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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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충분한 정보와 아집이 빚어낸 확신으로 맞본 오류
    [시니어투데이] 분당에 사는 처제가 전곡항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처제 내외와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전곡항에서 만난다. 활어를 사면 생선회와 매운탕으로 요리해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 오곤 한다.   횟집 2층 창가에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는 것도 큰 즐거움의 하나였다. 그러나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만나기로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얼마 전 ‘봉담-송산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는 보도가 있어서 진입로를 미리 찾아보았다. 이 도로를 이용하면 봉담에서 송산까지 30분이면 될 것 같았다. 20분이나 단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도로를 이용할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진입로로 들어서니 새로 닦은 도로라서 깨끗했고 표지판도 산뜻해서 기분도 좋았다. 그런데 아뿔싸! 며칠 전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 했는데도 아직 이 도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5분 정도를 달리니 ‘마도’라는 출구 표지판이 보였다. ‘마도’에서도 구 도로로 연결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갈까 말까 잠시 갈등을 했다. 아내는 “여기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나는 이 도로가 ‘봉담-송산 고속도로’이니 좀 더 가면 ‘송산’ 출구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100미터도 달리지 못해 내비게이션에서는 유턴하라는 표시가 나왔다. 헷갈리는 상황에서 달리다가 표지판을 보니 조암으로 가는 길이 나왔다. 얼마나 더 가야 되는지는 모르지만 조암 톨게이트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내비게이션에서는 도착시간이 30분 후로 조정되어 나왔다.   자기 말을 안 들었다고 투덜거리는 아내에게 처제에게 전화해 30분쯤 늦겠다고 전하라고 부탁했다. 이 말을 건네면서도 괜한 아집을 부렸나 싶어서 얼굴이 좀 화끈거렸다. 조암에서 통행료 3천5백 원을 내고 나가서 다시 진입하여 마도에서 구 도로와 만나 한참 만에 전곡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침 토요일인지라 그 넓은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들어차 주차할 곳이 없었다. 밀려드는 차들은 주차할 곳을 찾느라고 사방으로 빙빙 돌고 있었다. 한참을 헤매다 겨우 주차를 하고 처제 내외와 전화해서 만났지만 식당은 만원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토요일에 만나지 말자고 하며 가지고 간 간식만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수산물센터에서 매운탕거리만 사서 헤어지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아는 길인 구 도로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올 때 실수했던 나는 갈 때는 얼마나 빨리 갈 수 있는지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곤 또 ‘봉담-송산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얼마지 않아 평택-시흥 갈림길이 나왔다. 자신이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시흥 방향으로 선택을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못 들어선 것 같았다.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40킬로미터를 달린 후에야 ‘안산’ 출구로 나갈 수 있었다.   “아! 내가 오늘 왜 이러지?” 아내는 또 자기 말을 안 듣더니 이렇게 됐다고 언짢아했다. 아내는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할 말이 없었기에 그 후로는 침묵이 흘렀다. ‘안산’에서 빠져나온 후에 50분을 더 달려서 집에 도착하니 피로가 몰려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라는 줄리언 반스(Julian Patrick Barnes)가 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한 구절이 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그렇다.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데 감(感)을 믿었던 내가 잘못이었다. 오늘 나는 불충분한 정보와 아집이 빚어낸 확신으로 초래한 오류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우리 시니어들은 젊은이들보다 정보력이나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비게이션 같은 필수적 기기들은 수시로 업데이트하는 등 더 철저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짐작이나 예감을 확신하려는 아집에서 벗어나 올바른 정보를 수집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정확한 판단을 하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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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1
  • SNS 접속 장애로 겪었던 어려움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나는 요즘도 매주 월요일 밤에는 1시간씩 동호인끼리 영어 번역 공부를 하고 있다. 전화를 이용하다가 얼마 전부터 화상회의 앱 ‘줌(Zoom)’을 통해서 화상으로 서로 얼굴을 보며 하고 있었다. 그런데 3주 전부터 줌(Zoom)에 연결이 안 되어 나만 참여하지 못하고 있어 속상해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아무런 접속 장애 없이 잘 사용했는데 웬일일까? 그런데 연결만 하려고 하면 내 휴대폰의 와이파이 신호가 사라지면서 연결이 안 되었다. 공유기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도, 휴대폰을 껐다가 다시 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접속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나를 기다리지 말고 공부를 시작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혼자서 아무리 애써보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은 포기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각종 해결 방법들을 시도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일주일 후에 휴대폰에 와이파이 신호 세기가 강하게 표시되기에 다시 연결해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알 수 없는 장애로 연결이 안 된다”는 메시지만 뜰뿐 접속이 안 됐다. 그날도 나는 허탕을 쳤다. 몇 시간을 씨름하여 교재를 다 번역해 놓고 공부 시간만 기다렸는데 접속이 안 되니 속이 많이 상했다.   이 방면에 능숙한 지인에게 요청해서 시도를 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아내의 휴대폰으로 하면 접속이 잘 되었다. 전화기 때문인 것 같아 A/S 센터에 가보았지만, 휴대폰의 문제도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A/S 센터에서 공유기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통신사에 고장 신고를 하여 온라인으로 점검을 해보아도 정상이라고 했다. AS기사가 방문을 해서 전파 측정기로 검사하더니 신호가 잘 잡히니 공유기는 정상이라고 했다.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Zoom 연결”, “와이파이 끊기는 문제”를 몇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검색했다. 어디엔가 전화기의 와이파이 문제를 해결할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마지막으로 휴대폰에서 “네트워크 설정 초기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지시한 대로 따라 해서 초기화를 시키고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연결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연결이 되었다. 2주 동안 못 보았던 동호회 회원들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이제는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 줌(Zoom)으로 한창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휴대폰에 “데이터가 다 소진되어 이제부터는 요금이 부과된다”는 메시지가 뜨는 것이 아닌가.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데이터가 모두 소진되어 있었다.   추가 사용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요금이 부과되어 있었다. 그동안 줌(Zoom)을 연결하는데 와이파이가 아닌 휴대폰 데이터를 사용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마지막 방법은 공유기를 바꾸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새로 구입한 공유기에는 안테나가 네 개나 달려있었다.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니 공유기 밑면에 비밀번호가 있다고 쓰여있다고 했다. 그 번호를 입력했더니 와이파이 기호가 떴다. 이제 다시 접속을 시도했다. 드디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지금도 전에 사용하던 공유기에서는 아내 휴대폰은 되고, 내 것은 왜 안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디지털 기기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자주 애를 먹이지만, 시니어들에게는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그러더라도 지치지 말고 차근차근 풀어가다가 보면 끝내는 해결할 길이 나오는 것이다. 시니어들의 자산은 풍부한 경험과 그로 인해 축적된 지혜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들의 경쟁력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이 또한 시니어들의 저력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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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1-06-07
