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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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접속 장애로 겪었던 어려움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나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밤에는 1시간씩 동호인끼리 영어 번역 공부를 하고 있다. 전화를 이용하다가 얼마 전부터 화상회의 앱 ‘줌(Zoom)’을 통해서 화상으로 서로 얼굴을 보며 하고 있었다. 그런데 3주 전부터 줌(Zoom)에 연결이 안 되어 나만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속상해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아무런 접속 장애 없이 잘 사용했는데 웬일일까? 그런데 연결만 하려고 하면 내 휴대폰의 와이파이 신호가 사라지면서 연결이 안 되었다. 공유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도, 휴대폰을 껐다가 다시 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접속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나를 기다리지 말고 공부를 시작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혼자서 아무리 애써보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은 포기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각종 해결 방법들을 시도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 후에 휴대폰에 와이파이 신호 세기가 강하게 표시되기에 다시 연결해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알 수 없는 장애로 연결이 안 된다”는 메시지만 뜰뿐 접속이 안 됐다. 그날도 나는 허탕을 쳤다. 몇 시간을 씨름하여 교재를 다 번역해 놓고 공부 시간만 기다렸는데 접속이 안 되니 속이 많이 상했다.   이 방면에 능숙한 지인에게 요청해서 시도를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아내의 휴대폰으로 하면 접속이 잘 되었다. 전화기 때문인 것 같아 A/S 센터에 가보았지만, 휴대폰의 문제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A/S 센터에서 공유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통신사에 고장 신고를 하여 온라인으로 점검을 해보아도 정상이라고 했다. AS기사가 방문을 해서 전파 측정기로 검사하더니 신호가 잘 잡히니 공유기는 정상이라고 했다.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Zoom 연결”, “와이파이 끊기는 문제”를 몇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어디엔가 전화기의 와이파이 문제를 해결할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마지막으로 휴대폰에서 “네트워크 설정 초기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지시한 대로 따라 해서 초기화를 시키고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연결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연결이 되었다. 2주 동안 못 보았던 동호회 회원들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는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 줌(Zoom)으로 한창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데이터가 다 소진되어 이제부터는 요금이 부과된다”는 메시지가 뜨는 것이 아닌가.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데이터가 모두 소진되어 있었다.   추가 사용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요금이 부과되어 있었다. 그동안 줌(Zoom)을 연결하는데 와이파이가 아닌 휴대폰 데이터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방법은 공유기를 바꾸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새로 구입한 공유기에는 안테나가 네 개나 달려있었다.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공유기 밑면에 비밀번호가 있다고 쓰여있다고 했다. 그 번호를 입력했더니 와이파이 기호가 떴다. 이제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지금도 전에 사용하던 공유기에서는 아내 휴대폰은 되고, 내 것은 왜 안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디지털 기기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자주 애를 먹이지만, 시니어들에게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그러더라도 지치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가다가 보면 끝내는 해결할 길이 나오는 것이다. 시니어들의 자산은 풍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축적된 지혜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들의 경쟁력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이 또한 시니어들의 저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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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6-07
  • SNS 사용에서 주의할 점과 대응 지혜
    [시니어투데이]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도착하는 이메일은 그중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일단 삭제하고 남은 것들을 시간 나는 대로 읽어본다.   그중에 한 SNS에 ‘친구 요청’이 있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그 SNS에서 보내주는 이메일 가운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는 요청이 많아 보통은 삭제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Jennifer라는 사람으로부터 요청이 왔다. 외국인이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경우라서 열어 보았다. 나의 SNS 계정에 들어와 내가 쓴 글들에 ‘좋아요’ 표시를 여러 번 해 놓았다.   계정에 들어가서 둘러보니 귀엽게 생긴 아가씨다. 군복을 입고 동료들과 찍은 사진도 여러 장 보였는데 아마 여군인 모양이다. 그런데 며칠 후 메시지가 와있어 열어보니 ‘제발 좀 친구로 추가해주세요’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친구 요청을 거절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다시 요청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까짓것 별일이야 생기겠나 싶어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내 SNS 계정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기는 시리아에 있는 미국 군인인데 반갑다고 인사를 보낸 것이었다. 나도 반갑다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메일을 열었는데 별도의 메신저로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열어보니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자기는 한국계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7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군인이 되어 지금 시리아에서 정보통신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커다란 시련을 겪어서 힘들었겠지만 씩씩한 군인이 되었다니 장하다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시리아라면 한밤중 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몇 시쯤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새벽 2시라고 했다. 그래서 밤이 늦었으니 다음에 얘기하고 어서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야간 근무 중이라 괜찮다고 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묻는다. 가르쳐 주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연결하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통화는 안 되었다. 잠시 후에 메시지가 왔다. 