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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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좋은 여유를 누린 짧은 여름 여행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휴가 계획으로 마음이 들뜬다. 휴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산이나 바다. 그리고 계곡에 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푹 쉬면서 지친 몸의 원기를 회복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떠나 누구라도 같은 마음은 함께 하고픈 사람들과 휴가를 즐기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시니어들이라고 이것이 다를 리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마침 지인을 만나 1박 2일로 경기도 포천으로 떠났다. 나이 든 사람이 바다나 계곡을 간다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여 허브 랜드로 향했다. 허브 랜드는 개장한 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부지가 매우 큰 곳이었고 허브와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젊은이들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갖가지 꽃과 허브로 만든 물품들이 가득하다.   어린이처럼 사고 싶은 것을 고르는 재미를 느끼다 보니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즐기다 보니 배가 고팠다. 허브로 만든 식사를 마치고 포천 아트밸리로 향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니 천문과학관이 있었다.   아트밸리 천문과학관은 다양한 과학체험 전시물과 별자리를 볼 수 있는 천체투영실이 있어 포천의 아름다운 별빛을 최첨단 망원경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올라가면 병풍처럼 둘린 50m 높이의 화강암 절벽이 있고 밑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호수가 있었다.     픽사베이     뜨거운 햇빛을 받은 파란 호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돌을 캐낸 이 자리에서 물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절벽과 함께 흐르는 호수는 마치 북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렇게 높은 산에 파란 호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시원하게 했고 그 옆에는 야외공연장까지 있었다.   50m의 화강암 절벽과 천주호 사이에 설치된 무대는 약 3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4월-10월 주말 및 휴일에는 화강암 절벽을 활용한 영화 상영과 소리 울림 현상을 이용한 독특한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이곳은 본래 채석장이었던 곳이었는데 폐쇄된 석산을 아트밸리로 조성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화강암 포천석은 다양한 건축자재 및 기념비나 비석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포천석은 화강섬록암으로 타지역의 화강암보다 밝아 매우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던 화강암 채석장이 폐쇄되어 애물단지가 되었다가 이제는 아트밸리로 부상하여 지역의 관광단지로 효자 노릇을 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치혁신이 아닌가. 자연이나 물건이 낡았다고 폐품이 아니다. 가치를 혁신하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은 사람도 다르지 않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 아니라, ‘Know 人’(인생을 제대로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냉소적이고 폐쇄적인 생각은 삶을 망칠 것이다. 이것은 뇌과학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긍정적 생각은 뇌를 활성화하고 면역력도 높여준다는 것이다.   애물단지였던 채석장이 한 사람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멋진 관광지로 변화한 것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숙소를 찾았다. 이곳저곳을 탐색한 결과, 값도 저렴하고 시설도 좋은 호텔로 정한 것이다.   개인별 차고가 있고 복도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무인 시스템으로 되어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얻은 결과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을 테지만, 스마트폰 하나면 얼마든지 이렇게 저렴하고 좋은 곳을 찾을 수가 있다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세상도 보는구나”라고 하면서 우리는 즐거워하였다.   다음 날 아침은 생식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평강랜드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 나무가 있고 꽃이 있는 산을 택했다. 넓고 큰 산에다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시설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동갈비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동갈비식당’을 찾아갔다.   어느 식당은 손님으로 가득하고, 어느 식당은 텅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손님이 적당히 있는 집을 택했다. 2인분을 시켜 둘이서 난생처음으로 이동갈비를 먹는 추억을 남겼다. 1박 2일로 짧은 시간이었으나 우리는 너무나 행복한 휴가를 보냈다.   이런 쉼과 여유를 평소엔 누리기가 어려울까? 정말로 바빠서일까? 아니면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일까? 잠시만 내려놓으면 된다. 이런 결단에서 삶의 여유와 행복이 피어나는 것이다. 굳이 해외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아름답고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렴한 비용으로도 즐길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다음에도 이런 추억을 남길 꿈을 꾸면서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8-20
  • 꿈 너머 꿈을 꾸자
    세상에서 어린 생명이 태어나는 날만큼 기쁘고 행복한 날도 없을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한 가정의 미래이기도 하거니와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이를 보면서 꿈나무들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 어린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정과 나라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꿈을 품고 사는 존재다. 꿈은 역경을 이겨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준다. 꿈은 낙망을 막아 준다. 원망하려는 마음도 차단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게 한다. 꿈은 위기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때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실패를 당하면 큰 좌절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면 바닥으로 떨어져 부딪힐 때 다시 튀어 오르는 공을 보라. 실패에서도 다시 튀어 오르게 하는 힘이 꿈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처럼 사람은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한다. 이런 사람은 탄력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상상하지 못했던 찬란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 한계를 깨고 나오는 것에서부터 아름다움은 시작된다. 찰리 채플린은 “절망은 마약이다. 절망은 생각을 무관심으로 잠재울 뿐이다”고 말했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꿈은 희망이고 생명력이다.           그래서 ‘희망을 희망하라’고 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자신감을 가지고 산다. 어떤 환경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막연하게 어떤 행운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노신은 《고향》이라는 소설에서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니면서 결국 생겨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횡재를 기대하지 않는다. 밀물을 기대하며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한다. 과거의 실패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바다로 나아간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너 루즈벨트는 “미래는 자신의 꿈이 멋지다고 믿는 사람들의 것이다”고 말했다.   내 안에 있는 절망감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꿈이다. 꿈은 허황한 것이 아니고, 막연한 것도 아니다. 이 꿈이라는 것이 자신의 바람을 성취하는 것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욕망 성취나 이기심의 달성을 꿈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꿈 너머 꿈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성취한 꿈으로 인해 주변도 행복해지고, 사회와 지구촌도 행복해지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꿈 너머 꿈이 아니겠는가.   언제, 어떤 여건에서도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러나 꿈 너머 꿈이 확산해 나가는 만큼 행복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행복은 유기적이다. 꿈도 마찬가지다. 꿈도 행복도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생각할 때 더욱더 크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결실하게 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7-03