  • SNS 사용에서 주의할 점과 대응 지혜
    [시니어투데이] 며칠 전 새로 들어온 이메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도착하는 이메일은 그중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일단 삭제하고 남은 것들을 시간 나는 대로 읽어본다.   그중에 한 SNS에 ‘친구 요청’이 있다는 메일이 와있었다. 그 SNS에서 보내주는 이메일 가운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오는 요청이 많아 보통은 삭제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Jennifer라는 사람으로부터 요청이 왔다. 외국인이 요청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경우라서 열어 보았다. 나의 SNS 계정에 들어와 내가 쓴 글들에 ‘좋아요’ 표시를 여러 번 해 놓았다.   계정에 들어가서 둘러보니 귀엽게 생긴 아가씨다. 군복을 입고 동료들과 찍은 사진도 여러 장 보였는데 아마 여군인 모양이다. 그런데 며칠 후 메시지가 와있어 열어보니 ‘제발 좀 친구로 추가해주세요’라고 한글로 쓰여 있었다. 친구 요청을 거절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다시 요청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까짓것 별일이야 생기겠나 싶어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보니 내 SNS 계정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기는 시리아에 있는 미국 군인인데 반갑다고 인사를 보낸 것이었다. 나도 반갑다고 간단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메일을 열었는데 별도의 메신저로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열어보니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화를 주고받게 되었는데 자기는 한국계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7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지만, 씩씩하게 자라서 군인이 되어 지금 시리아에서 정보통신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커다란 시련을 겪어서 힘들었겠지만 씩씩한 군인이 되었다니 장하다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시리아라면 한밤중 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몇 시쯤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새벽 2시라고 했다. 그래서 밤이 늦었으니 다음에 얘기하고 어서 가서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야간 근무 중이라 괜찮다고 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전화번호를 묻는다. 가르쳐 주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울려서 받았더니 연결하는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통화는 안 되었다. 잠시 후에 메시지가 왔다. 군사시설이라서 보안 때문에 통화가 어렵다고 하면서 ○○톡을 하느냐고 물었다. 물론이라고 했더니 ○○톡 아이디를 묻는 것이었다. ○○톡은 아이디가 없이 그냥 이름으로 등록이 되었는데 아이디라니? 그래서 아이디는 없다고 하니 잠시 후에 자기 아이디를 알려주며 친구추가를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톡 연결이 되었다. ○○톡으로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통화할 수 없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점차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SNS 프로필을 보고 가장 믿을만한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다. 자기는 자살폭탄 공격이 심한 이곳에서 군에서 퇴직하여 민간인으로 살고 싶다.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가 사촌들과 조부모님도 찾아 정착하여 살고 싶다. 자기를 좀 도와 달라”는 요지의 부탁이었다. 나는 시골에 사는 노인이라서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갈수록 다음과 같은 놀라운 요지의 말을 늘어놓는다. 수색 중에 큰돈을 발견했다. 아마 저항군들의 군자금인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이것을 네 명이 나누기로 했는데 자기 몫은 5백만 달러쯤 된다. 달러가 가득 들어 있는 철제상자와 전투 현장의 사진들도 보냈다.   “한국 정착자금으로 사용할 이 돈 상자를 화물로 보낼 터이니 보관을 부탁한다. 자기는 물건이 도착한 2주 후에 한국에 입국하겠다. 액수의 30%를 수고비로 드리겠다. 주소를 알려 달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돈도 싫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노인이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제발 도와 달라. 당신이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매달린다.   나는 아침에 아내와 공원에서 조깅한 후 시장에 들려오기로 한 터라 더는 붙들고 있을 수도 없어 그냥 ○○톡을 끝내고 외출 준비를 했다.   어린이날 손자들을 데리고 아들 내외가 왔을 때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고 얘기를 하며 ○○톡을 보여주었다. 아들은 이런 사건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가끔 있었던 일이라고 말하며 낯선 메시지는 무시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SNS에 프로필을 노출하다가 보니, 편리함도 있지만,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없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과도한 사생활이나 개인정보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SNS가 편리하고 관계를 통해 존재의 힘을 과시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1-05-21
  • 과학도를 꿈꾸며 2021년 대학 생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시니어투데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팬데믹(pandemic)으로 온 세상이 힘들었던 2020년이 저물어가던 즈음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대학에 지원한 외손자의 합격 소식이었다. 과학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외손자가 희망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기에 무척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외손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유난히 과학을 좋아했고, 학교 대표로 출품한 각종 과학 관련 대회에서 자주 입상하여 학교에서도 주목받는 아이였다. 명절 때 외가인 우리 집에 오면 과학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수준이 높아 공대를 나온 나도 대답하는 데 쩔쩔매기가 일쑤였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을 했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 외에는 아는 것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고 사양했다.   한번은 가족 모두가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큰일이 벌어졌던 일도 있었다. 외손자가 중학생 때였는데 엄마, 아빠가 모두 외출하고 없는 시간에 혼자서 주방 식탁 한쪽에 실험도구를 차려놓고 화학실험을 하다가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외손자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 얘가 입원해 있다는 화상 전문병원에 가보니 얼굴과 손이 온통 붕대로 감겨있어 눈앞이 캄캄했었다. 다행히 몇 달 후 무사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여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얘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종이로 만든 우주선을 건네고 갔다. 어느 날 책장에 올려놓은 그 종이 우주선을 보고 소망을 담아 적어 본 시다.   종이 우주선   책장 위에서 발사대기 중인 U-3069호 종이 우주선 언제 창공으로 솟아오를까?   우주과학자가 되겠다는 꽃 같은 우리 외손자 놀러 와 만든 꿈을 기도 속에 키워주었다.   주방 한쪽 너의 작은 실험실에서 들린 폭발음은 먼 훗날 네 종이 우주선이 날아오를 전주곡이었을까.   온통 붕대밖에 보이지 않던 그날 병실에서는 가슴이 내려앉았었는데   이제는 그 꿈 펼칠 나날 그리며 쉼 없이 달려가는 네 모습이 할아버지 마음에서 행복하게 솟아오르고 있구나.   나는 과학도로서 대학 생활을 하게 될 출발을 앞둔 외손자와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될 많은 젊은이에게 축복과 함께 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과학자는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할까.   과학 연구에 대한 과학자의 태도는 인류의 삶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교통기관의 발전에 이바지함으로써 인간의 활동 범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질병과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는 신비로운 힘이 되었다. 이제 인공지능, 로봇 등의 발전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과학자들이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인류에 대해 남다르게 따뜻한 감성을 지녀야 한다. 겸손한 마음과 뛰어난 공감력 및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룬 성과이고 이루어갈 미래인데 왜 그래야 하는가?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부모와 두뇌 및 신체적 조건 그리고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한 개인은 자신과 인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수한 자질을 지닌 것과 그에 따른 노력으로 얻은 결과는 그 개인의 영광임과 동시에 인류의 공적 자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개인의 삶은 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연구하는 분야의 수많은 선행연구자의 연구 성과와 그를 가르쳐준 많은 스승 그리고 국가적 지원 등 주변의 다양한 도움도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과학자들은 남다른 시대적 사명을 지녀야 하고, 그만큼 보람도 크다고 본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에 따른 사명감과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남다른 자질을 지닌 사람은 그만큼 영광도 크기에 그에 따른 사명감을 보람으로 여기는 넓은 마음과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뜨거운 열정과 큰 노력으로 이루어낸 대학 입시 결과로 과학도로 출발할 시점을 앞둔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자신의 발전을 통해 인류의 행복에도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1-01-11
