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5-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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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밥솥으로 벌어진 소동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얼마 전 아내는 쓰던 전기밥솥이 잘 열리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고장이 난 것 같으니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예전부터 쓰던 것이니 15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부품도 두어 번 교환하고 안쪽에 든 솥도 바꾸고 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했으니 문제가 터질 때도 되었다.   밥솥을 사러 읍내에 있는 전자제품대리점에 갔다. 국내 전기밥솥 분야에서는 두 개 회사가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두 회사 제품이 전시돼 있긴 했지만, 마음에 맞는 모델이 고루 다 갖추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중에서 4인용으로 하나를 골라서 샀다.   예전에는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인공지능 기능까지 더해져 사용법이 무척 복잡했다. 자동세척, 간단 불림, 백미, 현미, 잡곡, 찰진 밥, 구수한 밥, 누룽지 등 메뉴도 많고 작동법도 다양해서 사용설명서를 익히려면 며칠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저녁때가 되어 밥을 지어야 했기에 일단 설명서를 대충 읽어본 다음 쌀을 씻어 넣고 스위치를 눌렸다. 밥이 다 된 것 같아서 열어보니 가운데만 먹을 만하고 가장자리는 두껍게 누룽지가 되어있었다. 우리가 처음 사용하다가 보니 조작을 잘못한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 남은 밥은 보온으로 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을 차리려고 밥솥을 열어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남아있는 밥이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부랴부랴 버리려고 내놓았던 옛날 밥솥에다 밥을 지었다. 잘 안 열리는 밥솥 뚜껑을 겨우 열어서 무사히 아침을 먹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밥솥을 산 봉담에 있는 대리점보다는 수원에 있는 고객센터에 가서 작동법을 배워 오는 게 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터넷으로 고객센터 위치를 알아보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고객센터사무실 직원에게 밥솥에 들어있는 딱딱한 밥을 보여주면서 작동법을 배우러 왔노라고 설명했다. 직원이 밥솥에 전원을 연결하고 작동시켜보더니 고장이라고 했다. 고장확인서를 써주면서 이것을 산 대리점에 가서 보여주면 교환하거나 환불해 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어제 산 새것이 고장이 날 수가 있느냐고 의아해했더니, 직원은 가끔가다 그런 제품이 나온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구매한 대리점에 가서 고장확인서를 보여주었더니,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환불을 원하는지 물었다. 아내는 원하는 모델이 없으니 환불하고 다른 곳에서 사자고 해서 환불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 쇼핑센터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모델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는 밥솥에 보온을 작동시켜 조금 오래 두면 전력 소모도 되고 밥맛도 좋지 않으니 3인용으로 하자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골라 3인용을 주문했더니 이틀 만에 제품이 도착했다. 밥을 해보니 맛있게 지어져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에 밥솥을 바꾸는 경험을 하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우리 시니어들에겐 복잡한 기능이 장착된 비싼 밥솥보다는 값싸고 기능이 간단한 밥솥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기능이 들어가는 만큼 가격은 비례하여 높아지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능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괜히 신경 쓰다가 보면 머리만 아파질 우려가 크다.   첨단 기능이 복잡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지만 질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밥솥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고 쉬운 작동만으로도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으면 된다. 다른 모든 것에서도 본질적 목적 실현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크게 필요치도 않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치렁치렁하게 매달고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에 충실했던 것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후의 삶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도 삶의 본질에 충실한 소박한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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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2
  • “부자(父子)는 다 계획이 있구나”
      [시니어투데이] “아버지는 28년간 기술자로 성실히 근무하신 멋진 가장이다. 그런 아버지를 지도하신 교수님과 함께라면, 낯선 기술 분야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윤반석(27) 씨는 4월 ㈜오리온 청주공장 설비팀에 입사해 생애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제조 공정에 쓰이는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일이다. 2년 전만 해도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던 터라 “기술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지방 4년제 대학을 다니다 졸업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자퇴했다. 취업으로 힘들어하는 선배나 친구들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졸업해도 전공에 맞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반석 씨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건 금호타이어㈜에서 28년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윤만중(54) 씨였다. 만중 씨가 처음 기술을 배운 건 1991년 폴리텍 전신인 광주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다. 2년제 과정을 졸업하고선 내리 기술 외길 인생을 살았다. 