  • 날마다 행복을 창출하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집 근처에 있는 야산에 올라갔다. 나무 그늘 속으로 발길을 옮기니 소나무 향기와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긴다. 얼마 만인가? 작년에 오고, 올해 처음으로 오르는 이 산에 있는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이며 들꽃들이 나를 반기는 것 같다. 각종 나무와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산은 지친 사람들에게 쉼과 평안을 준다.   1년 중에 벌써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한동안 아카시아 꽃과 밤나무 꽃들로 산을 하얗게 물들이더니, 벌써 한쪽에서는 열매가 맺히고 수확할 때가 된 것도 있다. 매실은 벌써 수확했고, 자두는 요즘 가장 맛이 좋을 때다. 머지않아 복숭아가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밭에서도 농작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마늘과 양파. 감자는 수확한 지 한참을 지났고, 참외나 수박은 한창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요즘은 마트에 가면 언제라도 수박이나 참외를 살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다. 하지만 제철에 맛볼 수 있는 과일들은 지금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걷다 보니, 빨간 열매들을 주렁주렁 매단 산딸기 덩굴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가시가 돋친 덩굴줄기에서 달린 산딸기는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운지 무더기로 모여 수풀 사이로 빨개진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다.         불현듯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소녀 감성이 되살아났다. 무작정 산딸기가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그중에서도 큰 것을 골라 따서 입안에 넣었다. 약간 새콤함 속에 달콤함이 배어 나오며 미각을 자극한다. 이어서 부드러운 과즙이 미처 제 자랑도 다 하기 전에 깨알만 한 씨앗이 딸기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산길을 오르느라 말랐던 목을 축여주며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되살려주니,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먹는 것에는 묘한 것이 숨어있다. 미각을 일깨우는 것과 함께 추억과 삶이 스며있다. 산딸기야말로 유독 더 그런 것 같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오른 산길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삶에서도 그런 것 같다. 소소한 것들이 쌓여서 우리의 인생이 된다. 작은 기쁨과 보람들이 순간들을 장식하여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된다. 이런 세월이 흘러 일 년이 되고, 수십 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오른 산길에서 발견한 산딸기가 준 행복이 상상 이상의 힘이 되어줬다. 어찌 보면 삶에서도 산딸기와 같은 소소한 보석들을 발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스쳐 지날만한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혁신하면 되는 것이다.   산딸기를 만난 행복감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산길을 오르니, 자연과 교감하게 되었다. 피톤치드를 비롯하여 온갖 향기가 배어 있는 밝은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 이런 기쁨에 젖어 드니 감사가 나오고 콧노래도 흘러나온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희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자신의 신앙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서, 이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됨을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와 산딸기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산딸기의 효능은 생각보다 많았다.   혈액순환, 안구건조증을 예방, 시력을 보호, 다이어트, 암 예방, 변비. 피부미용. 면역력 강화, 당뇨, 갱년기 여성, 신장, 어린이 성장발육 등에 좋고, 비타민 C도 많아 피로 해소에도 좋다고 한다.   만병통치약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산딸기 덩굴은 화려하거나 거대하지도 못하다. 볼품없는 가시 돋친 덩굴줄기에서 나온 열매지만, 그 효능은 그야말로 엄청나고 화려하지 않은가.   자연 속에 있는 식물들 가운데 이렇게 좋은 것이 어찌 산딸기뿐이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대인의 삶이어서 안타깝다.   모든 것은 유기적이다. 산딸기를 만난 것은 산을 올랐기에 생긴 일이다. 산을 오른 것은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고, 다른 일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유기적인 것도 자신이 만들어 가는 복잡계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다. 그래서 삶을 아름답고 복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가운데 만난 산딸기와 그로 인해 얻게 된 행복은 보석과도 같은 것이었다. 작지만 매우 가치 있고 행복감을 주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마치 식물이 주변에 가득한 빛을 받으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과도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행복의 재료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행복은 나누고 베풀면 더욱더 커다랗게 변화하는 신비로운 것이다. 이 신비로움을 아끼지 말고 체험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7-01
  • 더욱더 아름다운 나날을 기대하며
    치료를 시작하고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한두 달이면 낫겠지”라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두 달, 석 달이 지나서 일 년이 되었다. 참으로 세월은 빠르다. 시간을 맞춰 다니다 보니 점심시간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간을 맞추어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통원치료를 받으러 갈 때도 도시락을 싸서 가야 했다.   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치료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이었다. 조금만 잘 못 먹으면 당장 탈이 나기 때문이었다. 약을 먹는 시간과 치료 시간을 맞추려면 점심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러서 차 안에서 먹기도 했고, 어느 때는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어느 때는 공원으로 가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옆에 다가와 멀리서 놀러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해놓고 멋쩍어서 혼자 웃기도 했다.   젊었을 때 이러한 일을 겪게 되었더라면 무척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라도 치료할 수 있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소풍 다니는 것처럼 즐기며 다녔다. 공원을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시락을 먹는 즐거움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날마다 죽과 함께 일 년을 보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1년이 다 되도록 김치를 못 먹었던 것이 무척 힘들었다. 또한, 누가 외식하자고 하면 그것도 참 곤란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언젠가는 마음 놓고 외식하게 될 날을 고대했다. 그렇게 6개월을 더 보내고 두 번째 추석을 보냈다. 나는 병원 약을 더는 먹지 않겠다는 용기를 냈다.   내 나름대로 지식을 얻어 약이 아닌 다른 식품으로 다스리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이제는 죽이 아니라, 질게나마 밥을 먹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단맛이 나고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동안 잘 참은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설날이 다가왔다. 아들네 가족이 이번 설에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어쩌면 음식 때문에 고생할지도 모르지만, 용기를 냈다. 그동안 외식을 금하고 나들이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가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맛있는 음식도 많을 것 같았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식사 시간이 되었다. 먼저 음식이 걱정되었다. 식당에 들어가 시금치 카레를 시켰다. 너무나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이렇게만 먹을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은 아주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호텔에 들어가니 마침 내가 먹기 좋은 음식들이 많았다. 아들 내외가 나보다 더 좋아하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3박 4일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는 동안 아들 내외가 내 음식에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2년 만에 간 가족 여행은 지난날의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문제가 생겼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됐다. 또다시 죽을 먹으며 속을 달랬다. 이렇게 몇 번이고 밥과 죽으로 번갈아 먹으며 관리했더니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는 육류도 먹을 수 있다. 참으로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이제는 한 끼니만 안 먹어도 배가 고프다. 몸무게는 겨우 40kg 정도밖에 안 되지만, 사람들은 나를 보며 건강해 보인다고 말한다. 얼마나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인가? 새롭게 세상을 태어난 기분이다.   사람은 건강할 때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 한번 잃은 건강은 무척 회복하기 어렵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라도 그것을 잃어보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지닌 것이 귀한지도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 한번 잃어다가 회복함으로써 진한 감사 가운데 살 수 있다면, 이것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바로 내가 그렇다. 이 질병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의 기도와 격려의 덕택이다. 앞으로도 이 감사를 잊지 않고 더욱더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즐거운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6-05
