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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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접속 장애로 겪었던 어려움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나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밤에는 1시간씩 동호인끼리 영어 번역 공부를 하고 있다. 전화를 이용하다가 얼마 전부터 화상회의 앱 ‘줌(Zoom)’을 통해서 화상으로 서로 얼굴을 보며 하고 있었다. 그런데 3주 전부터 줌(Zoom)에 연결이 안 되어 나만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속상해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아무런 접속 장애 없이 잘 사용했는데 웬일일까? 그런데 연결만 하려고 하면 내 휴대폰의 와이파이 신호가 사라지면서 연결이 안 되었다. 공유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도, 휴대폰을 껐다가 다시 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접속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나를 기다리지 말고 공부를 시작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혼자서 아무리 애써보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은 포기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각종 해결 방법들을 시도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 후에 휴대폰에 와이파이 신호 세기가 강하게 표시되기에 다시 연결해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알 수 없는 장애로 연결이 안 된다”는 메시지만 뜰뿐 접속이 안 됐다. 그날도 나는 허탕을 쳤다. 몇 시간을 씨름하여 교재를 다 번역해 놓고 공부 시간만 기다렸는데 접속이 안 되니 속이 많이 상했다.   이 방면에 능숙한 지인에게 요청해서 시도를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아내의 휴대폰으로 하면 접속이 잘 되었다. 전화기 때문인 것 같아 A/S 센터에 가보았지만, 휴대폰의 문제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A/S 센터에서 공유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통신사에 고장 신고를 하여 온라인으로 점검을 해보아도 정상이라고 했다. AS기사가 방문을 해서 전파 측정기로 검사하더니 신호가 잘 잡히니 공유기는 정상이라고 했다.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Zoom 연결”, “와이파이 끊기는 문제”를 몇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어디엔가 전화기의 와이파이 문제를 해결할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마지막으로 휴대폰에서 “네트워크 설정 초기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지시한 대로 따라 해서 초기화를 시키고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연결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연결이 되었다. 2주 동안 못 보았던 동호회 회원들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는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 줌(Zoom)으로 한창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데이터가 다 소진되어 이제부터는 요금이 부과된다”는 메시지가 뜨는 것이 아닌가.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데이터가 모두 소진되어 있었다.   추가 사용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요금이 부과되어 있었다. 그동안 줌(Zoom)을 연결하는데 와이파이가 아닌 휴대폰 데이터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방법은 공유기를 바꾸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새로 구입한 공유기에는 안테나가 네 개나 달려있었다.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공유기 밑면에 비밀번호가 있다고 쓰여있다고 했다. 그 번호를 입력했더니 와이파이 기호가 떴다. 이제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지금도 전에 사용하던 공유기에서는 아내 휴대폰은 되고, 내 것은 왜 안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디지털 기기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자주 애를 먹이지만, 시니어들에게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그러더라도 지치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가다가 보면 끝내는 해결할 길이 나오는 것이다. 시니어들의 자산은 풍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축적된 지혜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들의 경쟁력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이 또한 시니어들의 저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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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6-07
  • SNS 사용에서 주의할 점과 대응 지혜
    [시니어투데이]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도착하는 이메일은 그중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일단 삭제하고 남은 것들을 시간 나는 대로 읽어본다.   그중에 한 SNS에 ‘친구 요청’이 있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그 SNS에서 보내주는 이메일 가운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는 요청이 많아 보통은 삭제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Jennifer라는 사람으로부터 요청이 왔다. 외국인이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경우라서 열어 보았다. 나의 SNS 계정에 들어와 내가 쓴 글들에 ‘좋아요’ 표시를 여러 번 해 놓았다.   계정에 들어가서 둘러보니 귀엽게 생긴 아가씨다. 군복을 입고 동료들과 찍은 사진도 여러 장 보였는데 아마 여군인 모양이다. 그런데 며칠 후 메시지가 와있어 열어보니 ‘제발 좀 친구로 추가해주세요’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친구 요청을 거절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다시 요청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까짓것 별일이야 생기겠나 싶어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내 SNS 계정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기는 시리아에 있는 미국 군인인데 반갑다고 인사를 보낸 것이었다. 나도 반갑다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메일을 열었는데 별도의 메신저로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열어보니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자기는 한국계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7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군인이 되어 지금 시리아에서 정보통신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커다란 시련을 겪어서 힘들었겠지만 씩씩한 군인이 되었다니 장하다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시리아라면 한밤중 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몇 시쯤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새벽 2시라고 했다. 그래서 밤이 늦었으니 다음에 얘기하고 어서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야간 근무 중이라 괜찮다고 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묻는다. 가르쳐 주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연결하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통화는 안 되었다. 잠시 후에 메시지가 왔다. 군사시설이라서 보안 때문에 통화가 어렵다고 하면서 ○○톡을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라고 했더니 ○○톡 아이디를 묻는 것이었다. ○○톡은 아이디가 없이 그냥 이름으로 등록이 되었는데 아이디라니? 그래서 아이디는 없다고 하니 잠시 후에 자기 아이디를 알려주며 친구추가를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톡 연결이 되었다. ○○톡으로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통화할 수 없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점차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SNS 프로필을 보고 가장 믿을만한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다. 자기는 자살폭탄 공격이 심한 이곳에서 군에서 퇴직하여 민간인으로 살고 싶다.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가 사촌들과 조부모님도 찾아 정착하여 살고 싶다. 자기를 좀 도와 달라”는 요지의 부탁이었다. 나는 시골에 사는 노인이라서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갈수록 다음과 같은 놀라운 요지의 말을 늘어놓는다. 수색 중에 큰돈을 발견했다. 아마 저항군들의 군자금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이것을 네 명이 나누기로 했는데 자기 몫은 5백만 달러쯤 된다. 달러가 가득 들어 있는 철제상자와 전투 현장의 사진들도 보냈다.   “한국 정착자금으로 사용할 이 돈 상자를 화물로 보낼 터이니 보관을 부탁한다. 자기는 물건이 도착한 2주 후에 한국에 입국하겠다. 액수의 30%를 수고비로 드리겠다. 주소를 알려 달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도 싫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노인이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제발 도와 달라. 당신이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매달린다.   나는 아침에 아내와 공원에서 조깅한 후 시장에 들려오기로 한 터라 더는 붙들고 있을 수도 없어 그냥 ○○톡을 끝내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어린이날 손자들을 데리고 아들 내외가 왔을 때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고 얘기를 하며 ○○톡을 보여주었다. 아들은 이런 사건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가끔 있었던 일이라고 말하며 낯선 메시지는 무시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SNS에 프로필을 노출하다가 보니, 편리함도 있지만,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없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과도한 사생활이나 개인정보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SNS가 편리하고 관계를 통해 존재의 힘을 과시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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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1