  • 차량용 빗물받이 교체, 직접 해결하다
    [시니어투데이] 언제부터인가 내 차의 조수석 뒤쪽 좌석 창문 위에 달려있던 빗물받이가 한쪽이 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했지만, 중요한 부품도 아니어서 그대로 타고 다닌 지가 1년이 넘은 것 같다. 그러다가 얼마 전 좁은 길을 지나는데 물건을 내리려고 주차하고 있던 화물차 기사가 갑자기 뒷문을 열어젖히는 바람에 내 차의 조수석 백미러가 떨어져 나갔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내는 놀라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내려서 보니 앞바퀴 윗부분과 그쪽 문에도 흠집이 생겨있었다. 물론, 화물차 기사가 100% 자신의 과실이라고 인정하여 그쪽 보험사의 부담으로 수리를 다 마쳤다.   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에 보니 조수석 창문에 부착되어있던 빗물받이도 일부가 깨져 있는 것이었다. 그때 사고로 깨진 것이 확실하지만, 뒤늦게 청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를 알고 나니 눈에 거슬려 과감하게 새것으로 교환하기로 했다.   집 부근의 카센터에 가서 교환을 부탁했더니 일을 맡지 않으려 했다. 차량용 부품점에 가면 부품을 살 수 있으니 거기에서 사서 붙이라는 것이었다. 수리비를 많이 받을 수도 없는 하찮은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카센터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차량용 부품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순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차량용 빗물받이를 검색하니 차종별로 많은 제품이 올라와 있었다. 거기에서 내 차에 알맞은 빗물받이를 선택하여 주문했더니 며칠 후 물품이 도착했다.   택배로 도착한 빗물받이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파손된 것을 떼어내기만 하면 나도 쉽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조각이 떨어져 나가도 일부는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수리를 의뢰하러 카센터로 갈까 하다가 좀 더 해 보기로 하고,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글로브 박스(glove box)에 넣어두었던 드라이버를 몇 년 만에 꺼내 들었다. 오늘따라 기온도 낮았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힘을 내서 드라이버를 틈새로 끼워 넣는 등 한참 동안을 씨름해서 겨우 모두 떼어낼 수 있었다.         새로 산 빗물받이에는 양면 접착테이프가 붙어있었고, 그 표면에서 보호용으로 부착된 종이를 떼어낸 다음 적당한 위치에 단단히 붙였다. 이렇게 하면 될 것을 그동안 깨어진 빗물받이를 달고 다녔던 것이 안타까웠다.   요즘은 차량용 이외에도 소비자가 손쉽게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용품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불편함을 처리하고 발전적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용기와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시니어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보다 체력과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시니어들에게는 일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가 있지 않은가.   장비를 쓰는 것이나 조작과 사용이 편리하게 만들어진 용품들이라면 이를 하는 데에서는 힘보다는 지혜가 더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니어의 강점이고 더욱더 힘차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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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속 네팔 여행을 보며 느낀 소회
    나는 TV에서도 여행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안방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묘미도 상당하다. 오늘은 네팔 다르방에서 다울라기리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반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등반에는 8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 코스의 중간 중간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험한 산비탈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다락 논이며, 해맑은 어린이들의 모습, 부지런히 농사일을 돕는 여인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 지난 날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등반 대원 한 사람도 이런 네팔 인들을 보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떤 여인이 대바구니를 등에 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태어난 지 2개월 정도 된 쌍둥이 아기가 있었다. 그 귀여운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인간의 존재적 가치가 지닌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나와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그들과 비교하자면 우리는 엄청난 풍요를 누리고 있다. 세계 229개 나라에서 경제는 11위고, 소비는 7위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100 위 정도라고 하니 물질적 여유와 행복은 비례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고층 빌딩, 화려한 시설의 아파트, 고성능 자동차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행복에서 바닥을 헤매는 이유는 뭘까? 경제에 따른 의식의 성장이 보조를 맞추지 못한 까닭이다. 요즘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이런 문제에 대한 반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런 관심이 일시적인 바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부에만 집중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기술 발달에만 몰두했고 통섭이라는 미명아래 진화론적 사고로 자연과학에 인문학을 종속시키려는 우매한 발상에 매달렸다.   요즘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범죄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어느 시절에나 강력범죄들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우리의 삶의 자세를 반영하는 것같이 매우 안타깝고 몹시 불편한 마음을 지울 길 없다.   우리에게 인문학을 강의하시는 박요섭 교수님은 시니어들이 삶의 경험과 지혜에서 우러나는 지혜로 국민적 의식을 아름답게 바꾸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고 줄기차게 강조한다. 어찌 이것이 박요섭 교수님만의 바람이고 주장이겠는가.   우리 역시 이런 마음이 간절하니 이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시니어들이여, 봄의 기운처럼 따뜻하게 세상을 품어 사람들의 마음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게 하자. 그래서 얼음처럼 차가왔던 세상에서 찬바람을 걷어내고 생명을 일깨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보자.   취재위원 강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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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12