  • 올바른 세계관과 분별력이 필요하다
    천차만별의 사람이 진료받는 곳이 병원이다. 좀 유명세가 있는 병원이라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렇다 보니 병원은 만물상과도 같다. 내가 치료받았던 병원도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왔고, 어떤 사람은 캐나다에서 왔다고 한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치료하다가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날 고등학생이 우리 방에 들어왔다. 너무나 음식을 잘 먹던 학생이 어느 날부터 탈이 나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입원하는 날부터 전혀 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없는 눈치였다. 금식도 힘들어했고, 죽을 먹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랬기에 날마다 영양제로 버텼다.   이렇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 간호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옆에서 보노라니 병난 딸 간호하다가 엄마까지 병이 날 것 같았다. 이 여고생은 사흘을 못 견디고 퇴원해버렸다.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길든 젊은 아이들이 음식을 절제하고 가려야 하는 치료를 제대로 받기란 고행처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금만 참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인데 인내할 수 없어서 고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치료하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치료하는 동안에는 음식을 잘 다스리다가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예전처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한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치료할 때보다 그 후에 더 중요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 음식이다. 먹고 싶은 욕망을 절제하는 것은 자신과 치르는 싸움이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참을 줄 아는 힘을 길러야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어떤 환경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병원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온갖 시선과 관점들이 존재한다. 이런 곳에서 뚜렷한 관점과 세계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분별하여 올곧게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늘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을 일깨우며 정의롭고 바른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면 음식 때문에 서로가 불편할 것 같아 병원에 더 남아있기로 했다. 장담할 수 없다면 피하는 것도 지혜가 아니겠는가. 퇴원을 하고 몇 달이 지나 설날이 되었을 때도, 병원을 선택했다.   환우들은 병원으로 도망 온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나 혼자만 그렇게 지낸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같은 처지의 환우들이 있었기에 서로가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이겨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묽은 호박죽을 먹고 나니 배가 고팠다. 이제야,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신호였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치료가 된다는 뜻이었다. 너무나 기뻤다.   “이이고 배고파.”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대로 가면 제대로 된 치료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면 환우들과 운동하러 홍릉을 찾았다. 관광차 일부러 오기도 할 텐데 이렇게라도 자주 들르게 되니 감사하지 않은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치료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점점 더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고, 감사가 넘친다. 무엇보다도 올바른 판단력과 인내하는 힘이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올바른 시야를 확보하고, 흔들림 없이 올곧게 걸어야, 바른 결과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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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좋은 여유를 누린 짧은 여름 여행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휴가 계획으로 마음이 들뜬다. 휴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산이나 바다. 그리고 계곡에 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푹 쉬면서 지친 몸의 원기를 회복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떠나 누구라도 같은 마음은 함께 하고픈 사람들과 휴가를 즐기고 싶은 것이 아니겠는가. 시니어들이라고 이것이 다를 리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마침 지인을 만나 1박 2일로 경기도 포천으로 떠났다. 나이 든 사람이 바다나 계곡을 간다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아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여 허브 랜드로 향했다. 허브 랜드는 개장한 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부지가 매우 큰 곳이었고 허브와 아주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젊은이들까지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갖가지 꽃과 허브로 만든 물품들이 가득하다.   어린이처럼 사고 싶은 것을 고르는 재미를 느끼다 보니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즐기다 보니 배가 고팠다. 허브로 만든 식사를 마치고 포천 아트밸리로 향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니 천문과학관이 있었다.   아트밸리 천문과학관은 다양한 과학체험 전시물과 별자리를 볼 수 있는 천체투영실이 있어 포천의 아름다운 별빛을 최첨단 망원경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올라가면 병풍처럼 둘린 50m 높이의 화강암 절벽이 있고 밑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호수가 있었다.     픽사베이     뜨거운 햇빛을 받은 파란 호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돌을 캐낸 이 자리에서 물이 솟아오르기 때문에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절벽과 함께 흐르는 호수는 마치 북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렇게 높은 산에 파란 호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시원하게 했고 그 옆에는 야외공연장까지 있었다.   50m의 화강암 절벽과 천주호 사이에 설치된 무대는 약 300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4월-10월 주말 및 휴일에는 화강암 절벽을 활용한 영화 상영과 소리 울림 현상을 이용한 독특한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이곳은 본래 채석장이었던 곳이었는데 폐쇄된 석산을 아트밸리로 조성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화강암 포천석은 다양한 건축자재 및 기념비나 비석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포천석은 화강섬록암으로 타지역의 화강암보다 밝아 매우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던 화강암 채석장이 폐쇄되어 애물단지가 되었다가 이제는 아트밸리로 부상하여 지역의 관광단지로 효자 노릇을 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치혁신이 아닌가. 자연이나 물건이 낡았다고 폐품이 아니다. 가치를 혁신하면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은 사람도 다르지 않다. 노인은 늙은 사람이 아니라, ‘Know 人’(인생을 제대로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냉소적이고 폐쇄적인 생각은 삶을 망칠 것이다. 이것은 뇌과학에서도 입증된 사실이다. 긍정적 생각은 뇌를 활성화하고 면역력도 높여준다는 것이다.   애물단지였던 채석장이 한 사람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멋진 관광지로 변화한 것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숙소를 찾았다. 이곳저곳을 탐색한 결과, 값도 저렴하고 시설도 좋은 호텔로 정한 것이다.   