아들의 결심이 서자 윤 씨는 직업전문학교 시절 자신을 가르친 폴리텍 김제캠퍼스 이상근 교수(62)를 찾았다. “내가 배웠던 만큼 아들도 잘 지도해 주실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상근 교수는 36년간 산업설비 자동화 분야 직업교육훈련에 종사한 전문가다. 매년 졸업 철이면 학생들 취업 연계를 위해 한 명 한 명씩 이끌고 기업체로 분주히 뛰어다니는 데, 대학 내에서도 유명 인사다. 그 때문인지 윤 씨 부자(父子) 외에도 이 교수를 찾는 가족 동문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집 인근 광주캠퍼스로 진학을 권유했는데, 결국엔 내가 설득을 당했다”며,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사제 간 연을 이어왔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2018년, 반석 씨는 대학 전공을 뒤로하고, 폴리텍 김제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새내기가 되었다. 통학에만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탓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지만,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반석 씨는 “생소한 분야다 보니 처음에 고생도 했지만, 배우는 재미도 남달랐다”고 말했다. 노력한 성과도 있었다. 2년간 학교생활을 마치고 올해 2월 학점 4.44(4.5점 만점)로 수석 졸업했다. 위험물산업기사 등 국가기술자격증 4개도 손에 넣었다. 반석 씨는 “기술에 대한 아버지의 소신과 교수님의 지도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아직까지 직업을 찾지 못한 친구들에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새롭게 무언가를 배워보길 권유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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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4
  • 긴급재난지원금 수령 소동과 새로운 희망
    [시니어투데이] 긴급재난지원금의 지원 범위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던 4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미장원에 다녀오더니 지자체에서 지원하기로 결정된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하려면 지역 화폐 카드를 먼저 신청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어차피 신청할 거면 빨리하자고 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남는 게 시간인데 바로 인터넷으로 지역 화폐 신청 방법을 알아보았다. 앱을 다운받아 스마트폰으로도 간단히 할 수 있다고 설명되어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지역 화폐 앱을 다운받아 주소, 전화번호 등 요구하는 자료를 입력하여 먼저 아내 이름으로 신청을 했다. 이어서 내 이름으로 또 한 번 신청을 하고 나서 보니 “신청 확인” 이라는 칸이 보였다. 친절하게도 제대로 신청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나는 아내에게 신청이 끝났다고 말하고 신청 확인을 해주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내는 그렇게 간단히 스마트폰에서 신청이 되었느냐며 신기해하며 다가왔다.   먼저 아내의 신청 확인을 해보았다. 그런데 주소를 내가 잘못 입력한 것이다. 아파트의 동을 잘못 입력한 것이었다. 요즘 걸핏하면 아내는 내가 실수하는 것을 볼 때면 “당신도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다” 고 핀잔을 주기 일쑤인데 또 한 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카드가 다른 집으로 가서 남들이 함부로 쓰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 섞인 잔소리를 했다.   우선 걱정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할 터이니 염려 붙들어 놓으라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지역 화폐 홈페이지에 들어가 고객 상담란에 “주소가 잘못 입력되었으니 수정해 달라”고 일단 글을 올렸다.   다음날 마침 잘못 입력한 주소에 사는 지인과 만난 일이 있어서 그 집으로 카드가 배달되면 알려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카드를 기다리고 있다가 방송을 보니 재난지원금은 일반카드나 지역화폐카드나 모두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공연히 지역화폐카드를 신청하느라고 애를 썼던 것 같았다.   며칠 뒤에 아내의 휴대폰에 재난지원금이 입금되었으니 사용하라는 연락이 왔다. 물건을 사고 나니 바로 얼마가 사용되고 얼마가 남았다는 메시지가 뜬다고 아내는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열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시청에 왜 같은 날 신청한 아내는 재난지원금을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소식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도청에 문의하라고 해당 부서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다. 도청에 전화했더니 온종일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안내 음성만 들렸다. 답답해서 카드 고객센터에 여러 번 전화한 노력 덕택에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인적사항을 묻더니,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계시는데요? 얼마를 썼고, 잔액은 얼마라고 알려줬다. 내 휴대폰에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 하니 그것은 통신사에 알아보라고 했다.   이렇게 나도 지원금을 받아서 잘 쓰고는 있다.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의 재정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만큼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런 염려도 있었지만 금세 마음을 바꿨다.     지금까지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번 것도 이럴 때를 위한 것이니, 이제부터는 경기가 회복되는 데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현명한 소비에 동참할 작정이다.   시니어들이 어렵다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사용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 비록 어렵지만, 열심히 사용법을 익히면서 사용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돈을 아끼기만 한다면,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명하게 소비에 동참해야 한다.   더욱이나 이런 목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까지 받은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더욱더 힘찬 도약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보자. 분명히 이런 마음의 크기만큼 우리나라의 미래와 우리의 삶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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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11
