미래이기도 하거니와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이를 보면서 꿈나무들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 어린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정과 나라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꿈을 품고 사는 존재다. 꿈은 역경을 이겨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준다. 꿈은 낙망을 막아 준다. 원망하려는 마음도 차단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게 한다. 꿈은 위기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때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실패를 당하면 큰 좌절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면 바닥으로 떨어져 부딪힐 때 다시 튀어 오르는 공을 보라. 실패에서도 다시 튀어 오르게 하는 힘이 꿈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처럼 사람은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한다. 이런 사람은 탄력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상상하지 못했던 찬란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 한계를 깨고 나오는 것에서부터 아름다움은 시작된다. 찰리 채플린은 “절망은 마약이다. 절망은 생각을 무관심으로 잠재울 뿐이다”고 말했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꿈은 희망이고 생명력이다.           그래서 ‘희망을 희망하라’고 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자신감을 가지고 산다. 어떤 환경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막연하게 어떤 행운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노신은 《고향》이라는 소설에서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니면서 결국 생겨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횡재를 기대하지 않는다. 밀물을 기대하며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한다. 과거의 실패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바다로 나아간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너 루즈벨트는 “미래는 자신의 꿈이 멋지다고 믿는 사람들의 것이다”고 말했다.   내 안에 있는 절망감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꿈이다. 꿈은 허황한 것이 아니고, 막연한 것도 아니다. 이 꿈이라는 것이 자신의 바람을 성취하는 것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욕망 성취나 이기심의 달성을 꿈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꿈 너머 꿈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성취한 꿈으로 인해 주변도 행복해지고, 사회와 지구촌도 행복해지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꿈 너머 꿈이 아니겠는가.   언제, 어떤 여건에서도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러나 꿈 너머 꿈이 확산해 나가는 만큼 행복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행복은 유기적이다. 꿈도 마찬가지다. 꿈도 행복도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생각할 때 더욱더 크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결실하게 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7-03
  • 날마다 행복을 창출하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집 근처에 있는 야산에 올라갔다. 나무 그늘 속으로 발길을 옮기니 소나무 향기와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긴다. 얼마 만인가? 작년에 오고, 올해 처음으로 오르는 이 산에 있는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이며 들꽃들이 나를 반기는 것 같다. 각종 나무와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산은 지친 사람들에게 쉼과 평안을 준다.   1년 중에 벌써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한동안 아카시아 꽃과 밤나무 꽃들로 산을 하얗게 물들이더니, 벌써 한쪽에서는 열매가 맺히고 수확할 때가 된 것도 있다. 매실은 벌써 수확했고, 자두는 요즘 가장 맛이 좋을 때다. 머지않아 복숭아가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밭에서도 농작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마늘과 양파. 감자는 수확한 지 한참을 지났고, 참외나 수박은 한창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요즘은 마트에 가면 언제라도 수박이나 참외를 살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다. 하지만 제철에 맛볼 수 있는 과일들은 지금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걷다 보니, 빨간 열매들을 주렁주렁 매단 산딸기 덩굴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가시가 돋친 덩굴줄기에서 달린 산딸기는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운지 무더기로 모여 수풀 사이로 빨개진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다.         불현듯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소녀 감성이 되살아났다. 무작정 산딸기가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그중에서도 큰 것을 골라 따서 입안에 넣었다. 약간 새콤함 속에 달콤함이 배어 나오며 미각을 자극한다. 이어서 부드러운 과즙이 미처 제 자랑도 다 하기 전에 깨알만 한 씨앗이 딸기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산길을 오르느라 말랐던 목을 축여주며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되살려주니,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먹는 것에는 묘한 것이 숨어있다. 미각을 일깨우는 것과 함께 추억과 삶이 스며있다. 산딸기야말로 유독 더 그런 것 같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오른 산길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삶에서도 그런 것 같다. 소소한 것들이 쌓여서 우리의 인생이 된다. 작은 기쁨과 보람들이 순간들을 장식하여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된다. 이런 세월이 흘러 일 년이 되고, 수십 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오른 산길에서 발견한 산딸기가 준 행복이 상상 이상의 힘이 되어줬다. 어찌 보면 삶에서도 산딸기와 같은 소소한 보석들을 발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스쳐 지날만한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혁신하면 되는 것이다.   산딸기를 만난 행복감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산길을 오르니, 자연과 교감하게 되었다. 