  • 행복으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행복으로 가는 아름다운 길”이라는 주제의 강의안을 받으면서 오늘도 행복한 시간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황홀감을 느끼게 하는가?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지고 싶을 테니까 말이다.   교수님은 “도덕적 미와 즐거움이 살아 숨 쉬는 고상한 오락”을 누려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이야기 가운데 탁구에 대해 언급하셨다. 탁구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서로가 기쁨을 누리듯이 의사소통에서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원활하게 주고받아야 행복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복지관에 오면서 제일 먼저 탁구실에 갔었다. 많은 사람이 앉아있다. 여덟 개의 탁구대가 있었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중학교 때 친구들과 시골집 마루에서 장난으로 흉내를 내 본 것 외에는 별다른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무조건 탁구실로 가서 교장 선생님이라고 하시는 어르신에게 신입생 교육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한 탁구는 할 줄 모르기도 하거니와 파트너가 없으니 더욱 지루했다. 그러나 마냥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싫은 내색 없이 기꺼이 이런 내 부탁을 들어주다니 참 좋은 분들이다. 나하고 짝을 이룬 분들은 하나같이 공을 주우러 다니느라고 바쁘게 된다. 어느 때는 공을 너무 멀리 넘기고, 또 어느 때는 너무 짧게 주어서 네트를 넘어가지도 못했다. 이렇다 보니 나와 함께 짝이 된 분들은 제대로 즐기기가 어렵다. 그런데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수고를 감내하면서도 기꺼이 짝이 되어 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다.   그렇게 시작하여 두 달이 된 지금은 마치 훈련소를 수료한 이등병처럼 제법 여러 사람과 짝을 이루어 탁구를 하고 있다.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분이 계신다. 그분은 아주 찰 치는 분이시다. 잘하는 사람과 짝을 이루어 즐기고 싶을 텐데도, 내가 짝이 되어 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부탁을 들어주신다.   내가 배우고 싶은 기술에 관해 이야기하면 그것을 가르쳐 주신다. 왕초보를 가르치려니, 수십 번씩 공을 주우러 다니신다. 그러나 싫은 내색이나 불편함은 고사하고 오히려 칭찬하고 응원까지 아끼지 않으신다. 20여 분을 이렇게 지도하면 한 시간 이상을 뛰는 만큼의 체력이 소진된다.   이런 배려의 덕택으로 내 탁구 실력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나의 조그만 진보에도 큰 보람을 느끼시며 행복해하시는 그분의 모습에서 바로 “도덕적 미와 즐거움이 살아 숨 쉬는 고상한 오락”이 배어난다. 이런 배려로 아름다움을 창출하시는 분이 바로 김상태 어르신이시다.   공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이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그분 얼굴에 나타난다. 잘하고 못하는 것을 떠나 함께 즐거워하며 행복한 소통을 창출해내시는 고마우신 분이다. 이런 경험 속에서 오늘 강의에서 나온 “도덕적 미와 즐거움이 살아 숨 쉬는 고상한 오락”이 라는 문구를 발견하는 순간, 거대한 파도처럼 공감이 밀려왔다. 큰 울림과 기쁨이 온통 나를 행복하게 했다.   “‘함께’라는 것은 곧 배려요. 베풂이고 존중이다. 이것이 신뢰요. 믿음이다. 평화와 안정의 샘터이다”라는 교수님의 강의는 세상의 모든 악한 것들을 몰아내는 신비한 힘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인생의 저녁노을이라고 힘없이 주저앉아 넋두리나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에게 불끈불끈 힘이 솟아나도록 용기를 주신다.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다. 취재위원 유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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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16-09-12
  • 인내해야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울 수 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인내가 어디 쉬운 일인가. 쉽다면 인내를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에 신경을 쓴다.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중독에 빠질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어떤 사람은 홈쇼핑에 빠져 빚더미 위에 앉은 사람도 있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가정이 파탄된 것을 보기도 한다.   세상에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인내를 요구한다. 당장 우리 인문학 강의를 듣는 것도 인내가 필요하다. 매주 적지 않은 분량의 인문학적 지식을 소화해야 한다. 한 번 결석하면 두 번 결석은 쉬워진다. 핑계 없는 무덤이 있으랴만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나오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일으키는 사건 사고들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심지어 살인에 까지도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인내하지 못하는 탓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성미가 급한 편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내력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불쌍한 사람이다”고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3초만 기다리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옛말에 ‘참을 인(忍)’ 자를 세 번만 쓰면 살인도 피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월터 미셸(W. Mischel)은 1966년 네 살짜리 653명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하나씩을 주면서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두 개를 주겠다고 실험을 했다. 절반의 아이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를 먹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81년 그 아이들의 삶의 현상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5분을 참아서 한 개를 더 받아먹었던 아이들이 성적이며 삶의 전반에서 훨씬 더 뛰어났다는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했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안고 살았지만 인내했던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는가. 인내는 사유하는 이성적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고 고차원적인 실천 의지다. 이것이 부족하면 보통의 삶이 아니라, 저급한 삶으로 빨려든다는 것이 문제다.   모든 좋은 것은 인내를 통해 주어진다. 물이 끓게 하는 것도 100℃가 될 때까지 인내하고 열을 가해야 가능해진다. “하늘은 언제나 기다릴 줄 아는 자에게 모든 것을 준다”는 말이 있다.   인내는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덕을 쌓고 오늘을 견뎌 밝은 내일을 창출하리라는 기대감을 지닌 사람이라야 인내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왜 참지 못하는가?   인내의 밑거름이 되는 고난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내를 배울 기회가 부족했다. 오히려 조급함을 배우기에 급급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농부는 때를 기다린다. 곡식을 심기 위해 봄비를 기다린다. 결실을 위해 여름비를 기다린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린 끝에 수학을 맛본다. 그것이 기다림의 기쁨 아닌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기다릴 수 없다. 다린다는 것은 자신을 이기는 작업이다. 자아를 깨뜨려야 인내를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을 바라보며 부족함을 발견하고 채워나가는 지능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끊임없이 부족함을 채울 줄 아는 사람이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이다. 사무엘 스마일스는 《자조론》에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에델바이스는 고산지대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폭설과 강풍을 견뎌냈기에 신비로운 색을 낸다고 한다. 힘든 시간이라도 희망을 품고 잘 견뎌낼 때 마침내 아름다운 시간이 열린다. 취재위원 유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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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12
  • 행복한 결실을 가꾸어내는 인생
    벌써 초여름이 되어 산과 들은 녹음이 무성하고 온통 꽃들로 가득하다. 뻐꾸기 울음소리가 아련하게 잦아드는 들판에는 모내기도 마무리되어간다. 밭에는 온갖 채소들이 경쟁하듯 자라난다. 농부들이 땀 흘려 곡식을 심고 가꾸는 것은 아름다운 열매를 바라보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갑지 않은 불청객 소리 없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심지도 않은 잡초들이 자신의 두꺼운 낯을 뽐내듯 먼저 고개를 들고 나타난다. 잡초도 농부를 힘들어 하는 것이다. 한 해 농사에서 농부들을 잡초제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이렇게 잡초와 힘겨루기를 하며 봄, 여름을 지내야 추수의 계절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게 된다. 비바람, 폭염, 잡초와의 경쟁에서 굳세게 이겨낸 농작물의 알알이 맺힌 열매들을 볼 때 농부들의 얼굴에서는 행복이 피어난다.   열매를 얻기 위해 온갖 고난도 힘들다 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이다. 기쁨은 땀을 흘린 만큼의 값진 보상이다.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깨끗한 밭이 있고 지저분한 밭이 있다. 긍정적이면서 사랑과 겸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부정적인 사람의 마음에는 미움, 증오, 원망, 불평, 시기, 질투, 교만, 이기심, 낙심 등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마음 밭에도 잡초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 밭도 조금이라도 가꾸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해진다. 스스로가 창피할 정도이다.   언제 누가 이렇게 많은 잡초를 심었을까? 다른 누가 아니라, 나 스스로 심은 것이다. 어릴 때의 쓴 뿌리가 아직 남아서일까.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보이는데 아무리 뽑으려고 해도 뽑히지 않는 것도 있다. 수없이 많은 것을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내면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 속에 있는 잡초 때문에 스스로 지쳐 낙심할 때가 있다. 욕심을 버렸는가 하면 미움이라는 잡초가 다시 고개를 쳐든다. 원망과 불평의 잡초를 뽑았는가 하면 교만이라는 잡초가 어느새 올라온다. 낙심이라는 잡초가 한쪽 구석에서 나와 자신감을 잃게 하기도 한다. 한꺼번에 몽땅 뽑아버리고 싶다. 