  • 믿음으로 바라보는 오늘과 내일
    [시니어투데이] ‘코로나19’ 사태로 미사가 중지되기 전 주일 미사 때였다. 영성체를 하러 나가 신부님 앞에서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형제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자리에 들어가다 말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하고 눈여겨보고 있으니 뒤따라 성체를 모신 여자분을 기다렸다가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내가 몸이 불편하기에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순간 몇 해 뒤의 나와 내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요즘 부쩍 다리에 힘을 잘 쓰지 못하고 있다. 앉았다가 일어나려면 바로 일어서지를 못하고 옆에 의자를 붙들거나 한참을 거실 바닥을 짚고 애를 쓰다가 일어서곤 하여 보기에 매우 안타깝다.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무릎에 주사를 맞곤 했는데 6개월이 지났지만 신통치 않다. 관절주사를 맞을 때 통증이 심하다면서 맞지 않고 견디어보겠다고 버티는 중이다. 그러다가 가끔 통증이 심해지면 아예 다리를 오므리지도 못해 부축해주어야 겨우 일어난다.   절뚝거리면서 아침을 준비한다고 서두르는 것을 볼 때는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마음 편할 듯싶다. 서툴지만 내가 밥을 차릴 테니 옆에서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기만 하라고 하면 한사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자기가 한다고 고집한다.   요즘 아내는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어깨가 쑤신다고 하다가 허리도 아프다고 한다.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며 나오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다고 한다. 어쩌다 아침에 일어나 웃으면서 나오면 내 마음도 밝아지고 잠시나마 평온을 찾는다.   나이가 더 들고 다리에 점점 힘이 빠지면 오래지 않아 아내도 저렇게 부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혼자서는 성당에도 나올 수도 없게 될지도 모른다.   병원 신세만 지지 않는다면 부축해서라도 미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픈 데가 없어지기를 기도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한 바람이고 응답될 것을 믿는 신앙 행위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절대자를 의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과 의지가 필요하다. 먼저는 생각에 따른 마음가짐이다. 마음과 신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큰 고비를 넘기고 많은 안정을 찾았다. 생활 거리 두기를 실시하며, 순차적으로나마 초·중·고등학생들의 등교도 결정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는 봄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꽃은 피었고, 산과 들판은 온통 초록으로 번져가며 생명력이 짙어가고 있다.   의료적으로 한숨 돌리고 보니, 이젠 경제가 문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경제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아내도 비록 지금 힘겨운 나날일지라도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그 전제가 바로 나와 아내의 믿음이고 그에 따른 생각과 마음이며 실천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았던가. 언제부터 봄이고 여름이라고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봄이 지나면 분명히 여름이 온다.   아내가 당장 내일부터 완전히 낫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점점 더 좋아질 것을 믿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며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준다”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에 대한 믿음이 바로 나의 기도이며, 나와 아내의 밝은 내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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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7
  • ‘코로나19’로 움츠러든 가슴에 따뜻한 봄이여 오라
      [시니어투데이] 봄이 왔다. 벚꽃이며 진달래꽃은 한창이고 목련은 이미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산, 저 산에는 연두색과 분홍색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혹독한 추위로 움츠리고 있던 나무들이며 풀들이 푸른 희망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서로 내기라도 하듯이 앞다투어 새잎을 내미느라고 바쁘다.   이런 모습을 응원이라도 하듯이 새들은 수풀 속을 들락거리며 짹짹거린다. 들녘은 나날이 더 짙은 녹색으로 물들고, 논밭에서는 농부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여러 가지 농사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봄이 한창인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시린 겨울이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의 습격이 우리를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벚꽃의 향연이 쭉 뻗은 도로를 연분홍으로 물들이고, 들판은 푸름을 더하여 가는 완연한 봄인데 사람들 마음속에는 아직 봄이 오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상상 초월의 피해를 안기고 있는 ‘코로나19’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개학은 물론, 대학교도 개강을 못 하고 있다.   문화센터, 복지관도 석 달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는 문 닫은 상점들이 쉽게 눈에 띈다. 문을 연 상점들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래도 계절의 순환에 따라 어김없이 봄이 왔으니, 얼마나 큰 위로인가. 봄마저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슬펐을까.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와준 봄이 참으로 고맙다.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다가 보니, 마음대로 외출하기도 어렵다. 이렇다 보니 마음 놓고 다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절감하게 된다.   ‘코로나19’가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봄이 찾아왔듯이 아무리 위기가 닥쳐와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는 변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참으로 어려운 형편인데도 우리는 서로 돕고 있다.   의료인들은 망설임 없이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대구로 달려갔다. 