군사시설이라서 보안 때문에 통화가 어렵다고 하면서 ○○톡을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라고 했더니 ○○톡 아이디를 묻는 것이었다. ○○톡은 아이디가 없이 그냥 이름으로 등록이 되었는데 아이디라니? 그래서 아이디는 없다고 하니 잠시 후에 자기 아이디를 알려주며 친구추가를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톡 연결이 되었다. ○○톡으로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통화할 수 없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점차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SNS 프로필을 보고 가장 믿을만한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다. 자기는 자살폭탄 공격이 심한 이곳에서 군에서 퇴직하여 민간인으로 살고 싶다.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가 사촌들과 조부모님도 찾아 정착하여 살고 싶다. 자기를 좀 도와 달라”는 요지의 부탁이었다. 나는 시골에 사는 노인이라서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갈수록 다음과 같은 놀라운 요지의 말을 늘어놓는다. 수색 중에 큰돈을 발견했다. 아마 저항군들의 군자금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이것을 네 명이 나누기로 했는데 자기 몫은 5백만 달러쯤 된다. 달러가 가득 들어 있는 철제상자와 전투 현장의 사진들도 보냈다.   “한국 정착자금으로 사용할 이 돈 상자를 화물로 보낼 터이니 보관을 부탁한다. 자기는 물건이 도착한 2주 후에 한국에 입국하겠다. 액수의 30%를 수고비로 드리겠다. 주소를 알려 달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도 싫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노인이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제발 도와 달라. 당신이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매달린다.   나는 아침에 아내와 공원에서 조깅한 후 시장에 들려오기로 한 터라 더는 붙들고 있을 수도 없어 그냥 ○○톡을 끝내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어린이날 손자들을 데리고 아들 내외가 왔을 때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고 얘기를 하며 ○○톡을 보여주었다. 아들은 이런 사건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가끔 있었던 일이라고 말하며 낯선 메시지는 무시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SNS에 프로필을 노출하다가 보니, 편리함도 있지만,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없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과도한 사생활이나 개인정보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SNS가 편리하고 관계를 통해 존재의 힘을 과시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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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21
  • 과학도를 꿈꾸며 2021년 대학 생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시니어투데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팬데믹(pandemic)으로 온 세상이 힘들었던 2020년이 저물어가던 즈음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대학에 지원한 외손자의 합격 소식이었다.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외손자가 희망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기에 무척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외손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과학을 좋아했고, 학교 대표로 출품한 각종 과학 관련 대회에서 자주 입상하여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아이였다. 명절 때 외가인 우리 집에 오면 과학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수준이 높아 공대를 나온 나도 대답하는 데 쩔쩔매기가 일쑤였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을 했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 외에는 아는 것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고 사양했다.   한번은 가족 모두가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큰일이 벌어졌던 일도 있었다. 외손자가 중학생 때였는데 엄마, 아빠가 모두 외출하고 없는 시간에 혼자서 주방 식탁 한쪽에 실험도구를 차려놓고 화학실험을 하다가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외손자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 얘가 입원해 있다는 화상 전문병원에 가보니 얼굴과 손이 온통 붕대로 감겨있어 눈앞이 캄캄했었다. 다행히 몇 달 후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여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얘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종이로 만든 우주선을 건네고 갔다. 어느 날 책장에 올려놓은 그 종이 우주선을 보고 소망을 담아 적어 본 시다.   종이 우주선   책장 위에서 발사대기 중인 U-3069호 종이 우주선 언제 창공으로 솟아오를까?   우주과학자가 되겠다는 꽃 같은 우리 외손자 놀러 와 만든 꿈을 기도 속에 키워주었다.   주방 한쪽 너의 작은 실험실에서 들린 폭발음은 먼 훗날 네 종이 우주선이 날아오를 전주곡이었을까.   온통 붕대밖에 보이지 않던 그날 병실에서는 가슴이 내려앉았었는데   이제는 그 꿈 펼칠 나날 그리며 쉼 없이 달려가는 네 모습이 할아버지 마음에서 행복하게 솟아오르고 있구나.   나는 과학도로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될 출발을 앞둔 외손자와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될 많은 젊은이에게 축복과 함께 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과학자는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할까.   과학 연구에 대한 과학자의 태도는 인류의 삶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교통기관의 발전에 이바지함으로써 인간의 활동 범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질병과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는 신비로운 힘이 되었다. 이제 인공지능, 로봇 등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인류에 대해 남다르게 따뜻한 감성을 지녀야 한다. 겸손한 마음과 뛰어난 공감력 및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룬 성과이고 이루어갈 미래인데 왜 그래야 하는가?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부모와 두뇌 및 신체적 조건 그리고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한 개인은 자신과 인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수한 자질을 지닌 것과 그에 따른 노력으로 얻은 결과는 그 개인의 영광임과 동시에 인류의 공적 자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삶은 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연구하는 분야의 수많은 선행연구자의 연구 성과와 그를 가르쳐준 많은 스승 그리고 국가적 지원 등 주변의 다양한 도움도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과학자들은 남다른 시대적 사명을 지녀야 하고,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본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에 따른 사명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남다른 자질을 지닌 사람은 그만큼 영광도 크기에 그에 따른 사명감을 보람으로 여기는 넓은 마음과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뜨거운 열정과 큰 노력으로 이루어낸 대학 입시 결과로 과학도로 출발할 시점을 앞둔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자신의 발전을 통해 인류의 행복에도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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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1-11