기도하고, 책도 읽고, 강의를 듣기도 하며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보지만 잡초는 항상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   “깊이 있는 성찰, 나를 찾는 여행이 행복이다. 80세에의 깨달음은 20세에도 알고 있던 내용이다. 다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늘었을 뿐이다.” 이 말은 지금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말이다. 침묵으로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자. 지금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가. 조용한 여행인가. 시끄러운 여행인가. 남의 눈의 티를 보기 전에 먼저 내 눈의 들보를 빼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내 마음 밭에 올라오는 잡초를 먼저 뽑고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우선할 일이다.   내 마음의 밭을 드려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고 미워하며 증오하기도 한다. 이런 삶은 결국에는 잡초만이 무성한 황무지로 변화고 말 것이다. 삶이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이다. 기쁜 여정도 있고 힘든 여정도 있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여행을 하고 살았느냐에 따라 생각도 삶도 달라질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한다. 날마다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달아 배려와 양보와 협동심을 가지고 잡초를 뽑아야 한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자란다. 얼마 동안이 지나면 제2의 삶을 살기 위해 죽어야 한다. 누에는 자기 입에서 실을 뽑아낸다. 뽑아낸 실로 집을 만들면서 그 집에서 죽어간다. 얼마 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구멍을 뚫고 나방이 되어 나온다. 세상을 훨훨 날아다닌다. 누에 고추는 실을 뽑아내어 아름다운 명품 옷감을 만든다. 인내와 변화를 통해 만들어낸 아름다운 열매이다.   내 안에 잡초가 있다면 누군가가 뽑아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뽑아내면 될 것이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뽑아내면 될 것이다. 인내는 모든 고통의 치료 약이다. 승리는 인내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러기에 내가 변하면 다 변할 것이다. 마음은 삶을 길러내는 텃밭이다. 우리 마음 밭에 사랑과 희망, 즐거움과 긍정의 씨를 뿌리자. 감사를 심고 기쁨으로 가꾸어보자.   내·외적인 고통의 잡초가 솟아나도 낙심하지 말자. 또다시 뽑아버리고 옥토를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노력하는 만큼 옥토에서 황금물결이 만들어진다.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잡초를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속속 사랑의 열매, 기쁨의 열매, 행복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이런 결실의 때를 기다리며 오늘도 노력하며 함박웃음을 웃어보자. 거둔 열매로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고 즐기는 행복의 꿈을 그려보자. 취재위원 유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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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12
  • 아카시아 꽃이 주는 선물
    봄이 오면 산수유로부터 시작하여 서로 앞다툼을 하면서 갖가지의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많은 꽃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런데 일부러 꽃구경을 가지 않아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있다. 산에도 많고 길에도 많다. 오월이면 항상 아름답게 피는 하얀 아카시아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다. 아카시아는 곧게 뻗지도 않았다. 아름드리나무도 아니다. 나무 자체는 굵지도 않고 곧지도 않아 특별히 어디에 쓰이지 않는다. 이산 저산에 흔하게 나 있는 볼품없는 나무이다.   아카시아는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옆으로 가는 가지들이 마음대로 뻗어 나간다. 태풍이 불면 쉽게 쓰러지고 꺾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꺾이고 갈라진 밑동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온다. 여기저기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생명력이 아주 강한 나무이다. 생명력이 강한 아카시아는 꽃과 향으로 채워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어려서 친구들과 놀다가 아카시아 꽃을 따서 먹기도 했다. 달콤하면서도 향기가 짙은 이 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다. 겉으로 보기에 호감이 가는 나무가 아닌데도 그 나무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하얀 색깔의 이 꽃은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보아도 아름답다. 아름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멀리까지 뿜어 나오는 꽃의 향기는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그뿐 아니라 벌들을 유혹한다.   아카시아의 생존력을 통해 희망을 보게 된다.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 강한 생명력과 생존력으로 잘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워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 그래서 향기를 맡은 많은 벌이 찾아오는가 보다. 몰려온 벌들은 꽃에서 진액을 뽑아낸다. 뽑아낸 이 진액을 잘 간직했다가 쏟아내는 달콤하고 맛있는 꿀을 만들어낸다.   아카시아 꽃의 꿀은 많은 사람에게 보급된다. 사람들에게 건강을 선물한다. 사람들은 이 꿀을 먹고 원기를 찾는다.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어떤 사람은 아카시아 꽃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아무런 자본도 들지 않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 벌통을 가져다 놓고 기다리면 벌들이 알아서 꿀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에게 갖가지의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카시아 꽃이다.   향이 아름다운 아카시아와 부지런한 벌이 만나 좋은 꿀을 만들어내듯 생각이 다른 사람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먹다버린 알루미늄 캔을 가지고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굴러다니는 쇳조각으로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좋은 것을 쓸 줄 몰라 쓰레기처럼 버리는 사람도 있다. “마음은 생각의 텃밭이다. 생각에 따라 생각에 싹이 튼다”라고 말한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싹이 트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개미 같은 사람들이 있어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최고로 좋은 것만 가지고 우월감에 살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은 잘 살지 모르지만, 주변을 살피는 일이나 배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거미 같은 사람들이 있다. 거미는 거미줄을 쳐 놓고 다른 벌레들이 거미줄에 걸리면 잡아먹는다. 거미 같은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사방으로 줄을 쳐놓고 그 줄에 걸려들면 아랑곳없이 빨아먹는 사기꾼들이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가족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얼마나 무서운 사회로 변했는지 마음 놓고 살아가기가 무서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꿀벌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디든지 찾아가서 열심히 일거리를 찾는다. 일한 만큼 얻은 것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돕는다. 어느 때는 갖은 욕을 먹으며 손해를 보아가면서도 돕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흔히 천사와 같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것일까? 아카시아 꽃과 벌이 만나 아름다운 꿀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듯 우리 모두 아카시아 꽃과 같이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고 꿀벌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나누며 아름다움을 남겼으면 좋겠다.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기를 원해서일까? 벌 같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행동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아는 것을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의지를 행동에 옮겨야 한다”라고 괴테는 말했다. 그렇다. 누구나 생각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개인의 생산성 피라미드를 가지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발견했다면 계획을 세우고 세운 계획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조금만 옆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행복은 받을 때도 행복하지만, 줄 때가 더 행복하다. 생각만이 아닌 실천으로 옮기는 삶,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눔을 통해 몸과 영혼이 살찌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아카시아가 꽃을 피워 맛좋은 꿀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런 점을 본받아야 한다.   비록 특별한 주목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아카시아 꽃처럼 실천적인 삶으로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취재위원 유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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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12