  • 과학도를 꿈꾸며 2021년 대학 생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시니어투데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팬데믹(pandemic)으로 온 세상이 힘들었던 2020년이 저물어가던 즈음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대학에 지원한 외손자의 합격 소식이었다.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외손자가 희망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기에 무척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외손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과학을 좋아했고, 학교 대표로 출품한 각종 과학 관련 대회에서 자주 입상하여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아이였다. 명절 때 외가인 우리 집에 오면 과학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수준이 높아 공대를 나온 나도 대답하는 데 쩔쩔매기가 일쑤였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을 했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 외에는 아는 것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고 사양했다.   한번은 가족 모두가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큰일이 벌어졌던 일도 있었다. 외손자가 중학생 때였는데 엄마, 아빠가 모두 외출하고 없는 시간에 혼자서 주방 식탁 한쪽에 실험도구를 차려놓고 화학실험을 하다가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외손자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 얘가 입원해 있다는 화상 전문병원에 가보니 얼굴과 손이 온통 붕대로 감겨있어 눈앞이 캄캄했었다. 다행히 몇 달 후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여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얘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종이로 만든 우주선을 건네고 갔다. 어느 날 책장에 올려놓은 그 종이 우주선을 보고 소망을 담아 적어 본 시다.   종이 우주선   책장 위에서 발사대기 중인 U-3069호 종이 우주선 언제 창공으로 솟아오를까?   우주과학자가 되겠다는 꽃 같은 우리 외손자 놀러 와 만든 꿈을 기도 속에 키워주었다.   주방 한쪽 너의 작은 실험실에서 들린 폭발음은 먼 훗날 네 종이 우주선이 날아오를 전주곡이었을까.   온통 붕대밖에 보이지 않던 그날 병실에서는 가슴이 내려앉았었는데   이제는 그 꿈 펼칠 나날 그리며 쉼 없이 달려가는 네 모습이 할아버지 마음에서 행복하게 솟아오르고 있구나.   나는 과학도로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될 출발을 앞둔 외손자와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될 많은 젊은이에게 축복과 함께 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과학자는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할까.   과학 연구에 대한 과학자의 태도는 인류의 삶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교통기관의 발전에 이바지함으로써 인간의 활동 범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질병과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는 신비로운 힘이 되었다. 이제 인공지능, 로봇 등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인류에 대해 남다르게 따뜻한 감성을 지녀야 한다. 겸손한 마음과 뛰어난 공감력 및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룬 성과이고 이루어갈 미래인데 왜 그래야 하는가?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부모와 두뇌 및 신체적 조건 그리고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한 개인은 자신과 인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수한 자질을 지닌 것과 그에 따른 노력으로 얻은 결과는 그 개인의 영광임과 동시에 인류의 공적 자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삶은 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연구하는 분야의 수많은 선행연구자의 연구 성과와 그를 가르쳐준 많은 스승 그리고 국가적 지원 등 주변의 다양한 도움도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과학자들은 남다른 시대적 사명을 지녀야 하고,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본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에 따른 사명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남다른 자질을 지닌 사람은 그만큼 영광도 크기에 그에 따른 사명감을 보람으로 여기는 넓은 마음과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뜨거운 열정과 큰 노력으로 이루어낸 대학 입시 결과로 과학도로 출발할 시점을 앞둔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자신의 발전을 통해 인류의 행복에도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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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1-11
  • 차량용 빗물받이 교체, 직접 해결하다
    [시니어투데이] 언제부터인가 내 차의 조수석 뒤쪽 좌석 창문 위에 달려있던 빗물받이가 한쪽이 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했지만, 중요한 부품도 아니어서 그대로 타고 다닌 지가 1년이 넘은 것 같다. 그러다가 얼마 전 좁은 길을 지나는데 물건을 내리려고 주차하고 있던 화물차 기사가 갑자기 뒷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내 차의 조수석 백미러가 떨어져 나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는 놀라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려서 보니 앞바퀴 윗부분과 그쪽 문에도 흠집이 생겨있었다. 물론, 화물차 기사가 100% 자신의 과실이라고 인정하여 그쪽 보험사의 부담으로 수리를 다 마쳤다.   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에 보니 조수석 창문에 부착되어있던 빗물받이도 일부가 깨져 있는 것이었다. 그때 사고로 깨진 것이 확실하지만, 뒤늦게 청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를 알고 나니 눈에 거슬려 과감하게 새것으로 교환하기로 했다.   집 부근의 카센터에 가서 교환을 부탁했더니 일을 맡지 않으려 했다. 차량용 부품점에 가면 부품을 살 수 있으니 거기에서 사서 붙이라는 것이었다. 수리비를 많이 받을 수도 없는 하찮은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센터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차량용 부품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순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차량용 빗물받이를 검색하니 차종별로 많은 제품이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서 내 차에 알맞은 빗물받이를 선택하여 주문했더니 며칠 후 물품이 도착했다.   택배로 도착한 빗물받이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파손된 것을 떼어내기만 하면 나도 쉽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조각이 떨어져 나가도 일부는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수리를 의뢰하러 카센터로 갈까 하다가 좀 더 해 보기로 하고,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글로브 박스(glove box)에 넣어두었던 드라이버를 몇 년 만에 꺼내 들었다. 오늘따라 기온도 낮았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힘을 내서 드라이버를 틈새로 끼워 넣는 등 한참 동안을 씨름해서 겨우 모두 떼어낼 수 있었다.         새로 산 빗물받이에는 양면 접착테이프가 붙어있었고, 그 표면에서 보호용으로 부착된 종이를 떼어낸 다음 적당한 위치에 단단히 붙였다. 이렇게 하면 될 것을 그동안 깨어진 빗물받이를 달고 다녔던 것이 안타까웠다.   요즘은 차량용 이외에도 소비자가 손쉽게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용품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불편함을 처리하고 발전적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와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시니어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보다 체력과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시니어들에게는 일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가 있지 않은가.   장비를 쓰는 것이나 조작과 사용이 편리하게 만들어진 용품들이라면 이를 하는 데에서는 힘보다는 지혜가 더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의 강점이고 더욱더 힘차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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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0-11-30