도시락을 보냈고, 마스크를 모아서 관공서에 갖다 놓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어려우면 서로 살려고 아우성치며 빼앗으려고 난리가 벌어지기 쉬운데, 한국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재기도 없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상한 나라’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힘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고 있다. 우리 국민이 모두 슬기로운 대처로 이루어낸 성과다.   방역과 진단검사에 대해서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본받고 있다. 한국기업에서 생산한 진단키트는 요구하는 나라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국격이다. ‘코로나19’는 분명히 우리에게 위기이고 아직도 큰 상처를 안기고 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 어려움을 기회로 바꾸어내고 있다.   많이 힘들고 슬픔 또한 매우 크지만, 우리 모두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더 힘을 내야 한다. 서로 위로하고 도와줌으로써 희망을 창출하며 미래로 나가자는 것이다.   봄은 왔는데, 아직도 시린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삶에 하루속히 따뜻한 봄날이 오고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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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스토리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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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밥솥으로 벌어진 소동과 깨달음
    [시니어투데이] 얼마 전 아내는 쓰던 전기밥솥이 잘 열리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고장이 난 것 같으니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예전부터 쓰던 것이니 15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부품도 두어 번 교환하고 안쪽에 든 솥도 바꾸고 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했으니 문제가 터질 때도 되었다.   밥솥을 사러 읍내에 있는 전자제품대리점에 갔다. 국내 전기밥솥 분야에서는 두 개 회사가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두 회사 제품이 전시돼 있긴 했지만, 마음에 맞는 모델이 고루 다 갖추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중에서 4인용으로 하나를 골라서 샀다.   예전에는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인공지능 기능까지 더해져 사용법이 무척 복잡했다. 자동세척, 간단 불림, 백미, 현미, 잡곡, 찰진 밥, 구수한 밥, 누룽지 등 메뉴도 많고 작동법도 다양해서 사용설명서를 익히려면 며칠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저녁때가 되어 밥을 지어야 했기에 일단 설명서를 대충 읽어본 다음 쌀을 씻어 넣고 스위치를 눌렸다. 밥이 다 된 것 같아서 열어보니 가운데만 먹을 만하고 가장자리는 두껍게 누룽지가 되어있었다. 우리가 처음 사용하다가 보니 조작을 잘못한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 남은 밥은 보온으로 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을 차리려고 밥솥을 열어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남아있는 밥이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부랴부랴 버리려고 내놓았던 옛날 밥솥에다 밥을 지었다. 잘 안 열리는 밥솥 뚜껑을 겨우 열어서 무사히 아침을 먹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밥솥을 산 봉담에 있는 대리점보다는 수원에 있는 고객센터에 가서 작동법을 배워 오는 게 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터넷으로 고객센터 위치를 알아보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고객센터사무실 직원에게 밥솥에 들어있는 딱딱한 밥을 보여주면서 작동법을 배우러 왔노라고 설명했다. 직원이 밥솥에 전원을 연결하고 작동시켜보더니 고장이라고 했다. 고장확인서를 써주면서 이것을 산 대리점에 가서 보여주면 교환하거나 환불해 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어제 산 새것이 고장이 날 수가 있느냐고 의아해했더니, 직원은 가끔가다 그런 제품이 나온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구매한 대리점에 가서 고장확인서를 보여주었더니,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환불을 원하는지 물었다. 아내는 원하는 모델이 없으니 환불하고 다른 곳에서 사자고 해서 환불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 쇼핑센터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모델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는 밥솥에 보온을 작동시켜 조금 오래 두면 전력 소모도 되고 밥맛도 좋지 않으니 3인용으로 하자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골라 3인용을 주문했더니 이틀 만에 제품이 도착했다. 밥을 해보니 맛있게 지어져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에 밥솥을 바꾸는 경험을 하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우리 시니어들에겐 복잡한 기능이 장착된 비싼 밥솥보다는 값싸고 기능이 간단한 밥솥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기능이 들어가는 만큼 가격은 비례하여 높아지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능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괜히 신경 쓰다가 보면 머리만 아파질 우려가 크다.   첨단 기능이 복잡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지만 질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밥솥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고 쉬운 작동만으로도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으면 된다. 다른 모든 것에서도 본질적 목적 실현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크게 필요치도 않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치렁치렁하게 매달고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에 충실했던 것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후의 삶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도 삶의 본질에 충실한 소박한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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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0-05-22
  • “부자(父子)는 다 계획이 있구나”