  • 버려야 행복해진다
    몇 달 전 이사를 했다. 작은 집으로 옮기면서 짐을 챙기다 보니 쓰지 않고 쌓아놓은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왜 그렇게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새것이라서, 아까워서, 좋은 것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쌓아 놓았던 것이다. 아까워도 쓰지 않는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짐을 줄여 이사했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온갖 물건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광경이 화면에 들어왔다. “어머나!” 나도 모르게 비명이 나왔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건들은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악취와 벌레들로 가득한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모두 치우라고 해도 치우지 않고 무조건 쌓아 놓는다고 한다. 어렵사리 설득한 끝에 동사무소 직원들과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말끔하게 단장을 마쳤다.   같은 집인데도 더러운 것을 치우고 좋은 것으로 채우니 완전히 다른 집이 되었다. 그토록 치우지 못하게 한 본인도 깨끗해서 좋다고 한다. 보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모두가 좋아했다. 이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은 첫째가 옷장이고 두 번째가 주방이라고 한다. 해마다 사놓은 옷을 입지도 않고 쌓아 놓는다. 새로 사 온 그릇 역시 쓰지도 않고 쌓아놓는다는 것이다. 입지 않는 옷과 그릇을 과감하게 버려야 옷장과 주방을 깨끗하게 쓸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물리적으로도 깨끗이 해야겠다는 생각 속에 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집안에만 쓰레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기와 질투. 욕심과 탐욕. 미움과 증오. 분노와 혈기. 거짓과 속임수로 가득하여 사람에게서 나는 썩은 냄새는 분쟁과 다툼으로 나타나게 된다.   마음의 쓰레기는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도 반목과 갈등을 초래하고 만다. 사람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하여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노년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아집을 버리지 못한 체 집착과 옹고집으로 상대방과 담을 쌓아놓고 갈등 속에서 사는 것을 보게 된다.   물건으로부터 나는 악취는 내 집안에만 있지만, 마음에 쌓인 쓰레기는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도덕도, 윤리도 없고 법도 떠나 버린 채 도저히 이해나 배려, 용서나 사랑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얼마나 인간의 마음속이 더러운지 모르겠다. 보이는 쓰레기는 다른 사람도 치울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쓰레기는 본인이 치워야 한다. 자신이 치우지 않으면 치울 수가 없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시기와 질투는 설익은 사과를 먹는 것과 같아 오로지 당신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이런 더러운 쓰레기로 차 있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집 안에 있는 냄새나는 더러운 물건들은 밖에다 내버리면 된다. 그리고 버린 그곳에 아름다운 가구나 멋진 물건을 채우면 아름다운 집으로 바뀐다. 그리고 사람의 육체나 물건들은 비누로 씻으면 된다. 하지만 사람의 더러운 마음은 무엇으로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성찰적 실천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선’을 행복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에는 덕이 필요하며, 지성적인 덕과 품성적인 덕이 있다고 했다. 지성적인 덕에는 이해력과 실천적인 지혜가 있으며, 품성적인 덕에는 용기와 절제가 있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성찰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옳은 것을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이성을 습관화함으로써 덕을 꾸준히 실천할 때 행복해질 수 있다. 나부터 마음에 있는 더러운 것을 버려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시기, 질투. 탐욕, 미움, 증오, 분노, 혈기, 오만함, 거짓 같은 모든 추함을 버리면 이 사회에 악취는 없어질 것이다. ‘내’가 먼저 버리면 ‘너’도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나도, 이웃, 사회도 살 것이다.   요즘 내가 배우고 있는 인문학 강좌에서 오늘은 행복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행복은 자신과 만나는 방법이다”는 강의에서 쇼펜하우어가 “행복은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내 안에 있는 쓰레기를 버리고 사랑과 감사로 채우면 우리는 그만큼 행복해질 것이다.   나부터 시작하자. 버릴 것은 빨리 버리자. 아낌없이 버리자. 그리고 용서와 사랑과 감사로 채워보자. 그렇게 할 때 ‘나’와 ‘너’ 즉, 우리가 모두 행복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취재위원 유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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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12
  • 나잇값을 하며 살자
    어떤 사람이 볶은 깨를 나물에 묻혀 먹으니 참으로 고소하고 맛이 있었다. “야! 정말 고소하고 맛있구나”라고 말하다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볶은 깨를 심으면 굳이 볶지 않아도 고소한 깨가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 봄에 그는 볶은 깨를 정성껏 밭에 뿌리고 싹이 나도록 기다렸다. 이것이 싹이 나올 리가 있겠는가? 그러니 완전히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노파가 실, 단추, 구두끈을 팔려고 시골 마을로 내려갔다. 그런데 그 노파는 표지판이 없는 갈림길에 서게 되면 공중으로 막대기를 던져서 그 막대기가 가리키는 길로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노파는 갈림길에 서서 어떤 길로 가야 할지를 알기 위해 계속 반복해서 막대기를 공중에 던지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노파에게 물었다. “왜 당신은 그렇게 막대기를 여러 번 던집니까?”   그 노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막대기가 지금까지 계속 오른쪽으로 가는 길만 가리키잖아요. 그렇지만 나는 왼쪽으로 가고 싶거든요.” 그 노파는 가고 싶어 하는 길을 막대기가 가리킬 때까지 계속해서 던졌다.   볶은 깨를 밭에 심는 농부나 가고 싶은 길을 막대기를 던져서 가리킬 때까지 던지는 사람이나 누가 이 사람들을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들으면 누구나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바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멀쩡하게 사는 것 같은 우리도 이런 어리석은 행위나 사고를 하지 않는지 잘 점검해보아야 할 일이다.   어떤 나무가 자라지 않고 서서히 시들고 있다면 분명히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성숙해지지 못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사람이 왜 다른 생물과 다른가? 사람의 특성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행동이 옳지 못한 사람을 향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을 살피며 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성숙한 삶이다. 삶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더불어 산다. 욕심을 내려놓고 온유와 인내로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은 생각의 텃밭이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것만 나누며 좋은 씨앗을 심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구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더욱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은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다.   우수한 나라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언어와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사회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했다. 나이답지 못하게 행동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 아닌가? 옛날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 매우 넉넉해졌다. 그러나 그만큼 악한 것들도 늘어난 것 같아 가슴이 너무 아프다.   인디언들의 이야기 가운데 검은 독수리의 이야기가 있다. 검은 독수리 새끼 한 마리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곰 새끼들 틈에 넣어두었다. 독수리 새끼는 곰처럼 날지도 못하고 매일 흙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검은 독수리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그때 옆에 있던 곰이 말했다. “너는 꿈도 꾸지 마. 넌 저런 멋있는 새가 될 수 없어.” 이 말에 검은 독수리는 자신이 하늘을 날아볼 생각도 못 하고 들 곰처럼 살다가 죽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을 움직인다. 