개인별 차고가 있고 복도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무인 시스템으로 되어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얻은 결과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을 테지만, 스마트폰 하나면 얼마든지 이렇게 저렴하고 좋은 곳을 찾을 수가 있다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세상도 보는구나”라고 하면서 우리는 즐거워하였다.   다음 날 아침은 생식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평강랜드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 나무가 있고 꽃이 있는 산을 택했다. 넓고 큰 산에다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시설들이 감탄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동갈비를 먹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동갈비식당’을 찾아갔다.   어느 식당은 손님으로 가득하고, 어느 식당은 텅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손님이 적당히 있는 집을 택했다. 2인분을 시켜 둘이서 난생처음으로 이동갈비를 먹는 추억을 남겼다. 1박 2일로 짧은 시간이었으나 우리는 너무나 행복한 휴가를 보냈다.   이런 쉼과 여유를 평소엔 누리기가 어려울까? 정말로 바빠서일까? 아니면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일까? 잠시만 내려놓으면 된다. 이런 결단에서 삶의 여유와 행복이 피어나는 것이다. 굳이 해외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아름답고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저렴한 비용으로도 즐길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가 있다. 다음에도 이런 추억을 남길 꿈을 꾸면서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8-20
  • 꿈 너머 꿈을 꾸자
    세상에서 어린 생명이 태어나는 날만큼 기쁘고 행복한 날도 없을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한 가정의 미래이기도 하거니와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이를 보면서 꿈나무들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 어린이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가정과 나라의 미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꿈을 품고 사는 존재다. 꿈은 역경을 이겨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준다. 꿈은 낙망을 막아 준다. 원망하려는 마음도 차단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게 한다. 꿈은 위기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때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실패를 당하면 큰 좌절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면 바닥으로 떨어져 부딪힐 때 다시 튀어 오르는 공을 보라. 실패에서도 다시 튀어 오르게 하는 힘이 꿈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처럼 사람은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한다. 이런 사람은 탄력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상상하지 못했던 찬란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 한계를 깨고 나오는 것에서부터 아름다움은 시작된다. 찰리 채플린은 “절망은 마약이다. 절망은 생각을 무관심으로 잠재울 뿐이다”고 말했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꿈은 희망이고 생명력이다.           그래서 ‘희망을 희망하라’고 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자신감을 가지고 산다. 어떤 환경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막연하게 어떤 행운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노신은 《고향》이라는 소설에서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니면서 결국 생겨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횡재를 기대하지 않는다. 밀물을 기대하며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한다. 과거의 실패에도 연연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바다로 나아간다.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너 루즈벨트는 “미래는 자신의 꿈이 멋지다고 믿는 사람들의 것이다”고 말했다.   내 안에 있는 절망감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꿈이다. 꿈은 허황한 것이 아니고, 막연한 것도 아니다. 이 꿈이라는 것이 자신의 바람을 성취하는 것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욕망 성취나 이기심의 달성을 꿈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   꿈 너머 꿈을 가지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이 성취한 꿈으로 인해 주변도 행복해지고, 사회와 지구촌도 행복해지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꿈 너머 꿈이 아니겠는가.   언제, 어떤 여건에서도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러나 꿈 너머 꿈이 확산해 나가는 만큼 행복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행복은 유기적이다. 꿈도 마찬가지다. 꿈도 행복도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생각할 때 더욱더 크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결실하게 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7-03
  • 날마다 행복을 창출하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집 근처에 있는 야산에 올라갔다. 나무 그늘 속으로 발길을 옮기니 소나무 향기와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긴다. 얼마 만인가? 작년에 오고, 올해 처음으로 오르는 이 산에 있는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이며 들꽃들이 나를 반기는 것 같다. 각종 나무와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산은 지친 사람들에게 쉼과 평안을 준다.   1년 중에 벌써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한동안 아카시아 꽃과 밤나무 꽃들로 산을 하얗게 물들이더니, 벌써 한쪽에서는 열매가 맺히고 수확할 때가 된 것도 있다. 매실은 벌써 수확했고, 자두는 요즘 가장 맛이 좋을 때다. 머지않아 복숭아가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밭에서도 농작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다. 마늘과 양파. 감자는 수확한 지 한참을 지났고, 참외나 수박은 한창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요즘은 마트에 가면 언제라도 수박이나 참외를 살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다. 하지만 제철에 맛볼 수 있는 과일들은 지금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산길을 걷다 보니, 빨간 열매들을 주렁주렁 매단 산딸기 덩굴이 나에게 손짓을 한다. 가시가 돋친 덩굴줄기에서 달린 산딸기는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운지 무더기로 모여 수풀 사이로 빨개진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다.         불현듯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소녀 감성이 되살아났다. 무작정 산딸기가 있는 곳으로 향해갔다. 콧노래를 부르며 그중에서도 큰 것을 골라 따서 입안에 넣었다. 약간 새콤함 속에 달콤함이 배어 나오며 미각을 자극한다. 이어서 부드러운 과즙이 미처 제 자랑도 다 하기 전에 깨알만 한 씨앗이 딸기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산길을 오르느라 말랐던 목을 축여주며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되살려주니,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먹는 것에는 묘한 것이 숨어있다. 미각을 일깨우는 것과 함께 추억과 삶이 스며있다. 산딸기야말로 유독 더 그런 것 같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오른 산길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삶에서도 그런 것 같다. 소소한 것들이 쌓여서 우리의 인생이 된다. 작은 기쁨과 보람들이 순간들을 장식하여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된다. 이런 세월이 흘러 일 년이 되고, 수십 년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랜만에 오른 산길에서 발견한 산딸기가 준 행복이 상상 이상의 힘이 되어줬다. 어찌 보면 삶에서도 산딸기와 같은 소소한 보석들을 발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스쳐 지날만한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혁신하면 되는 것이다.   산딸기를 만난 행복감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산길을 오르니, 자연과 교감하게 되었다. 피톤치드를 비롯하여 온갖 향기가 배어 있는 밝은 공기를 마시게 되었다. 이런 기쁨에 젖어 드니 감사가 나오고 콧노래도 흘러나온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희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자신의 신앙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서, 이 모든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됨을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와 산딸기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산딸기의 효능은 생각보다 많았다.   혈액순환, 안구건조증을 예방, 시력을 보호, 다이어트, 암 예방, 변비. 피부미용. 면역력 강화, 당뇨, 갱년기 여성, 신장, 어린이 성장발육 등에 좋고, 비타민 C도 많아 피로 해소에도 좋다고 한다.   만병통치약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산딸기 덩굴은 화려하거나 거대하지도 못하다. 볼품없는 가시 돋친 덩굴줄기에서 나온 열매지만, 그 효능은 그야말로 엄청나고 화려하지 않은가.   자연 속에 있는 식물들 가운데 이렇게 좋은 것이 어찌 산딸기뿐이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대인의 삶이어서 안타깝다.   모든 것은 유기적이다. 산딸기를 만난 것은 산을 올랐기에 생긴 일이다. 산을 오른 것은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고, 다른 일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유기적인 것도 자신이 만들어 가는 복잡계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다. 그래서 삶을 아름답고 복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가운데 만난 산딸기와 그로 인해 얻게 된 행복은 보석과도 같은 것이었다. 작지만 매우 가치 있고 행복감을 주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마치 식물이 주변에 가득한 빛을 받으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포도당을 만들어 내는 광합성과도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행복의 재료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행복은 나누고 베풀면 더욱더 커다랗게 변화하는 신비로운 것이다. 이 신비로움을 아끼지 말고 체험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7-01