  • 차량용 빗물받이 교체, 직접 해결하다
    [시니어투데이] 언제부터인가 내 차의 조수석 뒤쪽 좌석 창문 위에 달려있던 빗물받이가 한쪽이 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했지만, 중요한 부품도 아니어서 그대로 타고 다닌 지가 1년이 넘은 것 같다. 그러다가 얼마 전 좁은 길을 지나는데 물건을 내리려고 주차하고 있던 화물차 기사가 갑자기 뒷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내 차의 조수석 백미러가 떨어져 나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는 놀라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려서 보니 앞바퀴 윗부분과 그쪽 문에도 흠집이 생겨있었다. 물론, 화물차 기사가 100% 자신의 과실이라고 인정하여 그쪽 보험사의 부담으로 수리를 다 마쳤다.   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에 보니 조수석 창문에 부착되어있던 빗물받이도 일부가 깨져 있는 것이었다. 그때 사고로 깨진 것이 확실하지만, 뒤늦게 청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를 알고 나니 눈에 거슬려 과감하게 새것으로 교환하기로 했다.   집 부근의 카센터에 가서 교환을 부탁했더니 일을 맡지 않으려 했다. 차량용 부품점에 가면 부품을 살 수 있으니 거기에서 사서 붙이라는 것이었다. 수리비를 많이 받을 수도 없는 하찮은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센터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차량용 부품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순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차량용 빗물받이를 검색하니 차종별로 많은 제품이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서 내 차에 알맞은 빗물받이를 선택하여 주문했더니 며칠 후 물품이 도착했다.   택배로 도착한 빗물받이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파손된 것을 떼어내기만 하면 나도 쉽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조각이 떨어져 나가도 일부는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수리를 의뢰하러 카센터로 갈까 하다가 좀 더 해 보기로 하고,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글로브 박스(glove box)에 넣어두었던 드라이버를 몇 년 만에 꺼내 들었다. 오늘따라 기온도 낮았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힘을 내서 드라이버를 틈새로 끼워 넣는 등 한참 동안을 씨름해서 겨우 모두 떼어낼 수 있었다.         새로 산 빗물받이에는 양면 접착테이프가 붙어있었고, 그 표면에서 보호용으로 부착된 종이를 떼어낸 다음 적당한 위치에 단단히 붙였다. 이렇게 하면 될 것을 그동안 깨어진 빗물받이를 달고 다녔던 것이 안타까웠다.   요즘은 차량용 이외에도 소비자가 손쉽게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용품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불편함을 처리하고 발전적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와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시니어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보다 체력과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시니어들에게는 일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가 있지 않은가.   장비를 쓰는 것이나 조작과 사용이 편리하게 만들어진 용품들이라면 이를 하는 데에서는 힘보다는 지혜가 더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의 강점이고 더욱더 힘차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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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0-11-30
  • 컴퓨터 없는 생활에서 느낀 소회
    [시니어투데이] 내가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가 자주 말썽을 부린지가 여러 달 되었다. 아들이 쓰던 것을 가져와 오래 써왔다. 그동안 바이러스 때문에 포맷도 여러 번 했다. 얼마 전부터는 커서가 꼼짝하지 않기도 하고 아예 사라져버리기도 했다. 정상적으로 컴퓨터를 끄지도 켜지도 못해 강제로 전원을 꺼야 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본체를 떼어서 여러 차례 컴퓨터 수리점에 맡겨야 했다. 컴퓨터 기사를 집에 불러 수리를 맡길 수도 있지만, 출장비를 주어야 하고 또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어서 내가 가지고 가서 수리하는 게 편했다. 처음에는 수리해 온 컴퓨터에 다시 케이블을 연결할 때는 전원 케이블, 인터넷 선, 그리고 모니터, 키보드, 프린터, 스피커 등 많은 선 들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도 여러 번 했더니 이력이 생겨 눈감고도 할 수가 있을 정도로 숙달이 되었다.   그러다가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데 또 갑자기 커서가 꼼짝을 않는다. 강제로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켰더니 한참 쓴 글이 다 날아가 버렸다. 다시 작업하다가 한 5분쯤 후에는 또 그런 현상이 반복되더니 결국은 켜지지도 않았다. 또 수리점에 가려고 케이블들을 떼어내는 것을 보던 아내는 이참에 아주 새것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했다. 머리가 허연 사람이 컴퓨터를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더는 보기 싫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젠 나도 툭하면 멈춰버리는 컴퓨터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것을 사기로 했다. 이렇다 보니 컴퓨터를 사려고 인터넷 쇼핑몰에도 들어갈 수 없어서 아들에게 연락했다. 아들은 얼마 후 컴퓨터를 주문했다고 연락을 했다. 마침 추석 때문에 택배가 많아서 연휴가 끝나야 배송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컴퓨터가 없으니 컴퓨터와 함께 시간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매주 영어 공부를 하고 있기에 회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하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컴퓨터를 좀 사용할 수 없겠느냐고 물으니 곤란하다고 한다. 읍사무소에 물어도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없다고 한다. 도서관에 연락해보니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은 있지만, 코로나19로 도서관 전체가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성당 교우에게 컴퓨터 좀 쓰자고 전화로 부탁하고 방문을 했다. 메일을 열어보니 며칠 동안 벌써 100여 통이 들어와 있었다. 우선 회원들에게 자료를 발송해주고 나서 문서를 열어보았으나 열리지 않았다. 해당 문서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궁리 끝에 복지관에라도 가서 이메일도 보내고 내가 맡은 한 페이지라도 번역작업을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면이 있는 사회복지사에게 연락했더니 복지관에 와서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허락을 해주었다.   차로 30분을 달려 복지관에 갔더니 예전에는 그렇게 비좁던 주차장이 대부분 비어있어 적막감마저 들었다. 강의를 듣던 인문학반 컴퓨터에서 회원들에게 메일을 발송하고 나서 내가 공부할 자료를 열었는데 문제는 프린터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가지고 간 USB에 문서를 저장한 후 사회복지사에게 인쇄를 부탁했다. 급한 대로 내가 발표할 두 페이지를 번역하여 프린트하고 나니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일 처리를 하고 보니 컴퓨터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마침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를 중계하고 있어서 결승이 끝날 때까지 열흘간은 TV를 보느라 거의 온종일 컴퓨터 없이도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여러 시간 TV를 혼자서 차지하지 못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노래를 좋아하지도 않던 아내가 가수 김호중의 열성 팬이 되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데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주문했던 컴퓨터가 도착해서 아들이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있다며 전화를 했다. 