피톤치드를 비롯하여 온갖 향기가 배어 있는 밝은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 이런 기쁨에 젖어 드니 감사가 나오고 콧노래도 흘러나온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희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자신의 신앙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서, 이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됨을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와 산딸기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산딸기의 효능은 생각보다 많았다.   혈액순환, 안구건조증을 예방, 시력을 보호, 다이어트, 암 예방, 변비. 피부미용. 면역력 강화, 당뇨, 갱년기 여성, 신장, 어린이 성장발육 등에 좋고, 비타민 C도 많아 피로 해소에도 좋다고 한다.   만병통치약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산딸기 덩굴은 화려하거나 거대하지도 못하다. 볼품없는 가시 돋친 덩굴줄기에서 나온 열매지만, 그 효능은 그야말로 엄청나고 화려하지 않은가.   자연 속에 있는 식물들 가운데 이렇게 좋은 것이 어찌 산딸기뿐이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대인의 삶이어서 안타깝다.   모든 것은 유기적이다. 산딸기를 만난 것은 산을 올랐기에 생긴 일이다. 산을 오른 것은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고, 다른 일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유기적인 것도 자신이 만들어 가는 복잡계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다. 그래서 삶을 아름답고 복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가운데 만난 산딸기와 그로 인해 얻게 된 행복은 보석과도 같은 것이었다. 작지만 매우 가치 있고 행복감을 주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마치 식물이 주변에 가득한 빛을 받으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과도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행복의 재료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행복은 나누고 베풀면 더욱더 커다랗게 변화하는 신비로운 것이다. 이 신비로움을 아끼지 말고 체험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7-01
  • 더욱더 아름다운 나날을 기대하며
    치료를 시작하고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한두 달이면 낫겠지”라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두 달, 석 달이 지나서 일 년이 되었다. 참으로 세월은 빠르다. 시간을 맞춰 다니다 보니 점심시간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간을 맞추어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통원치료를 받으러 갈 때도 도시락을 싸서 가야 했다.   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치료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이었다. 조금만 잘 못 먹으면 당장 탈이 나기 때문이었다. 약을 먹는 시간과 치료 시간을 맞추려면 점심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러서 차 안에서 먹기도 했고, 어느 때는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어느 때는 공원으로 가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옆에 다가와 멀리서 놀러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해놓고 멋쩍어서 혼자 웃기도 했다.   젊었을 때 이러한 일을 겪게 되었더라면 무척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라도 치료할 수 있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소풍 다니는 것처럼 즐기며 다녔다. 공원을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시락을 먹는 즐거움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날마다 죽과 함께 일 년을 보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1년이 다 되도록 김치를 못 먹었던 것이 무척 힘들었다. 또한, 누가 외식하자고 하면 그것도 참 곤란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언젠가는 마음 놓고 외식하게 될 날을 고대했다. 그렇게 6개월을 더 보내고 두 번째 추석을 보냈다. 나는 병원 약을 더는 먹지 않겠다는 용기를 냈다.   내 나름대로 지식을 얻어 약이 아닌 다른 식품으로 다스리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이제는 죽이 아니라, 질게나마 밥을 먹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단맛이 나고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동안 잘 참은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설날이 다가왔다. 아들네 가족이 이번 설에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어쩌면 음식 때문에 고생할지도 모르지만, 용기를 냈다. 그동안 외식을 금하고 나들이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가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맛있는 음식도 많을 것 같았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식사 시간이 되었다. 먼저 음식이 걱정되었다. 식당에 들어가 시금치 카레를 시켰다. 너무나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이렇게만 먹을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은 아주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호텔에 들어가니 마침 내가 먹기 좋은 음식들이 많았다. 아들 내외가 나보다 더 좋아하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3박 4일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는 동안 아들 내외가 내 음식에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2년 만에 간 가족 여행은 지난날의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문제가 생겼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됐다. 또다시 죽을 먹으며 속을 달랬다. 이렇게 몇 번이고 밥과 죽으로 번갈아 먹으며 관리했더니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는 육류도 먹을 수 있다. 참으로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이제는 한 끼니만 안 먹어도 배가 고프다. 몸무게는 겨우 40kg 정도밖에 안 되지만, 사람들은 나를 보며 건강해 보인다고 말한다. 얼마나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인가? 새롭게 세상을 태어난 기분이다.   사람은 건강할 때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 한번 잃은 건강은 무척 회복하기 어렵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라도 그것을 잃어보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지닌 것이 귀한지도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 한번 잃어다가 회복함으로써 진한 감사 가운데 살 수 있다면, 이것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바로 내가 그렇다. 이 질병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의 기도와 격려의 덕택이다. 앞으로도 이 감사를 잊지 않고 더욱더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즐거운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6-05