  • 더욱더 아름다운 나날을 기대하며
    치료를 시작하고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한두 달이면 낫겠지”라는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두 달, 석 달이 지나서 일 년이 되었다. 참으로 세월은 빠르다. 시간을 맞춰 다니다 보니 점심시간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간을 맞추어 먹어야 약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통원치료를 받으러 갈 때도 도시락을 싸서 가야 했다.   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치료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식이었다. 조금만 잘 못 먹으면 당장 탈이 나기 때문이었다. 약을 먹는 시간과 치료 시간을 맞추려면 점심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러서 차 안에서 먹기도 했고, 어느 때는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어느 때는 공원으로 가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옆에 다가와 멀리서 놀러 왔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해놓고 멋쩍어서 혼자 웃기도 했다.   젊었을 때 이러한 일을 겪게 되었더라면 무척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라도 치료할 수 있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소풍 다니는 것처럼 즐기며 다녔다. 공원을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시락을 먹는 즐거움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렇게 날마다 죽과 함께 일 년을 보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1년이 다 되도록 김치를 못 먹었던 것이 무척 힘들었다. 또한, 누가 외식하자고 하면 그것도 참 곤란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언젠가는 마음 놓고 외식하게 될 날을 고대했다. 그렇게 6개월을 더 보내고 두 번째 추석을 보냈다. 나는 병원 약을 더는 먹지 않겠다는 용기를 냈다.   내 나름대로 지식을 얻어 약이 아닌 다른 식품으로 다스리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노력으로 이제는 죽이 아니라, 질게나마 밥을 먹게 되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단맛이 나고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동안 잘 참은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설날이 다가왔다. 아들네 가족이 이번 설에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어쩌면 음식 때문에 고생할지도 모르지만, 용기를 냈다. 그동안 외식을 금하고 나들이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가고 싶었다. 제주도에는 맛있는 음식도 많을 것 같았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식사 시간이 되었다. 먼저 음식이 걱정되었다. 식당에 들어가 시금치 카레를 시켰다. 너무나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이렇게만 먹을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은 아주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호텔에 들어가니 마침 내가 먹기 좋은 음식들이 많았다. 아들 내외가 나보다 더 좋아하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3박 4일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는 동안 아들 내외가 내 음식에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2년 만에 간 가족 여행은 지난날의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문제가 생겼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됐다. 또다시 죽을 먹으며 속을 달랬다. 이렇게 몇 번이고 밥과 죽으로 번갈아 먹으며 관리했더니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는 육류도 먹을 수 있다. 참으로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이제는 한 끼니만 안 먹어도 배가 고프다. 몸무게는 겨우 40kg 정도밖에 안 되지만, 사람들은 나를 보며 건강해 보인다고 말한다. 얼마나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인가? 새롭게 세상을 태어난 기분이다.   사람은 건강할 때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 한번 잃은 건강은 무척 회복하기 어렵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라도 그것을 잃어보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지닌 것이 귀한지도 모르고 지내는 것보다, 한번 잃어다가 회복함으로써 진한 감사 가운데 살 수 있다면, 이것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바로 내가 그렇다. 이 질병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의 기도와 격려의 덕택이다. 앞으로도 이 감사를 잊지 않고 더욱더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즐거운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6-05
  • 올바른 세계관과 분별력이 필요하다
    천차만별의 사람이 진료받는 곳이 병원이다. 좀 유명세가 있는 병원이라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렇다 보니 병원은 만물상과도 같다. 내가 치료받았던 병원도 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왔고, 어떤 사람은 캐나다에서 왔다고 한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치료하다가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날 고등학생이 우리 방에 들어왔다. 너무나 음식을 잘 먹던 학생이 어느 날부터 탈이 나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입원하는 날부터 전혀 치료를 받을 생각조차 없는 눈치였다. 금식도 힘들어했고, 죽을 먹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랬기에 날마다 영양제로 버텼다.   이렇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 간호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옆에서 보노라니 병난 딸 간호하다가 엄마까지 병이 날 것 같았다. 이 여고생은 사흘을 못 견디고 퇴원해버렸다.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길든 젊은 아이들이 음식을 절제하고 가려야 하는 치료를 제대로 받기란 고행처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조금만 참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인데 인내할 수 없어서 고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치료하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치료하는 동안에는 음식을 잘 다스리다가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예전처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라고 한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치료할 때보다 그 후에 더 중요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 음식이다. 먹고 싶은 욕망을 절제하는 것은 자신과 치르는 싸움이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참을 줄 아는 힘을 길러야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어떤 환경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병원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온갖 시선과 관점들이 존재한다. 이런 곳에서 뚜렷한 관점과 세계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흔들리게 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분별하여 올곧게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늘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을 일깨우며 정의롭고 바른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면 음식 때문에 서로가 불편할 것 같아 병원에 더 남아있기로 했다. 장담할 수 없다면 피하는 것도 지혜가 아니겠는가. 퇴원을 하고 몇 달이 지나 설날이 되었을 때도, 병원을 선택했다.   환우들은 병원으로 도망 온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나 혼자만 그렇게 지낸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같은 처지의 환우들이 있었기에 서로가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이겨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묽은 호박죽을 먹고 나니 배가 고팠다. 이제야,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신호였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치료가 된다는 뜻이었다. 너무나 기뻤다.   “이이고 배고파.”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대로 가면 제대로 된 치료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면 환우들과 운동하러 홍릉을 찾았다. 관광차 일부러 오기도 할 텐데 이렇게라도 자주 들르게 되니 감사하지 않은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치료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점점 더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이 더욱더 아름답게 보이고, 감사가 넘친다. 무엇보다도 올바른 판단력과 인내하는 힘이 있었던 것이 감사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올바른 시야를 확보하고, 흔들림 없이 올곧게 걸어야, 바른 결과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6-04