다음날 내 서재에는 새 컴퓨터가 놓였다. 이제 컴퓨터에서 문제가 발생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도 상쾌해졌다. 우선 쌓여있는 200여 통의 이메일을 정리하고 난 후 다시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이제 컴퓨터는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메일 주고받기, 인터넷 쇼핑몰 이용, 인터넷 뱅킹, 인터넷 서핑 등 컴퓨터의 용도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이처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만큼 더 편리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시니어들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지식을 갖춤으로써 더욱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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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을 잃어버릴 뻔한 아찔했던 순간들
    [시니어투데이] 지금까지 80 평생을 살아오면서 아찔한 순간을 경험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잃어버릴 뻔한 아찔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지금부터 50년도 더 이전이니 그때 나는 혈기 왕성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열대지방인 말레이시아에서 가족과 함께 몇 년간 지낸 적이 있다. 나는 동말레이시아 사라왁주에 있는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합작한 회사에서 한국인 7명과 함께 근무했었다.   내가 먼저 출국하여 지내다 1년쯤 지난 뒤에 가족을 초청해서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때 아들은 4살이었고 딸은 2살이었다. 가족이 도착한 처음에는 마땅한 집이 없어서 중국인 가정의 별채를 빌려 그곳에서 집을 마련할 때까지 지냈다. 그런데 한 가지 불편한 점은 화장실이 집안에 없고 밖에 별도로 만들어져 있었다.   가족이 도착한 뒤 2개월쯤 지난 어느 날 아침의 일이다. 내가 회사에 출근한 뒤 아내가 화장실에 다녀와 보니 자고 있던 아들이 감쪽같이 없어졌던 것이다. 집에 전화가 없었기에 아내는 나에게 연락할 수도 없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내는 혼자서 아들을 애타게 찾다가 결국은 주인집에 올라가 손짓과 발짓으로 아이가 없어졌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중국인 할머니는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뽀똥 뽀똥” 이라고 소리치며 큰일이라는 듯이 제스처를 했다고 한다.   “뽀똥” 이라는 말은 말레이어로 “자른다”라는 뜻이다. 당시 그 지역에서는 새로 다리가 건설되면 아이들 목을 매달아 놓고 다리가 오래도록 튼튼하게 유지하기를 비는 토속적인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 근방에 새 다리가 개통되어서 모두 아침과 저녁에는 아이들을 밖에 나가서 놀지 못 하게 하고 있던 때였다.     더욱더 겁에 질린 아내는 사색이 되어 근처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주인집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울며 떼쓰는 우리 아들을 안고 왔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주인집 아들이 직장에 출근하는데 아이가 혼자서 걸어가더라는 것이다. 눈에 익어서 자세히 보니 별채 집 아들인 것 같아서 안고 오려는데 아이는 낮 설은 사람이 안으려고 해서 울며 버티는 것을 억지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아들의 얘기는 잠에서 깨어보니 엄마가 보이질 않아서 아빠 회사에 간 줄 알고 엄마를 찾아 나섰던 것이라는 이야기다. 만일 이국땅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더라면 우리의 삶은 통째로 비극에 빠졌을 것이다.   그곳에서 가족과 3년을 더 살다가 큰아이가 7살이 가까워지자 귀국을 서둘렀다. 말레이시아는 열대기후 지대여서 아내가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리고 거기에 정착하여 살아가지 않을 바에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귀국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귀국하여 나는 미국계 건설용역회사에 취업하여 묵호항 항만개발사업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도 묵호(현재 동해시)로 이사를 갔다. 아들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딸은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단체로 영화를 관람한다고 아이들을 극장에 데려갔다. 그런데 우리 딸은 영화가 지루해서 집에 가려고 혼자서 먼저 나왔다고 한다. 집으로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나왔는데 한참을 걸으면서 아무리 찾아봐도 집이 보이지를 않더라고 했다.   지쳐서 울며 가고 있는데 지나던 어떤 여학생이 아이의 유치원 명찰을 보고 유치원에 데려다주었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비극이 될 뻔한 위기를 모면한 셈이다.   요즈음도 유원지에서 아이를 잃었다는 뉴스를 본다든지,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는 광고를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하느님의 은총으로 큰 시련 없이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어느 한 번이라도 비극적으로 기울어졌더라면 지금 우리 가정의 행복은 불가능했을 것이 아닌가. 모든 것에 감사할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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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2
  • 전기밥솥으로 벌어진 소동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얼마 전 아내는 쓰던 전기밥솥이 잘 열리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고장이 난 것 같으니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예전부터 쓰던 것이니 15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부품도 두어 번 교환하고 안쪽에 든 솥도 바꾸고 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했으니 문제가 터질 때도 되었다.   밥솥을 사러 읍내에 있는 전자제품대리점에 갔다. 국내 전기밥솥 분야에서는 두 개 회사가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두 회사 제품이 전시돼 있긴 했지만, 마음에 맞는 모델이 고루 다 갖추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중에서 4인용으로 하나를 골라서 샀다.   예전에는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인공지능 기능까지 더해져 사용법이 무척 복잡했다. 자동세척, 간단 불림, 백미, 현미, 잡곡, 찰진 밥, 구수한 밥, 누룽지 등 메뉴도 많고 작동법도 다양해서 사용설명서를 익히려면 며칠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저녁때가 되어 밥을 지어야 했기에 일단 설명서를 대충 읽어본 다음 쌀을 씻어 넣고 스위치를 눌렸다. 밥이 다 된 것 같아서 열어보니 가운데만 먹을 만하고 가장자리는 두껍게 누룽지가 되어있었다. 우리가 처음 사용하다가 보니 조작을 잘못한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 남은 밥은 보온으로 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을 차리려고 밥솥을 열어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남아있는 밥이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부랴부랴 버리려고 내놓았던 옛날 밥솥에다 밥을 지었다. 잘 안 열리는 밥솥 뚜껑을 겨우 열어서 무사히 아침을 먹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밥솥을 산 봉담에 있는 대리점보다는 수원에 있는 고객센터에 가서 작동법을 배워 오는 게 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터넷으로 고객센터 위치를 알아보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고객센터사무실 직원에게 밥솥에 들어있는 딱딱한 밥을 보여주면서 작동법을 배우러 왔노라고 설명했다. 직원이 밥솥에 전원을 연결하고 작동시켜보더니 고장이라고 했다. 