  • 컴퓨터 없는 생활에서 느낀 소회
    [시니어투데이] 내가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가 자주 말썽을 부린지가 여러 달 되었다. 아들이 쓰던 것을 가져와 오래 써왔다. 그동안 바이러스 때문에 포맷도 여러 번 했다. 얼마 전부터는 커서가 꼼짝하지 않기도 하고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정상적으로 컴퓨터를 끄지도 켜지도 못해 강제로 전원을 꺼야 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본체를 떼어서 여러 차례 컴퓨터 수리점에 맡겨야 했다. 컴퓨터 기사를 집에 불러 수리를 맡길 수도 있지만, 출장비를 주어야 하고 또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서 내가 가지고 가서 수리하는 게 편했다. 처음에는 수리해 온 컴퓨터에 다시 케이블을 연결할 때는 전원 케이블, 인터넷 선, 그리고 모니터, 키보드, 프린터, 스피커 등 많은 선 들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도 여러 번 했더니 이력이 생겨 눈감고도 할 수가 있을 정도로 숙달이 되었다.   그러다가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데 또 갑자기 커서가 꼼짝을 않는다. 강제로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켰더니 한참 쓴 글이 다 날아가 버렸다. 다시 작업하다가 한 5분쯤 후에는 또 그런 현상이 반복되더니 결국은 켜지지도 않았다. 또 수리점에 가려고 케이블들을 떼어내는 것을 보던 아내는 이참에 아주 새것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했다. 머리가 허연 사람이 컴퓨터를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더는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젠 나도 툭하면 멈춰버리는 컴퓨터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것을 사기로 했다. 이렇다 보니 컴퓨터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에도 들어갈 수 없어서 아들에게 연락했다. 아들은 얼마 후 컴퓨터를 주문했다고 연락을 했다. 마침 추석 때문에 택배가 많아서 연휴가 끝나야 배송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컴퓨터가 없으니 컴퓨터와 함께 시간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매주 영어 공부를 하고 있기에 회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하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컴퓨터를 좀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곤란하다고 한다. 읍사무소에 물어도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없다고 한다. 도서관에 연락해보니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은 있지만, 코로나19로 도서관 전체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성당 교우에게 컴퓨터 좀 쓰자고 전화로 부탁하고 방문을 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며칠 동안 벌써 100여 통이 들어와 있었다. 우선 회원들에게 자료를 발송해주고 나서 문서를 열어보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해당 문서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궁리 끝에 복지관에라도 가서 이메일도 보내고 내가 맡은 한 페이지라도 번역작업을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면이 있는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했더니 복지관에 와서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허락을 해주었다.   차로 30분을 달려 복지관에 갔더니 예전에는 그렇게 비좁던 주차장이 대부분 비어있어 적막감마저 들었다. 강의를 듣던 인문학반 컴퓨터에서 회원들에게 메일을 발송하고 나서 내가 공부할 자료를 열었는데 문제는 프린터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가지고 간 USB에 문서를 저장한 후 사회복지사에게 인쇄를 부탁했다. 급한 대로 내가 발표할 두 페이지를 번역하여 프린트하고 나니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일 처리를 하고 보니 컴퓨터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마침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를 중계하고 있어서 결승이 끝날 때까지 열흘간은 TV를 보느라 거의 온종일 컴퓨터 없이도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여러 시간 TV를 혼자서 차지하지 못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노래를 좋아하지도 않던 아내가 가수 김호중의 열성 팬이 되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데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주문했던 컴퓨터가 도착해서 아들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있다며 전화를 했다. 다음날 내 서재에는 새 컴퓨터가 놓였다. 이제 컴퓨터에서 문제가 발생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도 상쾌해졌다. 우선 쌓여있는 200여 통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난 후 다시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이제 컴퓨터는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메일 주고받기, 인터넷 쇼핑몰 이용, 인터넷 뱅킹, 인터넷 서핑 등 컴퓨터의 용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이처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만큼 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시니어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지식을 갖춤으로써 더욱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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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카시아 꽃이 주는 선물
    봄이 오면 산수유로부터 시작하여 서로 앞다툼을 하면서 갖가지의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많은 꽃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런데 일부러 꽃구경을 가지 않아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있다. 산에도 많고 길에도 많다. 오월이면 항상 아름답게 피는 하얀 아카시아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다. 아카시아는 곧게 뻗지도 않았다. 아름드리나무도 아니다. 나무 자체는 굵지도 않고 곧지도 않아 특별히 어디에 쓰이지 않는다. 이산 저산에 흔하게 나 있는 볼품없는 나무이다.   아카시아는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옆으로 가는 가지들이 마음대로 뻗어 나간다. 태풍이 불면 쉽게 쓰러지고 꺾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꺾이고 갈라진 밑동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온다. 여기저기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생명력이 아주 강한 나무이다. 생명력이 강한 아카시아는 꽃과 향으로 채워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어려서 친구들과 놀다가 아카시아 꽃을 따서 먹기도 했다. 달콤하면서도 향기가 짙은 이 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다. 겉으로 보기에 호감이 가는 나무가 아닌데도 그 나무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하얀 색깔의 이 꽃은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보아도 아름답다. 아름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멀리까지 뿜어 나오는 꽃의 향기는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그뿐 아니라 벌들을 유혹한다.   아카시아의 생존력을 통해 희망을 보게 된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 강한 생명력과 생존력으로 잘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워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 그래서 향기를 맡은 많은 벌이 찾아오는가 보다. 몰려온 벌들은 꽃에서 진액을 뽑아낸다. 뽑아낸 이 진액을 잘 간직했다가 쏟아내는 달콤하고 맛있는 꿀을 만들어낸다.   아카시아 꽃의 꿀은 많은 사람에게 보급된다. 사람들에게 건강을 선물한다. 사람들은 이 꿀을 먹고 원기를 찾는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어떤 사람은 아카시아 꽃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아무런 자본도 들지 않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 벌통을 가져다 놓고 기다리면 벌들이 알아서 꿀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에게 갖가지의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카시아 꽃이다.   향이 아름다운 아카시아와 부지런한 벌이 만나 좋은 꿀을 만들어내듯 생각이 다른 사람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먹다버린 알루미늄 캔을 가지고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굴러다니는 쇳조각으로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좋은 것을 쓸 줄 몰라 쓰레기처럼 버리는 사람도 있다. “마음은 생각의 텃밭이다. 