  • 아파도 소중한 삶이다
    치료과정에서 금식하다 보면 힘이 없어 젊은 사람들도 영양제 주사를 맞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까지도 이겨나갔다. 워낙에 금식하는 것이 단련되어서 웬만큼 아프거나 굶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간호사부터 한 방에서 치료받는 사람들이 모두 내 의지에 놀라워했다.   힘이 없을 것이라며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게 했다. 70세가 넘었고 머리까지 하얀 할머니이니, 혹시 힘이 없어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일부러 운동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렸다. 어느 때는 살그머니 병원을 빠져나와 나와 근처에 있는 학교 마당을 돌기도 했다.   정신력이 약해지면 어떤 병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더 강한 정신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이 약해지면 어떤 병도 이기지 못한다. 마음이 강할수록 모든 병을 이길 수 있다. 감기도 무서워하면 죽는다고 한다. 나는 옛날에 이미 유방암을 이긴 적이 있어서 이까짓 것쯤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혼자서 아침 운동을 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치료에 들어갔다. 한방과 양방으로 통합적인 치료를 받았다. 얼마나 위벽이 굳었는지 등에 침을 놓으면 침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주치의도 침을 놓으며 무척 놀랐다. 간신히 침을 놓으면 등과 가슴이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게 3주간의 입원을 마치고 일주일에 3일씩 통원치료를 받았다.   너무나 힘이 들었다. 이런 과정에서도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다. 환우들끼리 서로 만나면 빨리 건강해서 맛있는 음식 실컷 먹어보자는 것이 인사였다. 이렇게 꾸준하게 치료를 받으며 걷는 운동이라도 열심히 했다.         치료하는 동안에는 죽을 먹어야 했다. 비록 죽을 먹어서 힘은 없었지만, 운동과 독서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치료받는 동안이라도 무의미하게 보내기는 싫었다. 삶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인식을 실천하는 데에도 충실해지고 싶어서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시간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니, 이 고난도 반드시 지나갈 것이다. 배고파서 먹고, 먹고 싶어서 먹는 그런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매 순간을 소중하게 가꾸는 심정으로 살았다. 밝고 따뜻한 봄날처럼 나에게도 건강하게 활기찬 삶을 사는 날이 찾아오리라는 믿음으로 힘든 시간을 이겨나갔다.   치료가 잘되어 음식을 먹을 때까지는 모든 음식을 절제해야 했다. 치료단계와 함께 증상에 따라 음식도 맞추어 먹게 했다. 음료, 과일, 육류, 생선, 채소, 모든 것을 치료단계에 맞춰 먹어야 했다. 생선은 튀겨도 안 되고 구워도 안 된다. 무조건 찜으로 먹어야 했다. 여름철에 먹는 상추쌈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치료 기간이 여름철이었기에 상추쌈. 오이. 풋고추 등을 된장에 찍어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런 것 하나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으니 참으로 고역이었다. 우유도. 요구르트도. 음료수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도토리묵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로 설사가 나서 축 처지고 말았다.   부드러운 음식이기에 먹어도 될 줄 알았는데 바로 문제가 터진 것이었다.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외식하게 되었는데 내가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간장게장을 먹었다. 역시나 설사를 하고 말았다. 먹지 말라고 한 것은 먹지 말아야 했는데 먹고 싶은 생각에 지고 말았던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참는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명은 천하보다 귀중하다고 한다. 죽은 사람에게 천하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연이 아름다워 보이고, 음식도 귀하게 여겨지고, 주변의 사람들도 소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자. 순간 모든 것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5-28
  • 산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이를 넘어 인간의 수명을 150세로 내다보는 견해도 있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소망이다. 이렇다 보니 몸에 좋다는 식품이며 의약품의 개발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운동마저도 건강관리를 위해 한다. 장수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돈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의사는 물론, 의료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매우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장수도 좋지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산업 분야가 날로 성장하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젖을 빨게 된다. 이것은 본능적인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부족하면 울어서라도 부족함을 채워나간다. 허기를 채우는 식욕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본질적 욕구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입맛이 없다면 그것은 건강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나는 최근에 음식이 너무 맛있다. 무엇을 먹든지 맛있다. “맛있다”라고 하면서 먹으니 먹는 즐거움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사람이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져서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폭식도 하고 야식도 하고 간식도 한다. 대부분 사람에게서 위장병이 생기는 이유가 음식과 관련이 있다.         나는 지금이야 맛있게 잘 먹지만, 예전에는 밥을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나는 간식도 야식도 폭식도 하지 않는다. 급하게 먹지도 않고 아주 천천히 먹는다. 마냥 씹고 있다. 어떤 장소에 가서도 항상 가장 늦게까지 먹는다. 그러니 어떤 모임에 가서 식사할 때면 나는 최대한 앞에 서서 빨리 들어간다. 일찍 들어가서 먹기 시작해도 항상 늦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먹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모르고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먹지 않으면 배고파야 정상인데, 나는 배고픔을 모르는 것이 병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부럽기만 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때는 일부러 맛있게 먹는 척했을 때도 있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영양분을 흡수하는 차원에서 먹어야 했던 것이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인간의 행복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모르니,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나이가 들면 밥의 힘으로 산다고 한다. 정말이다. 젊어서는 하루에 한 끼니를 먹으나, 두 끼니를 먹으나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한 끼니만 먹지 않으면, 손발이 벌벌 떨리고 어지러워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그래서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일 년에 2kg 정도나 살이 빠졌다. 배는 고프지 않은데 어지럽고 구토가 나오고 머리는 쪼개질 것같이 아팠다. 온몸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나 뇌에 이상이 있는가 싶어서 병원에 가 검사받아 봐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메스껍고 구토 증상이 심해졌다.   혹시 위암은 아니겠냐는 의심이 생겼다.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위암은 아니고 위염이라고 했다. 위염은 보통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자꾸만 위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마침 위장병 전문병원을 알게 되어서 무조건 찾아갔다. 머리 아픈 것도, 온몸의 통증도, 잠을 자지 못하는 것도, 내가 겪는 증상 모두가 위장병 탓이라는 것이었다.   위가 쪼그라들고 말라버려서 위암 직전이라는 것이었다. 