고장확인서를 써주면서 이것을 산 대리점에 가서 보여주면 교환하거나 환불해 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어제 산 새것이 고장이 날 수가 있느냐고 의아해했더니, 직원은 가끔가다 그런 제품이 나온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구매한 대리점에 가서 고장확인서를 보여주었더니,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환불을 원하는지 물었다. 아내는 원하는 모델이 없으니 환불하고 다른 곳에서 사자고 해서 환불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 쇼핑센터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모델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는 밥솥에 보온을 작동시켜 조금 오래 두면 전력 소모도 되고 밥맛도 좋지 않으니 3인용으로 하자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골라 3인용을 주문했더니 이틀 만에 제품이 도착했다. 밥을 해보니 맛있게 지어져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에 밥솥을 바꾸는 경험을 하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우리 시니어들에겐 복잡한 기능이 장착된 비싼 밥솥보다는 값싸고 기능이 간단한 밥솥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기능이 들어가는 만큼 가격은 비례하여 높아지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능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괜히 신경 쓰다가 보면 머리만 아파질 우려가 크다.   첨단 기능이 복잡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지만 질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밥솥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고 쉬운 작동만으로도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으면 된다. 다른 모든 것에서도 본질적 목적 실현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크게 필요치도 않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치렁치렁하게 매달고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에 충실했던 것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후의 삶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도 삶의 본질에 충실한 소박한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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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2
  • “부자(父子)는 다 계획이 있구나”
      [시니어투데이] “아버지는 28년간 기술자로 성실히 근무하신 멋진 가장이다. 그런 아버지를 지도하신 교수님과 함께라면, 낯선 기술 분야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윤반석(27) 씨는 4월 ㈜오리온 청주공장 설비팀에 입사해 생애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제조 공정에 쓰이는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일이다. 2년 전만 해도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던 터라 “기술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지방 4년제 대학을 다니다 졸업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자퇴했다. 취업으로 힘들어하는 선배나 친구들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졸업해도 전공에 맞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반석 씨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건 금호타이어㈜에서 28년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윤만중(54) 씨였다. 만중 씨가 처음 기술을 배운 건 1991년 폴리텍 전신인 광주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다. 2년제 과정을 졸업하고선 내리 기술 외길 인생을 살았다. 아들의 결심이 서자 윤 씨는 직업전문학교 시절 자신을 가르친 폴리텍 김제캠퍼스 이상근 교수(62)를 찾았다. “내가 배웠던 만큼 아들도 잘 지도해 주실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상근 교수는 36년간 산업설비 자동화 분야 직업교육훈련에 종사한 전문가다. 매년 졸업 철이면 학생들 취업 연계를 위해 한 명 한 명씩 이끌고 기업체로 분주히 뛰어다니는 데, 대학 내에서도 유명 인사다. 그 때문인지 윤 씨 부자(父子) 외에도 이 교수를 찾는 가족 동문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집 인근 광주캠퍼스로 진학을 권유했는데, 결국엔 내가 설득을 당했다”며,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사제 간 연을 이어왔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2018년, 반석 씨는 대학 전공을 뒤로하고, 폴리텍 김제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새내기가 되었다. 통학에만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탓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지만,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반석 씨는 “생소한 분야다 보니 처음에 고생도 했지만, 배우는 재미도 남달랐다”고 말했다. 노력한 성과도 있었다. 2년간 학교생활을 마치고 올해 2월 학점 4.44(4.5점 만점)로 수석 졸업했다. 위험물산업기사 등 국가기술자격증 4개도 손에 넣었다. 반석 씨는 “기술에 대한 아버지의 소신과 교수님의 지도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아직까지 직업을 찾지 못한 친구들에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새롭게 무언가를 배워보길 권유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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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4
  • 긴급재난지원금 수령 소동과 새로운 희망
    [시니어투데이] 긴급재난지원금의 지원 범위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던 4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미장원에 다녀오더니 지자체에서 지원하기로 결정된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하려면 지역 화폐 카드를 먼저 신청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어차피 신청할 거면 빨리하자고 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남는 게 시간인데 바로 인터넷으로 지역 화폐 신청 방법을 알아보았다. 앱을 다운받아 스마트폰으로도 간단히 할 수 있다고 설명되어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지역 화폐 앱을 다운받아 주소, 전화번호 등 요구하는 자료를 입력하여 먼저 아내 이름으로 신청을 했다. 이어서 내 이름으로 또 한 번 신청을 하고 나서 보니 “신청 확인” 이라는 칸이 보였다. 친절하게도 제대로 신청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나는 아내에게 신청이 끝났다고 말하고 신청 확인을 해주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내는 그렇게 간단히 스마트폰에서 신청이 되었느냐며 신기해하며 다가왔다.   먼저 아내의 신청 확인을 해보았다. 그런데 주소를 내가 잘못 입력한 것이다. 아파트의 동을 잘못 입력한 것이었다. 요즘 걸핏하면 아내는 내가 실수하는 것을 볼 때면 “당신도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다” 고 핀잔을 주기 일쑤인데 또 한 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카드가 다른 집으로 가서 남들이 함부로 쓰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 섞인 잔소리를 했다.   우선 걱정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할 터이니 염려 붙들어 놓으라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지역 화폐 홈페이지에 들어가 고객 상담란에 “주소가 잘못 입력되었으니 수정해 달라”고 일단 글을 올렸다.   다음날 마침 잘못 입력한 주소에 사는 지인과 만난 일이 있어서 그 집으로 카드가 배달되면 알려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카드를 기다리고 있다가 방송을 보니 재난지원금은 일반카드나 지역화폐카드나 모두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공연히 지역화폐카드를 신청하느라고 애를 썼던 것 같았다.   