      [시니어투데이] “아버지는 28년간 기술자로 성실히 근무하신 멋진 가장이다. 그런 아버지를 지도하신 교수님과 함께라면, 낯선 기술 분야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윤반석(27) 씨는 4월 ㈜오리온 청주공장 설비팀에 입사해 생애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제조 공정에 쓰이는 설비를 유지 보수하는 일이다. 2년 전만 해도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던 터라 “기술직으로 일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지방 4년제 대학을 다니다 졸업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자퇴했다. 취업으로 힘들어하는 선배나 친구들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졸업해도 전공에 맞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반석 씨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건 금호타이어㈜에서 28년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 윤만중(54) 씨였다. 만중 씨가 처음 기술을 배운 건 1991년 폴리텍 전신인 광주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다. 2년제 과정을 졸업하고선 내리 기술 외길 인생을 살았다. 아들의 결심이 서자 윤 씨는 직업전문학교 시절 자신을 가르친 폴리텍 김제캠퍼스 이상근 교수(62)를 찾았다. “내가 배웠던 만큼 아들도 잘 지도해 주실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상근 교수는 36년간 산업설비 자동화 분야 직업교육훈련에 종사한 전문가다. 매년 졸업 철이면 학생들 취업 연계를 위해 한 명 한 명씩 이끌고 기업체로 분주히 뛰어다니는 데, 대학 내에서도 유명 인사다. 그 때문인지 윤 씨 부자(父子) 외에도 이 교수를 찾는 가족 동문 사례가 이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집 인근 광주캠퍼스로 진학을 권유했는데, 결국엔 내가 설득을 당했다”며,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사제 간 연을 이어왔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냐”고 웃으며 말했다. 2018년, 반석 씨는 대학 전공을 뒤로하고, 폴리텍 김제캠퍼스 산업설비자동화과 새내기가 되었다. 통학에만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탓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지만,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반석 씨는 “생소한 분야다 보니 처음에 고생도 했지만, 배우는 재미도 남달랐다”고 말했다. 노력한 성과도 있었다. 2년간 학교생활을 마치고 올해 2월 학점 4.44(4.5점 만점)로 수석 졸업했다. 위험물산업기사 등 국가기술자격증 4개도 손에 넣었다. 반석 씨는 “기술에 대한 아버지의 소신과 교수님의 지도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아직까지 직업을 찾지 못한 친구들에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새롭게 무언가를 배워보길 권유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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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0-05-14
  • 긴급재난지원금 수령 소동과 새로운 희망
    [시니어투데이] 긴급재난지원금의 지원 범위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던 4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미장원에 다녀오더니 지자체에서 지원하기로 결정된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하려면 지역 화폐 카드를 먼저 신청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어차피 신청할 거면 빨리하자고 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남는 게 시간인데 바로 인터넷으로 지역 화폐 신청 방법을 알아보았다. 앱을 다운받아 스마트폰으로도 간단히 할 수 있다고 설명되어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지역 화폐 앱을 다운받아 주소, 전화번호 등 요구하는 자료를 입력하여 먼저 아내 이름으로 신청을 했다. 이어서 내 이름으로 또 한 번 신청을 하고 나서 보니 “신청 확인” 이라는 칸이 보였다. 친절하게도 제대로 신청이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였다.     나는 아내에게 신청이 끝났다고 말하고 신청 확인을 해주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내는 그렇게 간단히 스마트폰에서 신청이 되었느냐며 신기해하며 다가왔다.   먼저 아내의 신청 확인을 해보았다. 그런데 주소를 내가 잘못 입력한 것이다. 아파트의 동을 잘못 입력한 것이었다. 요즘 걸핏하면 아내는 내가 실수하는 것을 볼 때면 “당신도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다” 고 핀잔을 주기 일쑤인데 또 한 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카드가 다른 집으로 가서 남들이 함부로 쓰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 섞인 잔소리를 했다.   우선 걱정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할 터이니 염려 붙들어 놓으라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지역 화폐 홈페이지에 들어가 고객 상담란에 “주소가 잘못 입력되었으니 수정해 달라”고 일단 글을 올렸다.   다음날 마침 잘못 입력한 주소에 사는 지인과 만난 일이 있어서 그 집으로 카드가 배달되면 알려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카드를 기다리고 있다가 방송을 보니 재난지원금은 일반카드나 지역화폐카드나 모두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공연히 지역화폐카드를 신청하느라고 애를 썼던 것 같았다.   며칠 뒤에 아내의 휴대폰에 재난지원금이 입금되었으니 사용하라는 연락이 왔다. 물건을 사고 나니 바로 얼마가 사용되고 얼마가 남았다는 메시지가 뜬다고 아내는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열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시청에 왜 같은 날 신청한 아내는 재난지원금을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소식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도청에 문의하라고 해당 부서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다. 도청에 전화했더니 온종일 계속 통화 중이라는 안내 음성만 들렸다. 답답해서 카드 고객센터에 여러 번 전화한 노력 덕택에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인적사항을 묻더니,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계시는데요? 얼마를 썼고, 잔액은 얼마라고 알려줬다. 내 휴대폰에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 하니 그것은 통신사에 알아보라고 했다.   이렇게 나도 지원금을 받아서 잘 쓰고는 있다. 하지만 국가나 지자체의 재정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만큼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이런 염려도 있었지만 금세 마음을 바꿨다.     