내시경으로는 위벽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내 위는 신경이 마비되어 밥이 들어가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100명 중의 한 사람인 챔피언급 환자라고 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보다 치료하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검사한 후 입원을 하라는 결정이 났다. 젊어서 여러 번 병원에 입원해 치료도 하고 수술도 했던 경험 탓에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정말로 싫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그냥 지내다가 세상과 작별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삶을 어찌 그렇게 쉽게 여길 일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려면 입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3주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병원 생활은 모두 청산한 줄 알았는데 또다시 시작됐다. 무척 창피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병원 생활을 자주 해야 하는지, 이제는 병원 생활이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에는 수술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병원 생활이 꽤 길었다. 입원하니, 무조건 금식을 시켰다. 금식하면서 간에 쌓인 독소를 모두 빼내는 작업부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금식 후에는 미음으로 위를 다스리고, 후에는 날마다 묽은 죽을 번갈아 가며 먹게 했다.   신생아처럼 음식을 섭취하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맛있게 먹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만큼 더욱더 간절한 마음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맛있게 먹을 날을 기대하며 열심히 치료받는 데 집중했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5-27
  • 일상에서 피어나는 행복
    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나 흔한 시대여서 손주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무얼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그렇게 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특별하지 않은 학용품은 싫증 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잊어버리더라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들은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들에게 어떤 것을 선물해 주어야 할지 무척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편하게 현금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황금만능주의 시대가 된 것일까?   어린이날이 지나면 곧 어버이날이다 보니, 어느 하루를 정해서 함께 식사하거나 놀이동산을 찾기도 한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손녀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이 됐다. 내가 자라던 시대는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작은 것이라도 생길라치면 그것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니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새록새록 추억이 되살아난다. 나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다니는 동안 크레파스를 사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상으로 받은 크레파스가 있어서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등학교 3년 동안에는 물감을 사 본 일이 없다. 그러니 물감이 필요한 미술 시간이 내게는 아주 고통스럽고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추억이 떠올라서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손녀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다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샀다. 아들네 가족과 함께 바람도 쐬고 식사도 하려고 독산성을 향하여 출발했다. 나는 자동차 안에서 손녀에게 선물을 주며 나의 과거 이야기를 했다. 손녀야 부족한 것도, 크게 부러울 것 없겠지만, 특별히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선물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학창시절 12년 동안 사보지 못했고,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손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들을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이 손녀에게 전달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독산성에 오른 우리는 산책 가운데 옛날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산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우리처럼 3대가 모여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러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도 3대가 어울린 가족들로 붐볐다. 손녀는 내가 사준 크레파스가 정감이 가는가 보다. 손에서 놓지 않고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보는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그리고 난 후 할머니를 그리겠다고 내 앞에 스케치북을 펼쳤다. 계속하여 나를 바라보면서 손놀림을 했다. 탁자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그리더니 한쪽으로 가서 무엇인가 열심히 글을 썼다. 그리고는 그림과 그 옆에 쓴 글을 내 앞에 내놓았다.   “할머니 사랑해요. 4살 때 산에 가서 술래잡기, 숨바꼭질 같은 재미있는 놀이를 많이 했던 것이 8살이 돼서도 생각나요. 다리 아플 때는 할머니가 어부바해주어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하진 올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감춰 두었던 향기처럼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피로가 싹 사라졌다. 흐뭇한 마음이 몸 맘에 가득해지며 행복이 출렁거렸다.   특히 노인들은 자식들이 자주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점점 더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다행히도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이 있어서 외로운 노인들을 챙겨주기도 한다. 이런 처지를 바라보노라며 가정의 달이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서글프다.   뉴스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른다. 어버이날 무료급식소에 제일 먼저 나온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는 자녀가 없습니까?”라고 기자가 묻는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4형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혼자 살면서 어버이날인데도 무료급식소에 나와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들이 바빠서 명절 때만 본다고 한다. 정말 바빠서일까? 왠지 마음이 씁쓸하다.   그뿐인가? 듣고 싶지 않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 부모의 잔소리가 싫어서 자살하는 사건 등 말로 표현하기조차 곤혹스럽고 부끄럽다.   효의 민족이라고 불리던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랑도, 정도, 사라지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득해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지만 행복지수는 높아 가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할까?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인데 행복하다는 말보다 불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누구의 탓이 아니다. 모두가 우리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너를 보기 전에 먼저 나를 본다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나를 보지 않고 너를 보고 있다. 나를 보지 못하고서는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   수십억 원을 들인 행사가 끝난 다음, 그 자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는 일도 다반사다.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탓일까? 수십억 원의 유발 효과가 겨우 쓰레기란 말인가.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을 배우고 익히지 못한 탓이다. 나를 돌아보며 우리를 생각하는 성찰적 실천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읽고,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면 서로가 행복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아주 작은 것이나 소소함에서도 사랑과 행복이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5-13