며칠 뒤에 아내의 휴대폰에 재난지원금이 입금되었으니 사용하라는 연락이 왔다. 물건을 사고 나니 바로 얼마가 사용되고 얼마가 남았다는 메시지가 뜬다고 아내는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열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시청에 왜 같은 날 신청한 아내는 재난지원금을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소식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도청에 문의하라고 해당 부서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다. 도청에 전화했더니 온종일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안내 음성만 들렸다. 답답해서 카드 고객센터에 여러 번 전화한 노력 덕택에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인적사항을 묻더니,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계시는데요? 얼마를 썼고, 잔액은 얼마라고 알려줬다. 내 휴대폰에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 하니 그것은 통신사에 알아보라고 했다.   이렇게 나도 지원금을 받아서 잘 쓰고는 있다.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의 재정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만큼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런 염려도 있었지만 금세 마음을 바꿨다.     지금까지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번 것도 이럴 때를 위한 것이니, 이제부터는 경기가 회복되는 데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현명한 소비에 동참할 작정이다.   시니어들이 어렵다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사용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 비록 어렵지만, 열심히 사용법을 익히면서 사용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돈을 아끼기만 한다면,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명하게 소비에 동참해야 한다.   더욱이나 이런 목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까지 받은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더욱더 힘찬 도약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보자. 분명히 이런 마음의 크기만큼 우리나라의 미래와 우리의 삶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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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1
  • 믿음으로 바라보는 오늘과 내일
    [시니어투데이] ‘코로나19’ 사태로 미사가 중지되기 전 주일 미사 때였다. 영성체를 하러 나가 신부님 앞에서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형제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자리에 들어가다 말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하고 눈여겨보고 있으니 뒤따라 성체를 모신 여자분을 기다렸다가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내가 몸이 불편하기에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순간 몇 해 뒤의 나와 내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요즘 부쩍 다리에 힘을 잘 쓰지 못하고 있다. 앉았다가 일어나려면 바로 일어서지를 못하고 옆에 의자를 붙들거나 한참을 거실 바닥을 짚고 애를 쓰다가 일어서곤 하여 보기에 매우 안타깝다.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무릎에 주사를 맞곤 했는데 6개월이 지났지만 신통치 않다. 관절주사를 맞을 때 통증이 심하다면서 맞지 않고 견디어보겠다고 버티는 중이다. 그러다가 가끔 통증이 심해지면 아예 다리를 오므리지도 못해 부축해주어야 겨우 일어난다.   절뚝거리면서 아침을 준비한다고 서두르는 것을 볼 때는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마음 편할 듯싶다. 서툴지만 내가 밥을 차릴 테니 옆에서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기만 하라고 하면 한사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자기가 한다고 고집한다.   요즘 아내는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어깨가 쑤신다고 하다가 허리도 아프다고 한다.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며 나오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다고 한다. 어쩌다 아침에 일어나 웃으면서 나오면 내 마음도 밝아지고 잠시나마 평온을 찾는다.   나이가 더 들고 다리에 점점 힘이 빠지면 오래지 않아 아내도 저렇게 부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혼자서는 성당에도 나올 수도 없게 될지도 모른다.   병원 신세만 지지 않는다면 부축해서라도 미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픈 데가 없어지기를 기도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한 바람이고 응답될 것을 믿는 신앙 행위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절대자를 의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과 의지가 필요하다. 먼저는 생각에 따른 마음가짐이다. 마음과 신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큰 고비를 넘기고 많은 안정을 찾았다. 생활 거리 두기를 실시하며, 순차적으로나마 초·중·고등학생들의 등교도 결정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는 봄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꽃은 피었고, 산과 들판은 온통 초록으로 번져가며 생명력이 짙어가고 있다.   의료적으로 한숨 돌리고 보니, 이젠 경제가 문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경제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아내도 비록 지금 힘겨운 나날일지라도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그 전제가 바로 나와 아내의 믿음이고 그에 따른 생각과 마음이며 실천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았던가. 언제부터 봄이고 여름이라고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봄이 지나면 분명히 여름이 온다.   아내가 당장 내일부터 완전히 낫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점점 더 좋아질 것을 믿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며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준다”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에 대한 믿음이 바로 나의 기도이며, 나와 아내의 밝은 내일이라고 믿는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0-05-07
  • ‘코로나19’로 움츠러든 가슴에 따뜻한 봄이여 오라