생각에 따라 생각에 싹이 튼다”라고 말한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싹이 트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개미 같은 사람들이 있어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최고로 좋은 것만 가지고 우월감에 살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은 잘 살지 모르지만, 주변을 살피는 일이나 배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거미 같은 사람들이 있다. 거미는 거미줄을 쳐 놓고 다른 벌레들이 거미줄에 걸리면 잡아먹는다. 거미 같은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사방으로 줄을 쳐놓고 그 줄에 걸려들면 아랑곳없이 빨아먹는 사기꾼들이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가족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얼마나 무서운 사회로 변했는지 마음 놓고 살아가기가 무서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꿀벌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디든지 찾아가서 열심히 일거리를 찾는다. 일한 만큼 얻은 것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돕는다. 어느 때는 갖은 욕을 먹으며 손해를 보아가면서도 돕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흔히 천사와 같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것일까? 아카시아 꽃과 벌이 만나 아름다운 꿀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듯 우리 모두 아카시아 꽃과 같이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고 꿀벌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나누며 아름다움을 남겼으면 좋겠다.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기를 원해서일까? 벌 같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아는 것을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의지를 행동에 옮겨야 한다”라고 괴테는 말했다. 그렇다. 누구나 생각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개인의 생산성 피라미드를 가지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발견했다면 계획을 세우고 세운 계획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조금만 옆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행복은 받을 때도 행복하지만, 줄 때가 더 행복하다. 생각만이 아닌 실천으로 옮기는 삶,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눔을 통해 몸과 영혼이 살찌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아카시아가 꽃을 피워 맛좋은 꿀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런 점을 본받아야 한다.   비록 특별한 주목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아카시아 꽃처럼 실천적인 삶으로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취재위원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12
  • 버려야 행복해진다
    몇 달 전 이사를 했다. 작은 집으로 옮기면서 짐을 챙기다 보니 쓰지 않고 쌓아놓은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왜 그렇게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새것이라서, 아까워서, 좋은 것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쌓아 놓았던 것이다. 아까워도 쓰지 않는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짐을 줄여 이사했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온갖 물건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광경이 화면에 들어왔다. “어머나!”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건들은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악취와 벌레들로 가득한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모두 치우라고 해도 치우지 않고 무조건 쌓아 놓는다고 한다. 어렵사리 설득한 끝에 동사무소 직원들과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말끔하게 단장을 마쳤다.   같은 집인데도 더러운 것을 치우고 좋은 것으로 채우니 완전히 다른 집이 되었다. 그토록 치우지 못하게 한 본인도 깨끗해서 좋다고 한다. 보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가 좋아했다. 이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은 첫째가 옷장이고 두 번째가 주방이라고 한다. 해마다 사놓은 옷을 입지도 않고 쌓아 놓는다. 새로 사 온 그릇 역시 쓰지도 않고 쌓아놓는다는 것이다. 입지 않는 옷과 그릇을 과감하게 버려야 옷장과 주방을 깨끗하게 쓸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물리적으로도 깨끗이 해야겠다는 생각 속에 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집안에만 쓰레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와 질투. 욕심과 탐욕. 미움과 증오. 분노와 혈기.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하여 사람에게서 나는 썩은 냄새는 분쟁과 다툼으로 나타나게 된다.   마음의 쓰레기는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도 반목과 갈등을 초래하고 만다. 사람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하여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노년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아집을 버리지 못한 체 집착과 옹고집으로 상대방과 담을 쌓아놓고 갈등 속에서 사는 것을 보게 된다.   물건으로부터 나는 악취는 내 집안에만 있지만, 마음에 쌓인 쓰레기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도덕도, 윤리도 없고 법도 떠나 버린 채 도저히 이해나 배려, 용서나 사랑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얼마나 인간의 마음속이 더러운지 모르겠다. 보이는 쓰레기는 다른 사람도 치울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쓰레기는 본인이 치워야 한다. 자신이 치우지 않으면 치울 수가 없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시기와 질투는 설익은 사과를 먹는 것과 같아 오로지 당신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이런 더러운 쓰레기로 차 있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집 안에 있는 냄새나는 더러운 물건들은 밖에다 내버리면 된다. 그리고 버린 그곳에 아름다운 가구나 멋진 물건을 채우면 아름다운 집으로 바뀐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나 물건들은 비누로 씻으면 된다. 하지만 사람의 더러운 마음은 무엇으로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성찰적 실천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선’을 행복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에는 덕이 필요하며, 지성적인 덕과 품성적인 덕이 있다고 했다. 지성적인 덕에는 이해력과 실천적인 지혜가 있으며, 품성적인 덕에는 용기와 절제가 있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성찰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옳은 것을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이성을 습관화함으로써 덕을 꾸준히 실천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 나부터 마음에 있는 더러운 것을 버려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시기, 질투. 탐욕, 미움, 증오, 분노, 혈기, 오만함, 거짓 같은 모든 추함을 버리면 이 사회에 악취는 없어질 것이다. ‘내’가 먼저 버리면 ‘너’도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나도, 이웃, 사회도 살 것이다.   요즘 내가 배우고 있는 인문학 강좌에서 오늘은 행복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행복은 자신과 만나는 방법이다”는 강의에서 쇼펜하우어가 “행복은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내 안에 있는 쓰레기를 버리고 사랑과 감사로 채우면 우리는 그만큼 행복해질 것이다.   나부터 시작하자. 버릴 것은 빨리 버리자. 아낌없이 버리자. 그리고 용서와 사랑과 감사로 채워보자. 그렇게 할 때 ‘나’와 ‘너’ 즉, 우리가 모두 행복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취재위원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12
  • 나잇값을 하며 살자