  • 인내해야 아름다운 인생을 꽃피울 수 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고 한다. 하지만 인내가 어디 쉬운 일인가. 쉽다면 인내를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에 신경을 쓴다.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중독에 빠질 가능성도 큰 편이다. 어떤 사람은 홈쇼핑에 빠져 빚더미 위에 앉은 사람도 있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가정이 파탄 난 것을 보기도 한다.   세상에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인내를 요구한다. 그만큼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고, 보람과 기쁨을 준다는 의미다. 인내는 성실을 내포하는 것이며, 희망이 있을 때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좋은 일을 성취하는 데에도 인내가 필요하지만,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도 인내가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일으키는 사건·사고들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심지어 살인에 까지도 이르게 되는 일도 있다. 모두 인내하지 못하는 탓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성미가 급한 편이다.   셰익스피어는 “인내력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불쌍한 사람이다”고 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3초만 기다리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옛말에 ‘참을 인(忍)’ 자를 세 번만 쓰면 극한 분노로 벌이게 될 일도 피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인내는 성실을 내포하는 것이며, 희망이 있을 때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월터 미셸(W. Mischel)은 1966년 네 살짜리 653명을 대상으로 마시멜로 하나씩을 주면서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두 개를 더 주겠다는 실험을 했다. 절반의 아이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그만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 하나를 먹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81년 그 아이들의 삶의 현상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5분을 참아서 한 개를 더 받아먹었던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우수하더라는 것이다. 성적을 비롯해 삶의 전반에서 훨씬 더 뛰어났다는 것이다. 반면 그렇지 못했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비만, 약물중독,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를 안고 살더라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겠는가. 인내는 이성을 지닌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고 고차원적인 실천 의지다. 인내가 부족하면 보통의 삶이 아니라, 저급한 삶으로 빨려들기 쉽다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은 인내를 통해 주어진다. 물을 끓이는 것도 100℃가 될 때까지 인내하고 열을 가해야 한다. “하늘은 언제나 기다릴 줄 아는 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라는 말이 있다.   인내는 누가 공짜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쌓아 나가야 한다. 오늘을 견뎌 밝은 내일을 창출하리라는 기대감을 지닌 사람이라야 인내할 수 있다.   예전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요즘 사람들이 인내력이 더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기술의 발달로 무엇이든지 쉽고 빠르게 얻게 된 탓도 있다. 무엇보다도 인내의 밑거름이 되는 고난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내를 배울 기회가 부족했다. 오히려 조급함을 채우기에 급급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농부는 때를 기다리며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해낸다. 곡식을 심기 위해 봄비를 기다린다. 농작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여름비를 기다린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린 끝에 수학의 기쁨을 맛본다. 그것이 기다림의 결과로 얻는 기쁨 아닌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기다릴 수 없다. 다린다는 것은 자신을 이기는 작업이다. 자아를 깨뜨리고 성찰해야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을 바라보며 부족함을 발견하고 채워나가는 지능을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한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끊임없이 채워나갈 줄 아는 사람이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이다. 사무엘 스마일스는 《자조론》에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에델바이스는 고산지대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폭설과 강풍을 견뎌냈기에 신비로운 색을 낸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희망을 품고 잘 견뎌낼 때, 마침내 아름다운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5-07
  • 학창시절
    1960년도에 중학교에 들어갔다. 4·19 혁명(1960년)을 거쳐 5.16 군사 정변(1961년)으로 어려운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 전체가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중학교에 갈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그때 시골에서는 우리보다 부잣집에서도 여자는 중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며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우리 형편으로는 고등학교는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학교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외갓집을 찾아갔다.   외갓집은 잘살았던 집안이었다. 나는 외삼촌이 계실 때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울었다. 여자라도 배워야 한다는 외삼촌의 도움으로 원서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내게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정말로 엄청난 축복이었다.   입학하고 보니 다른 친구들은 가방을 가지고 다녔다. 나는 가방이 없어 보자기로 책을 가지고 다녔다. 2km를 걸어간 다음 6km를 기차로 가야 했다. 그런데 나는 8km가 되는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왕복 4시간을 걸어 다니며 차비를 아껴서 공부할 준비물을 샀다.   교복은 선배가 입었던 헌 옷을 물려받아 입었고 스타킹 한 켤레로 3년을 지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때는 전기다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쇠로 된 둥근 다리미에 빨갛게 불이 붙은 숯을 넣고 옷을 다리다 보면 멀미를 해서 쓰러질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모든 집안일은 내 몫이었다.   모내기나 밭일을 해야 하면 새벽부터 일어나 농부들이 먹을 밥을 해놓고 학교에 가야 했다. 학생이 주부가 하는 일을 다 해야 했던 것이었다. 체질적으로 약한 나는 조회 때나 체육 시간이면 빈혈로 쓰러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녔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 교실은 3층이었다. 나는 3층을 올라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뛰어가는데 나는 한층 올라가서 쉬고 또 한층 올라가서 쉬며 교실에 들어간다. 쉬는 시간이면 책상에 엎드려 쉬어야 한다. 공부하랴 집안 일하랴 너무나 힘이 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재미있게 노는데 나는 그것까지도 부러워하기만 해야 하는 처지였다. 일 년 동안은 외갓집에서 등록금을 주어서 공부했으나 2학년부터는 어머니가 주어야 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에서 나의 등록금 대기란 무척 힘든 것이었다. 그때 시대는 등록금을 내지 않으면 선생님으로부터 종아리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시험도 보지 못하게 했다.   종아리는 맞을 수 있었으나 시험을 볼 수 없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나는 종아리 몇 번을 맞고 난 다음에야 시험을 보고 싶어 어쩔 수 없이 등록금 달라는 말을 겨우 꺼내야 했었다. 8km를 걸어서 학교에 가는 내 끈기를 보신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등록금을 마련해주셨다. 아무리 고생이 돼도 공부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친구들은 이렇게나마 고등학교에 다니는 나를 부러워했다. 이렇게 나의 꽃다운 고등학교 시절을 끝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 학교에서 가정으로 보내는 학교생활 통지표의 통신란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늘 똑같은 문구가 있었다. 그것은 “명랑함 부족”이란 문구였다.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이나 동네 어른들에게 비친 나의 이미지는 그저 착한 아이였다. 착한 것이 아니라, 명랑함 부족과 어쩔 수 없는 수용이었다. 항상 외롭고 쓸쓸하게 자란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놀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직 학교와 집 그리고 교회에서만 보냈기에 주위 사람들에게는 착한 아이로 비친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집에서 기쁨을 얻을 수 없던 내게 교회는 영혼의 안식처이고 삶의 피난처가 되었다. 오직 교회만이 나를 품어주는 보금자리였고 어른들로부터 사랑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무서워서 ‘아니오’라는 말을 하지 못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에게 한 번도 ‘아니오’라는 말을 해보지 못했다. 아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며 사신 어머니는 딸 때문에 마음에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것이 내가 어머니에게 드리는 위로요, 보상이었을 것이다. 이제 와 돌아보니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던 내 성품이 어머니에게 효도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에 위로로 삼아본다.   유정애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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