      [시니어투데이] 봄이 왔다. 벚꽃이며 진달래꽃은 한창이고 목련은 이미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산, 저 산에는 연두색과 분홍색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혹독한 추위로 움츠리고 있던 나무들이며 풀들이 푸른 희망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서로 내기라도 하듯이 앞다투어 새잎을 내미느라고 바쁘다.   이런 모습을 응원이라도 하듯이 새들은 수풀 속을 들락거리며 짹짹거린다. 들녘은 나날이 더 짙은 녹색으로 물들고, 논밭에서는 농부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여러 가지 농사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봄이 한창인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시린 겨울이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의 습격이 우리를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벚꽃의 향연이 쭉 뻗은 도로를 연분홍으로 물들이고, 들판은 푸름을 더하여 가는 완연한 봄인데 사람들 마음속에는 아직 봄이 오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상상 초월의 피해를 안기고 있는 ‘코로나19’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개학은 물론, 대학교도 개강을 못 하고 있다.   문화센터, 복지관도 석 달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는 문 닫은 상점들이 쉽게 눈에 띈다. 문을 연 상점들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래도 계절의 순환에 따라 어김없이 봄이 왔으니, 얼마나 큰 위로인가. 봄마저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슬펐을까.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와준 봄이 참으로 고맙다.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다가 보니, 마음대로 외출하기도 어렵다. 이렇다 보니 마음 놓고 다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절감하게 된다.   ‘코로나19’가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봄이 찾아왔듯이 아무리 위기가 닥쳐와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는 변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참으로 어려운 형편인데도 우리는 서로 돕고 있다.   의료인들은 망설임 없이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대구로 달려갔다. 도시락을 보냈고, 마스크를 모아서 관공서에 갖다 놓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어려우면 서로 살려고 아우성치며 빼앗으려고 난리가 벌어지기 쉬운데, 한국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재기도 없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상한 나라’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힘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고 있다. 우리 국민이 모두 슬기로운 대처로 이루어낸 성과다.   방역과 진단검사에 대해서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본받고 있다. 한국기업에서 생산한 진단키트는 요구하는 나라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국격이다. ‘코로나19’는 분명히 우리에게 위기이고 아직도 큰 상처를 안기고 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 어려움을 기회로 바꾸어내고 있다.   많이 힘들고 슬픔 또한 매우 크지만, 우리 모두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더 힘을 내야 한다. 서로 위로하고 도와줌으로써 희망을 창출하며 미래로 나가자는 것이다.   봄은 왔는데, 아직도 시린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삶에 하루속히 따뜻한 봄날이 오고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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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9
  • 임권택 감독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벗어나려 애썼다"
      [시니어투데이] 영화에 대한 임권택 감독의 열정이 후배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 5일 방송된 JTBC ‘방구석1열’에는 방송 100회를 맞이해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과 배우 김명곤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임권택 감독의 ‘짝코’와 ‘서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최근 진행된 ‘방구석1열’의 녹화에서 주성철 기자는 ‘짝코’에 대해 “처음으로 인간적인 모습의 빨치산을 그린 작품으로 ‘웰컴 투 동막골’ ‘공동경비구역 JSA’ ‘공조’의 원조 격이다”라고 설명했고, 이에 김명곤 배우는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이념을 넘어선 우리 민족의 비극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임권택 감독은 영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 ‘족보’에 대해 “할리우드 영화를 좇으며 1년에 5편을 찍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찍고 나니, 할리우드 영화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서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10년간의 노력 끝에 ‘족보’를 제작한 후에야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해방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주성철 기자는 임권택 감독의 영향력에 대해 “과거 봉준호 감독이 미래의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영화감독으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고 밝혔다”라며 많은 영화인의 길잡이 같은 존재임을 강조했다. 임권택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해 “한국인이 세계 수많은 좋은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사실 ‘살인의 추억’ 때부터 ‘언제 일을 내겠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눈에 띄었던 후배 감독이다”라고 전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어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본인에게 영화 좋다는 이야기를 잘 안하는 편인데 봉준호 감독 영화를 보고는 영화가 좋다는 칭찬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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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6
  • 깨어서 꽃을 피우자
      [시니어투데이] 흐르는 세월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코로나19’의 기세도 봄이 오는 길목을 막을 수는 없다. 세월의 흐름은 진리의 불변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기쁨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남녘에서부터 들려왔던 꽃 소식이 이젠 전국에서 한창이라고 바뀌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봄도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느라고 바쁘다. 땅 위에 있는 모든 동·식물도 제 할 일에 충실한 모습이다.   철을 따라 제 할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람도 이 진리에 순응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호흡할 때 보람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   앙상하던 나뭇가지들이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산수유, 목련은 벌써 한창이고 매화, 벚꽃이 앞다투어 피고 있다. 모두 추운 겨울이라는 시련을 이기고 철을 따라 깨어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요즘, 산으로, 들로, 강변으로, 해변으로 가볍게 나섰던 꽃구경이 아무 때나 마음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 사이도 이렇게 됐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만나지 말라고 한다. 만나더라도 악수도 하지 말고, 마스크를 쓴 채로 대화하라는 것이다. 이럴 때 전화로라도 즐겁게 대화도 하고, 서로 격려하며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 어렵고 답답한 시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요즘 나는 꽃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겨우내 동백꽃이 피었다가 지금은 다 시들었다. 그 옆에 있던 철쭉꽃은 1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반은 졌지만, 지금까지 피어 있다. 그러니까 겨우내 집에서 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설날 하루 전에 우리 가족은 서울식물원에 갔었다. 많은 꽃과 나무를 관찰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봉지에 싸여있는 튤립 뿌리를 보았다. 