    어떤 사람이 볶은 깨를 나물에 묻혀 먹으니 참으로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야! 정말 고소하고 맛있구나”라고 말하다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볶은 깨를 심으면 굳이 볶지 않아도 고소한 깨가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 봄에 그는 볶은 깨를 정성껏 밭에 뿌리고 싹이 나도록 기다렸다. 이것이 싹이 나올 리가 있겠는가? 그러니 완전히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노파가 실, 단추, 구두끈을 팔려고 시골 마을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 노파는 표지판이 없는 갈림길에 서게 되면 공중으로 막대기를 던져서 그 막대기가 가리키는 길로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노파는 갈림길에 서서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알기 위해 계속 반복해서 막대기를 공중에 던지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노파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그렇게 막대기를 여러 번 던집니까?”   그 노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막대기가 지금까지 계속 오른쪽으로 가는 길만 가리키잖아요. 그렇지만 나는 왼쪽으로 가고 싶거든요.” 그 노파는 가고 싶어 하는 길을 막대기가 가리킬 때까지 계속해서 던졌다.   볶은 깨를 밭에 심는 농부나 가고 싶은 길을 막대기를 던져서 가리킬 때까지 던지는 사람이나 누가 이 사람들을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들으면 누구나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바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멀쩡하게 사는 것 같은 우리도 이런 어리석은 행위나 사고를 하지 않는지 잘 점검해보아야 할 일이다.   어떤 나무가 자라지 않고 서서히 시들고 있다면 분명히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성숙해지지 못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사람이 왜 다른 생물과 다른가? 사람의 특성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행동이 옳지 못한 사람을 향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을 살피며 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성숙한 삶이다. 삶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더불어 산다. 욕심을 내려놓고 온유와 인내로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은 생각의 텃밭이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것만 나누며 좋은 씨앗을 심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구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더욱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은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다.   우수한 나라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언어와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사회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다. 나이답지 못하게 행동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 아닌가? 옛날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매우 넉넉해졌다. 그러나 그만큼 악한 것들도 늘어난 것 같아 가슴이 너무 아프다.   인디언들의 이야기 가운데 검은 독수리의 이야기가 있다. 검은 독수리 새끼 한 마리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곰 새끼들 틈에 넣어두었다. 독수리 새끼는 곰처럼 날지도 못하고 매일 흙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검은 독수리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곰이 말했다. “너는 꿈도 꾸지 마. 넌 저런 멋있는 새가 될 수 없어.” 이 말에 검은 독수리는 자신이 하늘을 날아볼 생각도 못 하고 들 곰처럼 살다가 죽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을 움직인다.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살아갈 존재 이유를 확신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마치 곰처럼 살다 죽은 검은 독수리와 같다. 높이 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도 날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과 낙심 속에 절망하고 만다.   나잇값을 하며 살아야 한다. 열 살은 열 살답게 살아야 한다. 서른 살은 서른 살답게 살아야 한다. 모두가 마찬가지다. 칠팔십이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산다면 젊은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나이답게 지적으로나 실천적으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 손수건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의 삶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삶, 배려와 관용의 삶은 너무나 아름답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함부로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차분히 읽는다. 왜냐하면, 한 번밖에 그것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은 말했다.   내가 쓴 인생의 책은 우선은 내가 읽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읽게 된다. 누군가 나의 삶을 읽어갈 때 잘 살았다고 박수를 보낼만하다면 그는 삶을 잘 살았다고 해도 될 것이다. 생각된다. 누구나가 인생에서 비슷한 희로애락을 겪게 된다. 그 희로애락을 통해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복된 삶이다.   사람은 올바른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악이다. 일본과 독일이 똑같이 식민 지배를 통해 많은 잘못을 했지만, 두 나라의 태도는 많이 다르다. 일본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고 한다. 반면 독일은 나치 정권이 잘못했지만, 나치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국민이라면서 모두가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은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용기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용기마저 빼앗는다고 했다. 인간은 양심에 의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양심에 가책이 없다면 화인 맞은 사람이다. 화인 맞은 양심은 감각이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까.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 때 많은 사람이 화를 입게 된다.   모든 사람은 선한 마음을 먹고 그것을 실천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생활은 가진 것으로 꾸려가지만 삶은 베푸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많이 가진 다음에 베풀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끝내 베풀지 못할 것이다. 웃음을 주고 시간을 나누어주고 지금 가진 것으로 베풀기를 먼저 시작하면 더 많은 것이 채워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물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맑은 물이 고인다.   누구라도 건강, 지혜, 경험, 재물 이런 것들 가운데 하나는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지 헤아려보자. 그리고 지금 있는 것으로 나누어보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다.   나이는 들었는데 행동은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 사람은 성인아이다. 나이에 걸맞은 성장이 필요하다. 잘못에 대해 용서도 빌 줄 알고 용서를 비는 사람을 용서할 줄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취재위원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12
  • 아! 그리운 담임선생님
       5월에는 여러 행사가 많다. 그중에 스승의 날도 있다. 나는 해마다 이때가 되면 더욱더 고마운 선생님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못내 죄송함과 아쉬움에 젖어들곤 한다. 그러나 올해는 늘 뵙고 싶었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이셨던 은사님을 찾아뵙게 되어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63년 전인 1953년(7월 27일)은 치열했던 6.25 전쟁이 휴전을 결정한 때였다. 그때 열 살이었던 나는 군산시 산북동에 있는 문창초등학교 5학년 2반 학생이었다. 지금이야 좋아졌지만, 그때 내가 살던 마을은 군산 시내에서 12㎞나 떨어진 시골이었다. 그해 우리 반 담임은 고석균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아주 미남이고 의욕이 넘치는 멋진 분이셨다. 전쟁 중에 군에서 제대하고 첫 부임지로 우리 학교에 오셨던지라, 군인다운 패기와 기상이 우리를 압도했다.   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을 맡아 우리를 매우 엄하게 공부시켰다. 같은 학년에 남자 두 반, 여자 한 반이 있었는데 늘 우리 반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다.   ▲ 1953년 문창초등학교 5학년 2반       그때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부족했었다. 교과서, 학용품, 책상, 걸상도 매우 부족해서 2인용 책상에 세 명이 앉기도 했다. 교과서도 선배들에게서 물려받은 사람은 갖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옆 사람과 같이 보아야 했다. 수업하다가도 문제가 있다 싶으면 자주 운동장 나무 밑 방공호에 대피하곤 했다.   여름에는 퇴비로 쓸 풀이나 보릿대를 짊어지고 학교까지 먼 길을 걸어서 갔다. 때로는 자식이 힘들게 지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아버지께서 지게로 져다가 주고 가기도 하셨다.   일본인들이 고등학교로 사용하다 해방이 되어 물러간 자리에 생긴 우리 학교는 학교 실습지로 논과 밭이 매우 많았다. 우리는 4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하는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때 창고에 가면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농기구가 많았고, 야구방망이, 검도 할 때 쓰는 장비도 눈에 띄곤 했다.   나는 5학년 담임선생님을 제대로 만난 덕분에 성적이 많이 올랐다. 그래서 성적이 매우 향상된 학생에게 주는 ‘진보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이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는 적정 나이에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보다 공부를 잘했던 영철, 태경, 창현 등 몇몇은 내 나이보다 두 살에서 많게는 네 살이나 위였던 것이다.   그때 우리 반은 남자만 45명이었다. 모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셨다. 5학년 때부터 국어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되어 선생님께서는 칠판 모퉁이에 매일 10개 정도의 한자를 써 놓으셨다. 