  • 올바른 세계관과 분별력이 필요하다
    천차만별의 사람이 진료받는 곳이 병원이다. 좀 유명세가 있는 병원이라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렇다 보니 병원은 만물상과도 같다. 내가 치료받았던 병원도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왔고, 어떤 사람은 캐나다에서 왔다고 한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치료하다가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날 고등학생이 우리 방에 들어왔다. 너무나 음식을 잘 먹던 학생이 어느 날부터 탈이 나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입원하는 날부터 전혀 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없는 눈치였다. 금식도 힘들어했고, 죽을 먹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랬기에 날마다 영양제로 버텼다.   이렇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 간호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옆에서 보노라니 병난 딸 간호하다가 엄마까지 병이 날 것 같았다. 이 여고생은 사흘을 못 견디고 퇴원해버렸다.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길든 젊은 아이들이 음식을 절제하고 가려야 하는 치료를 제대로 받기란 고행처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금만 참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인데 인내할 수 없어서 고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치료하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치료하는 동안에는 음식을 잘 다스리다가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예전처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한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치료할 때보다 그 후에 더 중요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 음식이다. 먹고 싶은 욕망을 절제하는 것은 자신과 치르는 싸움이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참을 줄 아는 힘을 길러야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어떤 환경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병원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온갖 시선과 관점들이 존재한다. 이런 곳에서 뚜렷한 관점과 세계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분별하여 올곧게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늘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을 일깨우며 정의롭고 바른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면 음식 때문에 서로가 불편할 것 같아 병원에 더 남아있기로 했다. 장담할 수 없다면 피하는 것도 지혜가 아니겠는가. 퇴원을 하고 몇 달이 지나 설날이 되었을 때도, 병원을 선택했다.   환우들은 병원으로 도망 온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나 혼자만 그렇게 지낸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같은 처지의 환우들이 있었기에 서로가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이겨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묽은 호박죽을 먹고 나니 배가 고팠다. 이제야,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신호였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치료가 된다는 뜻이었다. 너무나 기뻤다.   “이이고 배고파.”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대로 가면 제대로 된 치료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면 환우들과 운동하러 홍릉을 찾았다. 관광차 일부러 오기도 할 텐데 이렇게라도 자주 들르게 되니 감사하지 않은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치료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점점 더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고, 감사가 넘친다. 무엇보다도 올바른 판단력과 인내하는 힘이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올바른 시야를 확보하고, 흔들림 없이 올곧게 걸어야, 바른 결과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6-04
  • 아파도 소중한 삶이다
    치료과정에서 금식하다 보면 힘이 없어 젊은 사람들도 영양제 주사를 맞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까지도 이겨나갔다. 워낙에 금식하는 것이 단련되어서 웬만큼 아프거나 굶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간호사부터 한 방에서 치료받는 사람들이 모두 내 의지에 놀라워했다.   힘이 없을 것이라며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게 했다. 70세가 넘었고 머리까지 하얀 할머니이니, 혹시 힘이 없어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일부러 운동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렸다. 어느 때는 살그머니 병원을 빠져나와 나와 근처에 있는 학교 마당을 돌기도 했다.   정신력이 약해지면 어떤 병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더 강한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이 약해지면 어떤 병도 이기지 못한다. 마음이 강할수록 모든 병을 이길 수 있다. 감기도 무서워하면 죽는다고 한다. 나는 옛날에 이미 유방암을 이긴 적이 있어서 이까짓 것쯤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혼자서 아침 운동을 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치료에 들어갔다. 한방과 양방으로 통합적인 치료를 받았다. 얼마나 위벽이 굳었는지 등에 침을 놓으면 침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주치의도 침을 놓으며 무척 놀랐다. 간신히 침을 놓으면 등과 가슴이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게 3주간의 입원을 마치고 일주일에 3일씩 통원치료를 받았다.   너무나 힘이 들었다. 이런 과정에서도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다. 환우들끼리 서로 만나면 빨리 건강해서 맛있는 음식 실컷 먹어보자는 것이 인사였다. 이렇게 꾸준하게 치료를 받으며 걷는 운동이라도 열심히 했다.         치료하는 동안에는 죽을 먹어야 했다. 비록 죽을 먹어서 힘은 없었지만, 운동과 독서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치료받는 동안이라도 무의미하게 보내기는 싫었다. 