나의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 살아갈 존재 이유를 확신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마치 곰처럼 살다 죽은 검은 독수리와 같다. 높이 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도 날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과 낙심 속에 절망하고 만다.   나잇값을 하며 살아야 한다. 열 살은 열 살답게 살아야 한다. 서른 살은 서른 살답게 살아야 한다. 모두가 마찬가지다. 칠팔십이 되어도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산다면 젊은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나이답게 지적으로나 실천적으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 손수건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의 삶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삶, 배려와 관용의 삶은 너무나 아름답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함부로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차분히 읽는다. 왜냐하면, 한 번밖에 그것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은 말했다.   내가 쓴 인생의 책은 우선은 내가 읽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읽게 된다. 누군가 나의 삶을 읽어갈 때 잘 살았다고 박수를 보낼만하다면 그는 삶을 잘 살았다고 해도 될 것이다. 생각된다. 누구나가 인생에서 비슷한 희로애락을 겪게 된다. 그 희로애락을 통해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복된 삶이다.   사람은 올바른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악이다. 일본과 독일이 똑같이 식민 지배를 통해 많은 잘못을 했지만, 두 나라의 태도는 많이 다르다. 일본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고 한다. 반면 독일은 나치 정권이 잘못했지만, 나치 정권을 탄생시킨 것이 국민이라면서 모두가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본은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빌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용기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용기마저 빼앗는다고 했다. 인간은 양심에 의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양심에 가책이 없다면 화인 맞은 사람이다. 화인 맞은 양심은 감각이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까.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 때 많은 사람이 화를 입게 된다.   모든 사람은 선한 마음을 먹고 그것을 실천하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생활은 가진 것으로 꾸려가지만 삶은 베푸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많이 가진 다음에 베풀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끝내 베풀지 못할 것이다. 웃음을 주고 시간을 나누어주고 지금 가진 것으로 베풀기를 먼저 시작하면 더 많은 것이 채워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물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맑은 물이 고인다.   누구라도 건강, 지혜, 경험, 재물 이런 것들 가운데 하나는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 나에게는 무엇이 있는지 헤아려보자. 그리고 지금 있는 것으로 나누어보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다.   나이는 들었는데 행동은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 사람은 성인아이다. 나이에 걸맞은 성장이 필요하다. 잘못에 대해 용서도 빌 줄 알고 용서를 비는 사람을 용서할 줄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취재위원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9-12
  • ‘NO老(노노)’로 신명을 창출하는 시니어
       노인은 그저 사회복지의 수혜 대상자가 아니라 엄청난 지혜의 보물창고다.   초고령사회를 향해 가는 대한민국은 노령인구와 양극화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을 찾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700만 명 정도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자)가 살고 있다. ‘5575세대’(55세~75세)로 확대하면 1천만 명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초고령사회로 향해 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노령인구와 양극화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가운데 “고령화는 고령화로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김태유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김용무 단장과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 회원들(왼쪽에서부터 배영환, 이매자, 윤순희, 김용무)       따라서 이런 맥락에 부합하는 시니어들이 주목받게 된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비슷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토질과 기후에 따라 자생하는 식물이 다른 것처럼 사람도 자신이 선호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곳으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관장 황준호)에 유난히 열정이 넘치는 시니어들이 많은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활력이 넘치는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 여러 동아리 가운데 ‘노노 신나라 색소폰’도 왕성한 활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이 동아리 김용무 단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여러 역할을 소화해 낸다. 화성시 향남면 상두리에서 500여 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곳에서 사는 김 단장에게서는 긴 세월에서 이어진 연륜의 아우라(Aura)가 풍긴다.   ▲ '노노 신나라 색소폰' 동아리 김용무 단장       자신을 평범한 촌로라고 말하는 김 단장이지만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 운영위원, 광산 김씨 판교공파 부회장, 화성시 광복회 운영위원도 맡고 있다. 여전히 손수 적잖은 농사를 지으며 관계된 일은 물론, 이웃의 크고 작은 일에도 열과 성을 다한다.   김 단장의 이렇게 성실한 삶에는 맏형의 애국애족 정신이 어려 있다. 김 단장의 맏형이 바로 애국지사 김용창(1926-1945) 선생이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미처 그해 봄기운을 다 느껴보지도 못한 4월 3일 차디찬 감옥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였기에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독립은 보지 못했다. 김 단장은 맏형을 생각할 때마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말한다.    김 단장은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처우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지자체나 후손들이 묘지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것부터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후세대가 나라 위해 몸 받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온고지신(溫故知新)하도록 세밀한 지원과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에서 공로상을 받는 김용무 단장(오른쪽)과 황준호 관장       김 단장은 ‘NO老’를 외친다. 동아리 이름에도 ‘NO老’가 맨 앞에 붙는다. ‘늙은이’라는 말이 풍기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늙음’을 ‘낡음’처럼 인식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지다.   노인은 그저 사회복지의 수혜 대상자가 아니라 엄청난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고령화의 문제는 고령화로 풀어야 한다”는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며 누가 찾아주고 도와주기만 기다리지 말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자고 말한다.   김 단장을 만나고 돌아서 오는 길에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힘이 솟아났다. 이것은 그와의 만남에서 발생한 공감에서 창출되는 에너지였다.   취재위원 배영환  
    • 인물이야기
    2016-05-29
  • 아! 그리운 담임선생님