이것을 쓰고 읽을 줄 알아야 집에 보내주셨다.   나는 쉬는 시간에도 책을 찾아서 열심히 한자를 익혔다. 이런 노력으로 한자에서는 내가 최고였다. 내가 한자를 잘하니까 어느 날 선생님께서 서당에 다녔냐고 하실 정도였다.   지금도 이것이 바탕이 되어 한자에서는 남다른 실력을 나타내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선생님의 가르침 덕택에 나는 한자뿐만 아니라, 공부에 대한 필요성과 인내심을 배우게 되었다. 이때의 일들은 일평생 내 학습능력의 바탕이 되었고, 교육자의 길을 걷는 데에도 큰 힘이 되었다.   ▲ 1954년 문창초등학교 6학년 2반       선생님께서는 6학년 때에도 그대로 우리 반 담임을 맡으셨다. 이것은 내 학습과 학교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유급하거나 전학 간 몇 명을 제외하고 우리 반 40여 명은 2년간 정든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께서 여름에는 중학교 진학 희망자만 모아 늦게까지 공부시키고 교실에서 자도록 잠자리를 마련해주셨다. 겨울에는 선생님 집에다 20여 명을 모아놓고 밤늦게까지 공부시키셨다. 모두 선생님의 패기와 열정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선생님 집에서 공부할 때 아버지께서는 너무 어린 아들이 먼 밤길을 혼자 와야 했기에 늘 그곳까지 오셔서 기다리다 집으로 데려가곤 하셨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더욱더 그 시절의 기억이 또렷해지고 감사한 마음에 눈에 맺힌 눈물이 가슴 속으로 흘러내린다.   이런 선생님의 도움으로 우리 반 친구들은 여러 명이 군산에 있는 중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고, 나도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모두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 덕택이었다.   그때의 가르침이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으니, 그 은혜가 한없이 고맙다. 나도 교사가 된 후 1964년 인천 용유도에서 6학년을 가르치면서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나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에서 근무하면서도 선생님을 잊을 수 없었다. 수원에서 교감으로 근무할 때, 선생님의 소식을 찾던 중 모교인 문창초등학교에서 경기도로 와 교감으로 근무하는 여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그분이 고석균 선생님께서 군산 어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이름을 개명하셨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이런 계기로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뵐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반가웠다. 선생님께서는 그 후 1년이 지나서 정년으로 퇴임하셨다. 한 번은 선생님께서 서울 아들 집에 가시는 길에 수원에 들르셨다. 이때 선생님과 사모님께 음식을 대접한 일도 있었다.   ▲ 고석균 선생님(오른쪽)과 즐거운 시간       그 후 나는 고향에 가는 길에 선생님 댁을 방문하였다. 사모님과 두 분이 마당에 사슴사육과 양봉을 하고 계셨다. 나도 2007년 정년퇴직을 하고 한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마침 올해 5월 2일 사범학교 동문회가 있어서 고향에 가는 길에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건강하신 선생님을 뵈오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선생님과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선생님께서는 그 후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이런 열정과 경험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셔서 좋은 성과를 많이 거두셨다고 말씀하셨다.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해 주어서 주위에서 부러워한다고도 말씀하셨다.   제자인 나도 선생님과 같은 열정을 본받아 44년의 교직 생활을 잘 마무리했고, 지금은 조그만 과수원을 하며, 한자와 관련된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강사활동과 한자 재능기부 봉사활동도 한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내외분은 건강하시고, 88세임에도 100여 개 벌통으로 양봉하시며 정정하게 사신다. 올해 스승의 날은 그리워하던 선생님을 찾아뵈었던 일로 어느 해보다도 흐뭇했다. 선생님의 그 귀한 가르침은 아직도 내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는 올해 스승의 날을 보내며 선생님의 귀한 가르침을 되새기고 선생님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취재위원 박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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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16-05-24
  • 작사 가운데 떠오른 생각들
    봄이 오면, 꽃들이 만발하는 것만 아니라, 각종 방송 매체들도 봄과 관련된 이야기와 노래들을 쏟아 낸다. 그 가운데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가곡 <봄이 오면>은 김동환 시인의 시에 김동진 선생이 곡을 지었다. <목련화>는 조영식 선생의 시에 김동진 선생이 작곡했다.   김동진 선생은 경희대학교 음대학장을 지냈고, 조영식 선생은 경희대학교의 설립자이며 총장을 지낸 분이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경희대학교와 관련 있는 이 두 노래는 나도 무척 좋아한다. 80대인 나는 요즘 인문학과 악기에 심취해 있다. 이런 인연으로 <새로운 인생 이모작>을 작사하고 작곡을 구상 중이다.     <새로운 인생 이모작>   늙은 노인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이모작이다. 물러남이 아니라 동행하는 아름다움이란다. 젊은 나무는 싱싱하게 미래를 꿈꾸지만 오랜 세월 산 나무는 쉼과 지혜의 터전이다. 늙은 노인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이모작이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이모작이다. 뒤처진 초라함이 아니라 연륜으로 빛나는 향연이다. 봄에 피는 꽃은 화려함과 생동감이 넘치지만 노년은 모두에게 물드는 여유와 풍요의 고운 단풍이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이모작이다.   인위적 홀몸노인을 즐기는 나는 막걸리 한 병을 앞에 두고 연필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동행을 즐겼다. 취기가 오르니 부담도 사라지고 혼자 즐기는 최고의 잔치가 되었다. 혼자서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흥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해 노래인지 랩인지 알 수 없는 한참의 공연을 하며 최상의 시간을 보냈다.   작사를 바라보며 “‘너’는 어찌 나를 많이 닮았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이젠 네게 콩나물을 붙여주는 것이 남았는데, 겁이 덜컹 나는구나.” 갑자기 술이 확 깨고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 이제 악기 몇 가지 배우는 초보자가 무슨 작사고, 작곡이냐는 생각을 하니 황당하다 못해 현기증이 난다.     자유당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녔던 적이 있다. 그 회사에는 서울대학교 출신의 미스터 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게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는가 하면 대학 진학을 권유하며 용기를 주었던 사람이다. 그의 연주가 참 듣기 좋았고 그의 삶도 무척 부러웠었다. 그때의 기억을 추억하며 이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고 있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나의 인생을 사는 셈이다. 나는 이 곡이 비록 부족한 사람의 영감에서 탄생했을지라도 널리 불리며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모습을 상상한다. 시인 바이런은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을 했다.   나는 유명해지기보다는 음악과 인문학을 사랑하며 여유롭고 행복하게 인생 이모작 청춘으로 사는 멋진 시니어가 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의 삶, 즉 영혼이 잘되는 복된 삶이 아니겠는가.   취재위원 윤봉구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5-13
  • 시니어들이여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이 시대를 아름답게 물들이자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이 개관되어 7년이 지나고 있다. 그간 다양한 복지혜택은 물론, 어학, 스포츠, 음악, 미술 등 50여 개의 강좌를 통해서도 노년의 아름답고 건강한 삶을 지원해 주었다.   무엇보다도 2015년 10월 인문학 강좌가 처음으로 개설되어 관심이 집중되었다. 한두 번의 특강이 아니라, 노인복지관에서는 처음으로 정규 강좌로 개설된 강좌라서 모두가 성공적인 운영을 소망했지만,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2개월간의 출발은 가능성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홍보도 부족했고 정규 개강과 다른 시기에 출발했지만, 적지 않은 인원이 모였다. 수업에서의 집중도는 매우 높았고 점점 더 열기가 뜨거워졌다. 지금은 40여 명의 수강생으로 강의실이 꽉 찬다. ‘이야기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수업 시간 내내 어르신들의 박수와 웃음이 넘치는가 하면, 때로는 깊은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상상력의 세계로 빠져들기도 한다.   강의를 담당하고 협력하는 두 분의 열성과 노력으로 2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 그만큼 이 시간은 시니어들의 지적 갈증을 해소하며 행복을 창출함으로써 만족감과 치유를 제공한다.   부족한 내가 반장으로 섬기며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이 강좌를 ‘인문학 열차’라고 한다. 지도 교수는 기관사가 되고 40여 명의 어르신이 차장이다. 우리는 앞으로 전국의 많은 어르신을 승객으로 모시고 아름답고 멋진 인문학적 상상력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이런 날을 꿈꾸며 우리는 모두 자부심 가운데 각자의 임무에 지극 정성을 다하며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처음에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배워 나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참여하시는 어르신들의 열성적인 의지와 활동으로 지금은 KTX 특급열차 못지않게 씽씽 달려가는 ‘인문학 열차’가 되었다.     