삶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인식을 실천하는 데에도 충실해지고 싶어서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간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니, 이 고난도 반드시 지나갈 것이다. 배고파서 먹고, 먹고 싶어서 먹는 그런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매 순간을 소중하게 가꾸는 심정으로 살았다. 밝고 따뜻한 봄날처럼 나에게도 건강하게 활기찬 삶을 사는 날이 찾아오리라는 믿음으로 힘든 시간을 이겨나갔다.   치료가 잘되어 음식을 먹을 때까지는 모든 음식을 절제해야 했다. 치료단계와 함께 증상에 따라 음식도 맞추어 먹게 했다. 음료, 과일, 육류, 생선, 채소, 모든 것을 치료단계에 맞춰 먹어야 했다. 생선은 튀겨도 안 되고 구워도 안 된다. 무조건 찜으로 먹어야 했다. 여름철에 먹는 상추쌈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치료 기간이 여름철이었기에 상추쌈. 오이. 풋고추 등을 된장에 찍어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런 것 하나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으니 참으로 고역이었다. 우유도. 요구르트도. 음료수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도토리묵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로 설사가 나서 축 처지고 말았다.   부드러운 음식이기에 먹어도 될 줄 알았는데 바로 문제가 터진 것이었다.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외식하게 되었는데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간장게장을 먹었다. 역시나 설사를 하고 말았다. 먹지 말라고 한 것은 먹지 말아야 했는데 먹고 싶은 생각에 지고 말았던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참는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명은 천하보다 귀중하다고 한다. 죽은 사람에게 천하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연이 아름다워 보이고, 음식도 귀하게 여겨지고, 주변의 사람들도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자. 순간 모든 것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5-28
  • 산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이를 넘어 인간의 수명을 150세로 내다보는 견해도 있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소망이다. 이렇다 보니 몸에 좋다는 식품이며 의약품의 개발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운동마저도 건강관리를 위해 한다. 장수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돈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사는 물론, 의료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매우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장수도 좋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산업 분야가 날로 성장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젖을 빨게 된다. 이것은 본능적인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부족하면 울어서라도 부족함을 채워나간다. 허기를 채우는 식욕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본질적 욕구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입맛이 없다면 그것은 건강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나는 최근에 음식이 너무 맛있다. 무엇을 먹든지 맛있다. “맛있다”라고 하면서 먹으니 먹는 즐거움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사람이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져서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폭식도 하고 야식도 하고 간식도 한다. 대부분 사람에게서 위장병이 생기는 이유가 음식과 관련이 있다.         나는 지금이야 맛있게 잘 먹지만, 예전에는 밥을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나는 간식도 야식도 폭식도 하지 않는다. 급하게 먹지도 않고 아주 천천히 먹는다. 마냥 씹고 있다. 어떤 장소에 가서도 항상 가장 늦게까지 먹는다. 그러니 어떤 모임에 가서 식사할 때면 나는 최대한 앞에 서서 빨리 들어간다. 일찍 들어가서 먹기 시작해도 항상 늦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먹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모르고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먹지 않으면 배고파야 정상인데, 나는 배고픔을 모르는 것이 병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부럽기만 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때는 일부러 맛있게 먹는 척했을 때도 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영양분을 흡수하는 차원에서 먹어야 했던 것이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인간의 행복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모르니,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나이가 들면 밥의 힘으로 산다고 한다. 정말이다. 젊어서는 하루에 한 끼니를 먹으나, 두 끼니를 먹으나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한 끼니만 먹지 않으면, 손발이 벌벌 떨리고 어지러워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그래서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일 년에 2kg 정도나 살이 빠졌다. 배는 고프지 않은데 어지럽고 구토가 나오고 머리는 쪼개질 것같이 아팠다. 온몸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나 뇌에 이상이 있는가 싶어서 병원에 가 검사받아 봐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메스껍고 구토 증상이 심해졌다.   혹시 위암은 아니겠냐는 의심이 생겼다.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위암은 아니고 위염이라고 했다. 위염은 보통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자꾸만 위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 위장병 전문병원을 알게 되어서 무조건 찾아갔다. 머리 아픈 것도, 온몸의 통증도, 잠을 자지 못하는 것도, 내가 겪는 증상 모두가 위장병 탓이라는 것이었다.   위가 쪼그라들고 말라버려서 위암 직전이라는 것이었다. 내시경으로는 위벽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내 위는 신경이 마비되어 밥이 들어가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100명 중의 한 사람인 챔피언급 환자라고 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보다 치료하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검사한 후 입원을 하라는 결정이 났다. 