우리는 그 뿌리를 샀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설날 우리는 집에서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들네가 돌아갈 때 튤립 뿌리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얼마가 지났다. 우리 집 화분에 심은 것은 추운 베란다에 두었더니 늦게 자랐고 손녀는 따뜻한 곳에다 화분을 두었기에 꽃이 빨리 피었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 집 서늘한 베란다에 둔 튤립은 이제야 두 송이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빨간 색깔을 띠고 부끄러운 듯 살며시 솟아오르려는 꽃망울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런데 철쭉 화분 옆에서 파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파는 사람들에게 꽃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그저 식자재로만 여겨진다. 그런 파인데 여기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니 하얀 꽃망울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파가 피운 꽃처럼 때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것에서 인정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꽃들을 보고 있노라니,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기쁘다. 나는 꽃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화도 해보았다. 꽃을 피우려면, 차가운 계절 또는 어두운 땅속이라는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굳이 시기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고, 늦게 피는 꽃은 늦게 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앞서서 피는 인생도 있지만, 뒤늦게 피는 인생도 있다. 꽃을 피우는 시기도 천차만별이거니와 심지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는 인생도 많다. 어떤 사람은 꽃은 화려해도 열매가 없는가 하면, 엉뚱한 열매, 못된 열매로 손해를 끼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슨 꽃이냐, 언제 피느냐보다, 제대로 피어서, 충실한 역할로 주변을 환하게 하며 향기를 퍼뜨리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코로나19’에 대한 능동적이고 신속한 대처로 한국이 주목받고 있다. 심지어 미국도 진단키트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선별진료시스템도 모범이 되고 있다. 사재기도 없고, 봉사와 나눔의 물결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고 있다.   6·25동란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뒤늦게 꽃을 피워 아름다운 향기를 퍼뜨리며, 알찬 결실을 거두는 모습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이 시기가 지나가면 대한민국은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한 만큼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나눔과 봉사 그리고 사랑의 꽃을 피워 수많은 행복의 결실을 민들레 홀씨처럼 이웃으로, 다른 나라로 날려 보냅시다. 그리고 그 홀씨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모두 친구가 되어 손에 손을 잡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날을 기대합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0-03-26
  • 아름다운 나의 미래를 위하여
    [시니어투데이] 나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고 싶다.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봐 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그만한 업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은 물론, 큰 용기와 모험심도 필요할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노력 없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나만의 특성을 살려 최선을 다하며 어떤 어려움에도 물러서지 않고 도전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픽사베이   사람에게는 각자만의 특성이 있다. 이 특성을 제대로 살려 가치를 혁신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하는 것에 끼어들어서는 최고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신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며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나만의 특성을 발휘하는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이런 활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며 나의 활동이나 작품을 한 번 더 떠올릴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 오로지 나만이 그려낼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다 알지는 못한다. 지금은 당당하게 내세울 것도 없다. 비록 아직은 어리고 부족하지만, 꾸준히 재능을 발견하고 갈고닦아 이를 가치 혁신해 나갈 것이다.   이를 이루어내기 위하여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더라도 반드시 극복해내겠다는 용기와 투지 그리고 결연한 실천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내 존재적 가치를 마음껏 실현함으로써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와 지구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기를 원한다.
    • 교육뉴스
    • 학생들시선
    2020-01-31
  • 은행과 마음의 휴면계좌
    얼마 전 휴대폰에 거래은행에서 보낸 메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열어보니 새로운 앱이 개발되었는데 다른 은행 계좌의 모든 정보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니 필요하면 앱을 다운받아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거 괜찮겠는데.” 솔깃한 마음이 들었다.   주로 이용하는 은행을 비롯해 국민연금이 들어오는 은행, 교통카드 때문에 계좌를 개설한 은행 등 여러 은행의 계좌를 한곳에서 볼 수 있으면 편리하지 않겠는가?   나는 즉시 앱을 다운받아서 열어보았다. 열린 장면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자세한 정보가 펼쳐졌다. 내가 개설해 놓은 여러 은행의 계좌가 모두 나열되어있다. 그런데 생각나지도 않는 여러 은행에 있는 내 휴면계좌들도 눈에 띄었다. 잔고도 나와 있는데 몇천 원도 있고 액수가 큰 것은 이십삼 만원도 있었다. 요즘 경제활동도 못 하는 나에게 생각지도 않은 이십 만원은 큰돈이다.   픽사베이    다음날 읍내에 있는 여러 은행에 들러서 휴면계좌를 모두 정리하고, 잔고는 거래은행으로 송금했다. 옛날 가계수표를 이용하던 계좌는 발행은행의 해당지점으로 가야만 정리된다고 했다. 하지만 잔고도 얼마 되지 않아서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 지점이 없는 은행은 복지관에 가는 날 향남지점에서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편의상 직장이나 거주지 부근에 있는 가까운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여 이용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본의 아니게 몇 십 년간 이 은행, 저 은행으로 옮겨가면서 거래를 하다 보면 까맣게 잊고 있는 휴면계좌가 한두 개는 있을 수 있다.   시니어 여러분, 모두 한번 찾아봅시다. 그리고 단 몇 천 원이라도 잔고가 남아있다면 지금 이용하는 은행 계좌로 옮겨서 이용합시다. 이런 휴면 계좌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벗이나 지인들은 없을까? 한때는 긴요하게 이용했던 계좌들처럼 한창 열심히 만났던 시절에는 다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휴면계좌야 정리하면 되지만, 오랜 세월 잊고 지낸 소중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비록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에서라도 되살려본다면 겨울날 화롯불을 쬐듯 가슴이 따뜻해질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0-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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