반장인 나는 어르신들에게 글쓰기를 독려한다. 어르신들의 삶은 빛나는 글을 만드는 원석이니, 자신 있게 펼쳐 놓아보라고 용기를 북돋는다. 처음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더니 점차 글을 써서 발표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행문, 시, 수필 등 글의 종류도 다양하다. 어르신들이 쓴 글의 발표를 듣고 있노라면, 인문학반 한 사람으로서 큰 감동을 하게 된다. 감사함이 밀려오고 힘이 솟아나며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그래, 시니어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봄에 피는 꽃보다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잎으로 곱게 물들어 가고 있다. 우리는 인문학 시간을 통해서 이것을 증명해 보인다.   아직도 글쓰기를 주저하시는 분들께는 다양한 방법으로 잠재된 내용을 분출하도록 도울 예정이다. 비유하자면 이미 잉태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만을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어르신들이 쓴 글은 평생의 경험을 출산한 창작이기에 우리만 듣고 본다는 것은 여간 아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모두가 공유함으로써 더욱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데 마음을 모았다. 이를 위해 1학기 내 출판하기로 계획하고 역할을 분담하여 아름다운 첫 결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르신은 책이요, 도서관이며 삶의 길잡이가 된다’는 것을 전국에 알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이 일이 우리에게 맡겨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여기며 이것을 통해 대한민국을 더욱더 아름답게 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의욕을 불태운다.   인문학반에 나오는 어르신들은 60대 후반에서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일제강점기, 6·25동란을 극복하고 잘살아 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사람들이다. 독일 간호사와 광부로 나갔고 월남전에도 파병되었다. 중동 건설현장의 모래바람 속에서도 기꺼이 땀을 흘렸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이루어 놓았다.   어르신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선구자요, 애국자로 존경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것을 수동적으로 해석해 대접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후대에 남기자는 것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해석이다. 이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온고지신하는 정신이요, 출판을 추진하는 취지다.   지금 우리는 왕성했던 청춘을 뒤로하고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걷어내고 가장 멋진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제 우리는 ‘잘살아 보세’를 ‘어르신답게, 보람 있게, 아름답게 살자’로 바꾸었다. 우리 복지관 ‘인문학 열차’가 그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노년이라서 무언가를 결실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라는 인식에서 더욱더 왕성하고 아름다운 꿈을 펼치며 결실하는 보람을 누리자는 것이다. 노년이여, 인문학적 상상력에서 새롭게 타오르는 그대의 열정으로 이 시대를 아름답게 물들이자.   취재위원 배영환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4-04
  • 나는 노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나는 요즈음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에서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한국이 고난을 딛고 살만한 나라로 발전한 것은 우리 시니어세대들이 이루어낸 결실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1945년 8·15해방의 기쁨도 잠시뿐, 이념의 갈등 속에 불어 닥친 6·25전쟁은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겼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가 100년 안에 일어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말로 절망감을 표현했다.   폐허 속에서 보릿고개를 견디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주의라는 양대 산맥을 목표로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래서 잘사는 나라도 만들었고, 민주화도 이루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눈부신 성장을 우리의 손으로 일궈냈다.     인문학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우리 민족의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의 첫머리에는 “가무를 즐기며, 하늘에 감사하는 민족”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 사람들은 한두 사람만 모여도 노래하고 춤을 춘다. 노래 안에는 삶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춤사위를 통하여 예술적 감각과 흥이 미의 세계를 활짝 열어준다.   이런 인문학적 상상력에서 샘솟는 창의력이 성실성과 만나 현실화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기적을 창출했다. 나는 요즘 인문학 강의 속에서 이런 것들을 깨우치고 발견하면서 노년의 즐거움을 아낌없이 누리는 행복에 젖어 산다. 나는 국영기업체에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을 했다. 몇 년 동안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한가함을 즐겼다. 그러던 중에 서서히 건강에 무리가 와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 생각을 실천할 작정으로 화성시 팔탄면 동방저수지 옆에 집을 짓고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한동안은 정원에 나무도 심고 잔디도 가꾸면서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익숙하지 못한 혼자만의 농촌생활은 쉽지 않았다. 지루한 생활을 반복하던 가운데 돌파구를 모색했다. 뭔가 배우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로 하고 찾은 곳이 바로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이었다. 컴퓨터 초급반과 한문 서예 강좌에 등록하여 평생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 '문화의 뜰'에 실린 취재 기사 내용(옛 남양부의 자취를 찾아서)     이런 열정은 그동안의 경험과 어우러져 시니어 기자로도 활동하게 하였다. 취재도 다니고 사진도 찍으며 보람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촬영한 사진으로 동영상도 만들 수 있게 되어서 그것을 인터넷 공간에 올리기도 한다.    한문서예도 배워 지난해에는 ‘화성시서예대전’에서 특선과 입선을 2회씩이나 수상하는 보람과 영광도 누렸다. ‘화성문화원’에서 동호인들과 사진 촬영과 컴퓨터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매우 보람 있고 즐겁다. ▲ 화성시서예대전 입상(특선, 입선)     이 모든 것들이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튼튼한 인문학적 바탕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인문학 강좌를 통하여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준비하며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해 있다. 시니어들의 경험과 지혜를 인문학으로 승화하여,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도약에 이바지하며 내 인생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힐 것이다. 취재위원 박종강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3-30
  • 위기는 기회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철새들의 아름다운 군무를 보러 가리라고 마음먹곤 했다. 그러나 언제나 춥다는 핑계로 철새도래지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춥던 날씨도 조금 풀렸다 싶어 친구와 함께 ‘서산 버드랜드’를 찾았다. 찾아가고 보니. 추수가 끝난 11월쯤이라야 멋진 군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전시관에 들렀다. 전시관에는 갖가지의 박제된 새들로 가득했다. 이곳에는 무려 190여 종류의 새가 온다고 한다. 군무를 직접 볼 수는 없으나, 영상으로는 볼 수 있다고 해서 4D 안경을 쓰고 관람을 시작했다. 얼마나 생생하게 영상을 제작했는지, 70대인 나도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웠다. 새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더욱더 새들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그 가운데 매우 인상 깊었던 내용 하나를 소개한다.   어느 날 꿩이 들로 나갔다. 그런데 꿩이 낳지 않은 낯선 알 하나가 있었다. 꿩은 그 알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고 품었다. 얼마 후 그 알에서 꿩의 색깔과는 완전히 다른 까만색 생명체가 나왔다.   그 새끼 새는 꿩이 아니라, 뜸부기였다. 꿩과 뜸부기는 모자 사이로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어느 날 뜸부기는 한쪽 다리를 다치게 되었다. 날줄도 모르는 뜸부기는 친자식도 아닌 데다가 절뚝거리는 신세가 되었으니,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세월이 흘러 뜸부기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엄마에게 대들기도 하고 말도 잘 듣지 않았다. 외톨이가 된 뜸부기를 바라보는 엄마 꿩도 너무나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엄마 꿩에게 위기가 발생했다. 엄마 꿩을 잡아먹으려고 사자가 덤벼들었다. 