젊어서 여러 번 병원에 입원해 치료도 하고 수술도 했던 경험 탓에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정말로 싫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그냥 지내다가 세상과 작별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삶을 어찌 그렇게 쉽게 여길 일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려면 입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3주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병원 생활은 모두 청산한 줄 알았는데 또다시 시작됐다. 무척 창피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병원 생활을 자주 해야 하는지, 이제는 병원 생활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에는 수술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병원 생활이 꽤 길었다. 입원하니, 무조건 금식을 시켰다. 금식하면서 간에 쌓인 독소를 모두 빼내는 작업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금식 후에는 미음으로 위를 다스리고, 후에는 날마다 묽은 죽을 번갈아 가며 먹게 했다.   신생아처럼 음식을 섭취하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맛있게 먹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만큼 더욱더 간절한 마음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맛있게 먹을 날을 기대하며 열심히 치료받는 데 집중했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5-27
  • 일상에서 피어나는 행복
    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나 흔한 시대여서 손주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무얼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그렇게 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특별하지 않은 학용품은 싫증 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잊어버리더라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들은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어떤 것을 선물해 주어야 할지 무척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편하게 현금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황금만능주의 시대가 된 것일까?   어린이날이 지나면 곧 어버이날이다 보니, 어느 하루를 정해서 함께 식사하거나 놀이동산을 찾기도 한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손녀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이 됐다. 내가 자라던 시대는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작은 것이라도 생길라치면 그것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니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새록새록 추억이 되살아난다. 나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크레파스를 사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상으로 받은 크레파스가 있어서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등학교 3년 동안에는 물감을 사 본 일이 없다. 그러니 물감이 필요한 미술 시간이 내게는 아주 고통스럽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추억이 떠올라서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손녀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다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샀다. 아들네 가족과 함께 바람도 쐬고 식사도 하려고 독산성을 향하여 출발했다. 나는 자동차 안에서 손녀에게 선물을 주며 나의 과거 이야기를 했다. 손녀야 부족한 것도, 크게 부러울 것 없겠지만, 특별히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선물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학창시절 12년 동안 사보지 못했고,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손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들을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이 손녀에게 전달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독산성에 오른 우리는 산책 가운데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산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우리처럼 3대가 모여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러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도 3대가 어울린 가족들로 붐볐다. 손녀는 내가 사준 크레파스가 정감이 가는가 보다. 손에서 놓지 않고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그리고 난 후 할머니를 그리겠다고 내 앞에 스케치북을 펼쳤다. 계속하여 나를 바라보면서 손놀림을 했다. 탁자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그리더니 한쪽으로 가서 무엇인가 열심히 글을 썼다. 그리고는 그림과 그 옆에 쓴 글을 내 앞에 내놓았다.   “할머니 사랑해요. 4살 때 산에 가서 술래잡기, 숨바꼭질 같은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했던 것이 8살이 돼서도 생각나요. 다리 아플 때는 할머니가 어부바해주어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하진 올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감춰 두었던 향기처럼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피로가 싹 사라졌다. 흐뭇한 마음이 몸 맘에 가득해지며 행복이 출렁거렸다.   특히 노인들은 자식들이 자주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점점 더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다행히도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이 있어서 외로운 노인들을 챙겨주기도 한다. 이런 처지를 바라보노라며 가정의 달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서글프다.   뉴스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버이날 무료급식소에 제일 먼저 나온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자녀가 없습니까?”라고 기자가 묻는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4형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혼자 살면서 어버이날인데도 무료급식소에 나와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들이 바빠서 명절 때만 본다고 한다. 정말 바빠서일까?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   그뿐인가? 듣고 싶지 않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 부모의 잔소리가 싫어서 자살하는 사건 등 말로 표현하기조차 곤혹스럽고 부끄럽다.   