지금까지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번 것도 이럴 때를 위한 것이니, 이제부터는 경기가 회복되는 데 이바지한다는 마음으로 현명한 소비에 동참할 작정이다.   시니어들이 어렵다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사용을 기피해서는 안 된다. 비록 어렵지만, 열심히 사용법을 익히면서 사용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돈을 아끼기만 한다면, 경제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명하게 소비에 동참해야 한다.   더욱이나 이런 목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까지 받은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더욱더 힘찬 도약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보자. 분명히 이런 마음의 크기만큼 우리나라의 미래와 우리의 삶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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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인생
    2020-05-11
  • 믿음으로 바라보는 오늘과 내일
    [시니어투데이] ‘코로나19’ 사태로 미사가 중지되기 전 주일 미사 때였다. 영성체를 하러 나가 신부님 앞에서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형제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자리에 들어가다 말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하고 눈여겨보고 있으니 뒤따라 성체를 모신 여자분을 기다렸다가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내가 몸이 불편하기에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순간 몇 해 뒤의 나와 내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요즘 부쩍 다리에 힘을 잘 쓰지 못하고 있다. 앉았다가 일어나려면 바로 일어서지를 못하고 옆에 의자를 붙들거나 한참을 거실 바닥을 짚고 애를 쓰다가 일어서곤 하여 보기에 매우 안타깝다.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무릎에 주사를 맞곤 했는데 6개월이 지났지만 신통치 않다. 관절주사를 맞을 때 통증이 심하다면서 맞지 않고 견디어보겠다고 버티는 중이다. 그러다가 가끔 통증이 심해지면 아예 다리를 오므리지도 못해 부축해주어야 겨우 일어난다.   절뚝거리면서 아침을 준비한다고 서두르는 것을 볼 때는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마음 편할 듯싶다. 서툴지만 내가 밥을 차릴 테니 옆에서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기만 하라고 하면 한사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자기가 한다고 고집한다.   요즘 아내는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어깨가 쑤신다고 하다가 허리도 아프다고 한다.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며 나오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다고 한다. 어쩌다 아침에 일어나 웃으면서 나오면 내 마음도 밝아지고 잠시나마 평온을 찾는다.   나이가 더 들고 다리에 점점 힘이 빠지면 오래지 않아 아내도 저렇게 부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혼자서는 성당에도 나올 수도 없게 될지도 모른다.   병원 신세만 지지 않는다면 부축해서라도 미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픈 데가 없어지기를 기도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한 바람이고 응답될 것을 믿는 신앙 행위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절대자를 의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과 의지가 필요하다. 먼저는 생각에 따른 마음가짐이다. 마음과 신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큰 고비를 넘기고 많은 안정을 찾았다. 생활 거리 두기를 실시하며, 순차적으로나마 초·중·고등학생들의 등교도 결정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는 봄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꽃은 피었고, 산과 들판은 온통 초록으로 번져가며 생명력이 짙어가고 있다.   의료적으로 한숨 돌리고 보니, 이젠 경제가 문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경제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아내도 비록 지금 힘겨운 나날일지라도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그 전제가 바로 나와 아내의 믿음이고 그에 따른 생각과 마음이며 실천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았던가. 언제부터 봄이고 여름이라고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봄이 지나면 분명히 여름이 온다.   아내가 당장 내일부터 완전히 낫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점점 더 좋아질 것을 믿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며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준다”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에 대한 믿음이 바로 나의 기도이며, 나와 아내의 밝은 내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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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7
  • ‘코로나19’로 움츠러든 가슴에 따뜻한 봄이여 오라
      [시니어투데이] 봄이 왔다. 벚꽃이며 진달래꽃은 한창이고 목련은 이미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산, 저 산에는 연두색과 분홍색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혹독한 추위로 움츠리고 있던 나무들이며 풀들이 푸른 희망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서로 내기라도 하듯이 앞다투어 새잎을 내미느라고 바쁘다.   이런 모습을 응원이라도 하듯이 새들은 수풀 속을 들락거리며 짹짹거린다. 들녘은 나날이 더 짙은 녹색으로 물들고, 논밭에서는 농부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여러 가지 농사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봄이 한창인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시린 겨울이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의 습격이 우리를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벚꽃의 향연이 쭉 뻗은 도로를 연분홍으로 물들이고, 들판은 푸름을 더하여 가는 완연한 봄인데 사람들 마음속에는 아직 봄이 오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상상 초월의 피해를 안기고 있는 ‘코로나19’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개학은 물론, 대학교도 개강을 못 하고 있다.   문화센터, 복지관도 석 달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는 문 닫은 상점들이 쉽게 눈에 띈다. 