죽을힘을 다해 달리던 엄마 꿩은 그만 지치고 말았다. 엄마 꿩을 지키기 위해 함께 뛰어가던 뜸부기가 사자에게 덤벼들었다. 뜸부기는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 사자의 얼굴을 향해 날개를 내리쳤고 발톱으로 두 눈을 공격했다. 이 순간 사자는 눈을 감고 방어를 하느라고 당황하게 되었다. 이렇게 뜸부기는 엄마 꿩을 살려낸다.     이런 과정에서 뜸부기의 날개에 힘이 들어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게 되었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엄마 꿩을 구하려는 간절함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뜸부기는 위기 속에서 오히려 엄마와도 더 가까워졌고, 자신의 정체성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 꿩과 뜸부기 이야기는 내게 감동과 도전을 안겨주었다. 위기를 맞아 절망으로 무너지느냐, 아니면 그것을 기회로 변화시키며 놀라운 도약을 할 것이냐?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펼쳐지는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뜸부기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 자기희생으로 엄마도 살리고 행복도 찾았다. 희생은 소멸이 아니다. 새로운 생명력의 발현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운 헌신이다. 씨앗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흙을 무덤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 흙이 오히려 생명력을 공급하는 통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노년은 사람의 인생에 쏟아지는 흙무덤이 아니다. 가장 빛나는 인생을 위한 자양분이요, 무대다. 이제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자신을 억눌렀던 생각을 바꾸어 보자.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보자.   아름다운 지혜를 쏟아내 이웃들과 조화와 사랑을 이룸으로써 어두워가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노년이 되어보자.   취재위원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3-29
  • 하루하루를 가장 행복하게 가꾸는 재미로 살련다
       요즘 듣는 강의마다 이제 시니어들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고 한다. 자신을 영·육으로 꾸미고 가꾸는 일에 마음과 시간을 쓰라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가족과 자녀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기에 바빴다. 그랬던 내가 이제 와서 나를 중심으로 먹고, 입고, 즐긴다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문명의 발달을 소화하며 살려니, 이것도 벅차다. 요즘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에서 인문학을 듣고 있다. 올해 2년째 접어들고 있는 인문학 강좌는 복지관에서 가장 인기 있고 활력이 넘친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 노인복지관에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개설하여, 이렇게 지속하는 인문학 강좌는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밖에 없다. 나도 이 강의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듣고 있다. 매주 이 시간을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것이 요즘 내가 누리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다. 이 강의 시간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고전과 지혜와의 만남을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게 하는 아름답고 신비한 시간이기도 하다.     여러 고전과 다양한 철학, 인문학 내용을 통찰하는 강의 속에서 우리는 삶을 돌아보며 소망을 싹틔운다. 용기를 꽃피우고 실천을 열매 맺게 되는 기쁨과 보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동료들의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이다. 나의 발전 속도보다 더 빨리 달아나는 것 같아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자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강의를 듣는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다 보면 온통 정신이 집중된다. 다양한 생각을 하며 과거로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순간 이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 자유롭게 내 생각을 글로써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름답고 멋진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게 새삼 고마운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사내 녀석들이라서 키울 때는 무척 힘들었다. 다소곳한 딸들과는 달리 우당탕, 좌충우돌 씩씩하게 자라느라 잠잠할 날 없었던 것이 새삼 그립다. 친척이나 친밀한 지인들이 방문하기라도 하면 어깨에 매달리고 등에도 올라가며 온갖 개구쟁이 짓을 다 하였다. 그것은 반갑다는 표시였지만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도 손님들이 떠나고 나면, 벌을 서게 하기도 했었는데 그 녀석들이 이제는 제 자식들 키우느라고 이럴 것이다.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어떻겠는가. 이렇게 잘 커 줬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래도 늙은 어미 걱정에 조금만 날씨가 바뀌어도 전화를 한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이곳 화성보다 북쪽인 서울에 있는 너희가 추울까 봐 더 걱정이다.” 이런 나의 엉뚱한 논리에 아들들이 껄껄 웃고 만다.   어려웠던 지난날 그 흔한 참고서 한 권 제대로 사주지 못한 점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이렇게 착한 자식들이 알뜰살뜰 나를 챙길 때면 효도 받기가 면목 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지난날을 아름답고 소중한 일들로만 기억하고 하루하루를 가장 행복하게 가꾸는 재미로 살려고 한다. 더욱더 밝고 맑은 모습, 따뜻한 미소와 푸근한 마음으로 모든 이들에게 스며들려고 노력한다. 이런 순간들로 더불어 아름다운 흐름을 이루는 강물이 되어 영원한 현재로 유유히 흐르고 싶다.   취재위원 하부용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3-28
  • 여행은 그리움의 또 다른 연속인가!
       작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에 사는 딸네 집을 방문했다. 인천국제공항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덜컹 소리를 내면 지상에서 떨어지자, 가슴이 시큰하며 드디어 떠나는 설렘으로 온몸이 전율했다.   말로만 듣던 로스앤젤레스, 미국 땅을 처음 밟았다. 딸과 손자 손녀가 예쁜 꽃다발을 들고 우리를 반겼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왔다. 여독을 풀기 위해 하루는 집안에서 쉬기로 했다.     다음날 우리는 사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높게 치솟은 빌딩 숲이며 찬란한 불빛이 이국적 정서를 자아내는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자정이 다 되었다. 사위가 예약한 휘황찬란한 고급 호텔로 들어서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자식 키우는 보람이 이런 것이리라. 모두 지쳐서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카지노에 들렀다.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수많은 남녀노소가 오락기에 붙어서 레버를 당기는 모습에서 돈에 얽매여 사는 자본주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식당에서도 커피숍에서도 언제나 서비스에 대해 감사의 표시로 팁을 주는 것이 내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이 감사의 문화가 아닌가?     딸네 집 근처에는 수영장이 있었다. 냉수는 물론, 온수와 미지근한 물까지 갖추어진 것이 한국과는 달랐다.   관광코스는 많이 알려진 대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사람들은 드넓은 미국을 쉽게 찾아다닐 수 없어서 창의적인 관광은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신기한 장면들이나 TV에서 보았던 장소가 나오면 굉장히 설레고 반가웠다.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모두가 한국 사람이고 머나먼 이국이다가 보니, 일행은 가족같이 친밀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역시 그랜드캐니언이었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창조의 신비로움에 감탄했고 다시 한 번 겸허해야 함을 마음에 새겼다.     미국인들하고 어울려 대화하거나 생활해보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나마 미국인들의 문화적 특성이나 정서는 느낄 수 있었다.   손자손녀와 파도타기도 하며 한국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바다나 하늘은 닿아 있으니 언제나 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라는 마음을 먹었다. 확대하자면 세상과 천국도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5주 동안의 역동적인 미국여행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딸네 가족이었건만, 그래도 한국에 돌아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는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 인문학 강의 내용이 마음을 스쳐 지난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보았던 잔잔한 호수가 떠오르고, 그 가운데 딸네 가족이 환한 미소로 내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래서 여행은 또 다른 그리움의 연속이라고 하는 것인가?   취재위원 박종희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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