       5월에는 여러 행사가 많다. 그중에 스승의 날도 있다. 나는 해마다 이때가 되면 더욱더 고마운 선생님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곤 자주 찾아뵙지 못해 못내 죄송함과 아쉬움에 젖어들곤 한다. 그러나 올해는 늘 뵙고 싶었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이셨던 은사님을 찾아뵙게 되어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63년 전인 1953년(7월 27일)은 치열했던 6.25 전쟁이 휴전을 결정한 때였다. 그때 열 살이었던 나는 군산시 산북동에 있는 문창초등학교 5학년 2반 학생이었다. 지금이야 좋아졌지만, 그때 내가 살던 마을은 군산 시내에서 12㎞나 떨어진 시골이었다. 그해 우리 반 담임은 고석균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아주 미남이고 의욕이 넘치는 멋진 분이셨다. 전쟁 중에 군에서 제대하고 첫 부임지로 우리 학교에 오셨던지라, 군인다운 패기와 기상이 우리를 압도했다.   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을 맡아 우리를 매우 엄하게 공부시켰다. 같은 학년에 남자 두 반, 여자 한 반이 있었는데 늘 우리 반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다.   ▲ 1953년 문창초등학교 5학년 2반       그때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부족했었다. 교과서, 학용품, 책상, 걸상도 매우 부족해서 2인용 책상에 세 명이 앉기도 했다. 교과서도 선배들에게서 물려받은 사람은 갖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옆 사람과 같이 보아야 했다. 수업하다가도 문제가 있다 싶으면 자주 운동장 나무 밑 방공호에 대피하곤 했다.   여름에는 퇴비로 쓸 풀이나 보릿대를 짊어지고 학교까지 먼 길을 걸어서 갔다. 때로는 자식이 힘들게 지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아버지께서 지게로 져다가 주고 가기도 하셨다.   일본인들이 고등학교로 사용하다 해방이 되어 물러간 자리에 생긴 우리 학교는 학교 실습지로 논과 밭이 매우 많았다. 우리는 4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하는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때 창고에 가면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농기구가 많았고, 야구방망이, 검도 할 때 쓰는 장비도 눈에 띄곤 했다.   나는 5학년 담임선생님을 제대로 만난 덕분에 성적이 많이 올랐다. 그래서 성적이 매우 향상된 학생에게 주는 ‘진보상’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이 얼마나 기뻤던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는 적정 나이에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보다 공부를 잘했던 영철, 태경, 창현 등 몇몇은 내 나이보다 두 살에서 많게는 네 살이나 위였던 것이다.   그때 우리 반은 남자만 45명이었다. 모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셨다. 5학년 때부터 국어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되어 선생님께서는 칠판 모퉁이에 매일 10개 정도의 한자를 써 놓으셨다. 이것을 쓰고 읽을 줄 알아야 집에 보내주셨다.   나는 쉬는 시간에도 책을 찾아서 열심히 한자를 익혔다. 이런 노력으로 한자에서는 내가 최고였다. 내가 한자를 잘하니까 어느 날 선생님께서 서당에 다녔냐고 하실 정도였다.   지금도 이것이 바탕이 되어 한자에서는 남다른 실력을 나타내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선생님의 가르침 덕택에 나는 한자뿐만 아니라, 공부에 대한 필요성과 인내심을 배우게 되었다. 이때의 일들은 일평생 내 학습능력의 바탕이 되었고, 교육자의 길을 걷는 데에도 큰 힘이 되었다.   ▲ 1954년 문창초등학교 6학년 2반       선생님께서는 6학년 때에도 그대로 우리 반 담임을 맡으셨다. 이것은 내 학습과 학교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유급하거나 전학 간 몇 명을 제외하고 우리 반 40여 명은 2년간 정든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께서 여름에는 중학교 진학 희망자만 모아 늦게까지 공부시키고 교실에서 자도록 잠자리를 마련해주셨다. 겨울에는 선생님 집에다 20여 명을 모아놓고 밤늦게까지 공부시키셨다. 모두 선생님의 패기와 열정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선생님 집에서 공부할 때 아버지께서는 너무 어린 아들이 먼 밤길을 혼자 와야 했기에 늘 그곳까지 오셔서 기다리다 집으로 데려가곤 하셨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더욱더 그 시절의 기억이 또렷해지고 감사한 마음에 눈에 맺힌 눈물이 가슴 속으로 흘러내린다.   이런 선생님의 도움으로 우리 반 친구들은 여러 명이 군산에 있는 중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고, 나도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모두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 덕택이었다.   그때의 가르침이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으니, 그 은혜가 한없이 고맙다. 나도 교사가 된 후 1964년 인천 용유도에서 6학년을 가르치면서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나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에서 근무하면서도 선생님을 잊을 수 없었다. 수원에서 교감으로 근무할 때, 선생님의 소식을 찾던 중 모교인 문창초등학교에서 경기도로 와 교감으로 근무하는 여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그분이 고석균 선생님께서 군산 어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이름을 개명하셨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이런 계기로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뵐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반가웠다. 선생님께서는 그 후 1년이 지나서 정년으로 퇴임하셨다. 한 번은 선생님께서 서울 아들 집에 가시는 길에 수원에 들르셨다. 이때 선생님과 사모님께 음식을 대접한 일도 있었다.   ▲ 고석균 선생님(오른쪽)과 즐거운 시간       그 후 나는 고향에 가는 길에 선생님 댁을 방문하였다. 사모님과 두 분이 마당에 사슴사육과 양봉을 하고 계셨다. 나도 2007년 정년퇴직을 하고 한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마침 올해 5월 2일 사범학교 동문회가 있어서 고향에 가는 길에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건강하신 선생님을 뵈오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선생님과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선생님께서는 그 후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이런 열정과 경험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셔서 좋은 성과를 많이 거두셨다고 말씀하셨다.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해 주어서 주위에서 부러워한다고도 말씀하셨다.   제자인 나도 선생님과 같은 열정을 본받아 44년의 교직 생활을 잘 마무리했고, 지금은 조그만 과수원을 하며, 한자와 관련된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여 강사활동과 한자 재능기부 봉사활동도 한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내외분은 건강하시고, 88세임에도 100여 개 벌통으로 양봉하시며 정정하게 사신다. 올해 스승의 날은 그리워하던 선생님을 찾아뵈었던 일로 어느 해보다도 흐뭇했다. 선생님의 그 귀한 가르침은 아직도 내 가슴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는 올해 스승의 날을 보내며 선생님의 귀한 가르침을 되새기고 선생님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취재위원 박창규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6-05-24
  • 작사 가운데 떠오른 생각들
    봄이 오면, 꽃들이 만발하는 것만 아니라, 각종 방송 매체들도 봄과 관련된 이야기와 노래들을 쏟아 낸다. 그 가운데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가곡 <봄이 오면>은 김동환 시인의 시에 김동진 선생이 곡을 지었다. <목련화>는 조영식 선생의 시에 김동진 선생이 작곡했다.   김동진 선생은 경희대학교 음대학장을 지냈고, 조영식 선생은 경희대학교의 설립자이며 총장을 지낸 분이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경희대학교와 관련 있는 이 두 노래는 나도 무척 좋아한다. 80대인 나는 요즘 인문학과 악기에 심취해 있다. 이런 인연으로 <새로운 인생 이모작>을 작사하고 작곡을 구상 중이다.     <새로운 인생 이모작>   늙은 노인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이모작이다. 물러남이 아니라 동행하는 아름다움이란다. 젊은 나무는 싱싱하게 미래를 꿈꾸지만 오랜 세월 산 나무는 쉼과 지혜의 터전이다. 늙은 노인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이모작이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이모작이다. 뒤처진 초라함이 아니라 연륜으로 빛나는 향연이다. 봄에 피는 꽃은 화려함과 생동감이 넘치지만 노년은 모두에게 물드는 여유와 풍요의 고운 단풍이다. 늙음은 낡음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이모작이다.   인위적 홀몸노인을 즐기는 나는 막걸리 한 병을 앞에 두고 연필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동행을 즐겼다. 취기가 오르니 부담도 사라지고 혼자 즐기는 최고의 잔치가 되었다. 혼자서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흥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해 노래인지 랩인지 알 수 없는 한참의 공연을 하며 최상의 시간을 보냈다.   작사를 바라보며 “‘너’는 어찌 나를 많이 닮았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이젠 네게 콩나물을 붙여주는 것이 남았는데, 겁이 덜컹 나는구나.” 갑자기 술이 확 깨고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 이제 악기 몇 가지 배우는 초보자가 무슨 작사고, 작곡이냐는 생각을 하니 황당하다 못해 현기증이 난다.     자유당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 다녔던 적이 있다. 그 회사에는 서울대학교 출신의 미스터 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게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는가 하면 대학 진학을 권유하며 용기를 주었던 사람이다. 그의 연주가 참 듣기 좋았고 그의 삶도 무척 부러웠었다. 그때의 기억을 추억하며 이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고 있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나의 인생을 사는 셈이다. 나는 이 곡이 비록 부족한 사람의 영감에서 탄생했을지라도 널리 불리며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모습을 상상한다. 시인 바이런은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을 했다.   나는 유명해지기보다는 음악과 인문학을 사랑하며 여유롭고 행복하게 인생 이모작 청춘으로 사는 멋진 시니어가 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의 삶, 즉 영혼이 잘되는 복된 삶이 아니겠는가.   취재위원 윤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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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1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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