문을 연 상점들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래도 계절의 순환에 따라 어김없이 봄이 왔으니, 얼마나 큰 위로인가. 봄마저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슬펐을까.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와준 봄이 참으로 고맙다.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다가 보니, 마음대로 외출하기도 어렵다. 이렇다 보니 마음 놓고 다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절감하게 된다.   ‘코로나19’가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봄이 찾아왔듯이 아무리 위기가 닥쳐와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는 변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참으로 어려운 형편인데도 우리는 서로 돕고 있다.   의료인들은 망설임 없이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대구로 달려갔다. 도시락을 보냈고, 마스크를 모아서 관공서에 갖다 놓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어려우면 서로 살려고 아우성치며 빼앗으려고 난리가 벌어지기 쉬운데, 한국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재기도 없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상한 나라’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힘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고 있다. 우리 국민이 모두 슬기로운 대처로 이루어낸 성과다.   방역과 진단검사에 대해서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본받고 있다. 한국기업에서 생산한 진단키트는 요구하는 나라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국격이다. ‘코로나19’는 분명히 우리에게 위기이고 아직도 큰 상처를 안기고 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 어려움을 기회로 바꾸어내고 있다.   많이 힘들고 슬픔 또한 매우 크지만, 우리 모두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더 힘을 내야 한다. 서로 위로하고 도와줌으로써 희망을 창출하며 미래로 나가자는 것이다.   봄은 왔는데, 아직도 시린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삶에 하루속히 따뜻한 봄날이 오고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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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9
  • 임권택 감독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벗어나려 애썼다"
      [시니어투데이] 영화에 대한 임권택 감독의 열정이 후배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 5일 방송된 JTBC ‘방구석1열’에는 방송 100회를 맞이해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과 배우 김명곤이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임권택 감독의 ‘짝코’와 ‘서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최근 진행된 ‘방구석1열’의 녹화에서 주성철 기자는 ‘짝코’에 대해 “처음으로 인간적인 모습의 빨치산을 그린 작품으로 ‘웰컴 투 동막골’ ‘공동경비구역 JSA’ ‘공조’의 원조 격이다”라고 설명했고, 이에 김명곤 배우는 “다른 어떤 영화들보다 이념을 넘어선 우리 민족의 비극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임권택 감독은 영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 ‘족보’에 대해 “할리우드 영화를 좇으며 1년에 5편을 찍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찍고 나니, 할리우드 영화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서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10년간의 노력 끝에 ‘족보’를 제작한 후에야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해방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주성철 기자는 임권택 감독의 영향력에 대해 “과거 봉준호 감독이 미래의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영화감독으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고 밝혔다”라며 많은 영화인의 길잡이 같은 존재임을 강조했다. 임권택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해 “한국인이 세계 수많은 좋은 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사실 ‘살인의 추억’ 때부터 ‘언제 일을 내겠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눈에 띄었던 후배 감독이다”라고 전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어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본인에게 영화 좋다는 이야기를 잘 안하는 편인데 봉준호 감독 영화를 보고는 영화가 좋다는 칭찬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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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6
  • 깨어서 꽃을 피우자
      [시니어투데이] 흐르는 세월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코로나19’의 기세도 봄이 오는 길목을 막을 수는 없다. 세월의 흐름은 진리의 불변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기쁨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남녘에서부터 들려왔던 꽃 소식이 이젠 전국에서 한창이라고 바뀌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봄도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느라고 바쁘다. 땅 위에 있는 모든 동·식물도 제 할 일에 충실한 모습이다.   철을 따라 제 할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람도 이 진리에 순응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호흡할 때 보람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   앙상하던 나뭇가지들이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산수유, 목련은 벌써 한창이고 매화, 벚꽃이 앞다투어 피고 있다. 모두 추운 겨울이라는 시련을 이기고 철을 따라 깨어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요즘, 산으로, 들로, 강변으로, 해변으로 가볍게 나섰던 꽃구경이 아무 때나 마음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 사이도 이렇게 됐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만나지 말라고 한다. 만나더라도 악수도 하지 말고, 마스크를 쓴 채로 대화하라는 것이다. 