효의 민족이라고 불리던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랑도, 정도, 사라지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득해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지만 행복지수는 높아 가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할까?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인데 행복하다는 말보다 불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누구의 탓이 아니다. 모두가 우리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너를 보기 전에 먼저 나를 본다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나를 보지 않고 너를 보고 있다. 나를 보지 못하고서는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   수십억 원을 들인 행사가 끝난 다음, 그 자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는 일도 다반사다.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탓일까? 수십억 원의 유발 효과가 겨우 쓰레기란 말인가.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을 배우고 익히지 못한 탓이다. 나를 돌아보며 우리를 생각하는 성찰적 실천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읽고,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면 서로가 행복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아주 작은 것이나 소소함에서도 사랑과 행복이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5-13
  • 인내해야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울 수 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고 한다. 하지만 인내가 어디 쉬운 일인가. 쉽다면 인내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에 신경을 쓴다.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중독에 빠질 가능성도 큰 편이다. 어떤 사람은 홈쇼핑에 빠져 빚더미 위에 앉은 사람도 있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가정이 파탄 난 것을 보기도 한다.   세상에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인내를 요구한다. 그만큼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고, 보람과 기쁨을 준다는 의미다. 인내는 성실을 내포하는 것이며, 희망이 있을 때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좋은 일을 성취하는 데에도 인내가 필요하지만,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도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일으키는 사건·사고들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심지어 살인에 까지도 이르게 되는 일도 있다. 모두 인내하지 못하는 탓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성미가 급한 편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내력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불쌍한 사람이다”고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3초만 기다리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옛말에 ‘참을 인(忍)’ 자를 세 번만 쓰면 극한 분노로 벌이게 될 일도 피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인내는 성실을 내포하는 것이며, 희망이 있을 때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월터 미셸(W. Mischel)은 1966년 네 살짜리 653명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하나씩을 주면서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두 개를 더 주겠다는 실험을 했다. 절반의 아이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 하나를 먹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81년 그 아이들의 삶의 현상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5분을 참아서 한 개를 더 받아먹었던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우수하더라는 것이다. 성적을 비롯해 삶의 전반에서 훨씬 더 뛰어났다는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했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안고 살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는가. 인내는 이성을 지닌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고 고차원적인 실천 의지다. 인내가 부족하면 보통의 삶이 아니라, 저급한 삶으로 빨려들기 쉽다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은 인내를 통해 주어진다. 물을 끓이는 것도 100℃가 될 때까지 인내하고 열을 가해야 한다. “하늘은 언제나 기다릴 줄 아는 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라는 말이 있다.   인내는 누가 공짜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쌓아 나가야 한다. 오늘을 견뎌 밝은 내일을 창출하리라는 기대감을 지닌 사람이라야 인내할 수 있다.   예전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요즘 사람들이 인내력이 더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기술의 발달로 무엇이든지 쉽고 빠르게 얻게 된 탓도 있다. 무엇보다도 인내의 밑거름이 되는 고난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내를 배울 기회가 부족했다. 오히려 조급함을 채우기에 급급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농부는 때를 기다리며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해낸다. 곡식을 심기 위해 봄비를 기다린다. 농작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여름비를 기다린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린 끝에 수학의 기쁨을 맛본다. 그것이 기다림의 결과로 얻는 기쁨 아닌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기다릴 수 없다. 다린다는 것은 자신을 이기는 작업이다. 자아를 깨뜨리고 성찰해야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을 바라보며 부족함을 발견하고 채워나가는 지능을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한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끊임없이 채워나갈 줄 아는 사람이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이다. 사무엘 스마일스는 《자조론》에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에델바이스는 고산지대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폭설과 강풍을 견뎌냈기에 신비로운 색을 낸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품고 잘 견뎌낼 때, 마침내 아름다운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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