이럴 때 전화로라도 즐겁게 대화도 하고, 서로 격려하며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 어렵고 답답한 시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요즘 나는 꽃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겨우내 동백꽃이 피었다가 지금은 다 시들었다. 그 옆에 있던 철쭉꽃은 1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반은 졌지만, 지금까지 피어 있다. 그러니까 겨우내 집에서 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설날 하루 전에 우리 가족은 서울식물원에 갔었다. 많은 꽃과 나무를 관찰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봉지에 싸여있는 튤립 뿌리를 보았다. 우리는 그 뿌리를 샀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설날 우리는 집에서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들네가 돌아갈 때 튤립 뿌리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얼마가 지났다. 우리 집 화분에 심은 것은 추운 베란다에 두었더니 늦게 자랐고 손녀는 따뜻한 곳에다 화분을 두었기에 꽃이 빨리 피었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 집 서늘한 베란다에 둔 튤립은 이제야 두 송이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빨간 색깔을 띠고 부끄러운 듯 살며시 솟아오르려는 꽃망울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런데 철쭉 화분 옆에서 파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파는 사람들에게 꽃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그저 식자재로만 여겨진다. 그런 파인데 여기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니 하얀 꽃망울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파가 피운 꽃처럼 때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것에서 인정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꽃들을 보고 있노라니,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기쁘다. 나는 꽃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화도 해보았다. 꽃을 피우려면, 차가운 계절 또는 어두운 땅속이라는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굳이 시기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고, 늦게 피는 꽃은 늦게 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앞서서 피는 인생도 있지만, 뒤늦게 피는 인생도 있다. 꽃을 피우는 시기도 천차만별이거니와 심지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는 인생도 많다. 어떤 사람은 꽃은 화려해도 열매가 없는가 하면, 엉뚱한 열매, 못된 열매로 손해를 끼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슨 꽃이냐, 언제 피느냐보다, 제대로 피어서, 충실한 역할로 주변을 환하게 하며 향기를 퍼뜨리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코로나19’에 대한 능동적이고 신속한 대처로 한국이 주목받고 있다. 심지어 미국도 진단키트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선별진료시스템도 모범이 되고 있다. 사재기도 없고, 봉사와 나눔의 물결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고 있다.   6·25동란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뒤늦게 꽃을 피워 아름다운 향기를 퍼뜨리며, 알찬 결실을 거두는 모습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이 시기가 지나가면 대한민국은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한 만큼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나눔과 봉사 그리고 사랑의 꽃을 피워 수많은 행복의 결실을 민들레 홀씨처럼 이웃으로, 다른 나라로 날려 보냅시다. 그리고 그 홀씨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모두 친구가 되어 손에 손을 잡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날을 기대합시다.
    • 인물이야기
    • 나의인생
    2020-03-26
  • 아름다운 나의 미래를 위하여
    [시니어투데이] 나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삶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고 싶다.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봐 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그만한 업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부단한 노력은 물론, 큰 용기와 모험심도 필요할 것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노력 없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나만의 특성을 살려 최선을 다하며 어떤 어려움에도 물러서지 않고 도전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픽사베이   사람에게는 각자만의 특성이 있다. 이 특성을 제대로 살려 가치를 혁신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하는 것에 끼어들어서는 최고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신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며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나만의 특성을 발휘하는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이런 활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며 나의 활동이나 작품을 한 번 더 떠올릴 수 있게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 오로지 나만이 그려낼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다 알지는 못한다. 지금은 당당하게 내세울 것도 없다. 비록 아직은 어리고 부족하지만, 꾸준히 재능을 발견하고 갈고닦아 이를 가치 혁신해 나갈 것이다.   이를 이루어내기 위하여 어떤 어려움이 발생하더라도 반드시 극복해내겠다는 용기와 투지 그리고 결연한 실천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내 존재적 가치를 마음껏 실현함으로써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와 지구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펼쳐나갈 수 있기를 원한다.
    • 교육뉴스
    • 학생들시선
    2020-01-31
  • 은행과 마음의 휴면계좌
    얼마 전 휴대폰에 거래은행에서 보낸 메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열어보니 새로운 앱이 개발되었는데 다른 은행 계좌의 모든 정보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니 필요하면 앱을 다운받아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거 괜찮겠는데.” 솔깃한 마음이 들었다.   주로 이용하는 은행을 비롯해 국민연금이 들어오는 은행, 교통카드 때문에 계좌를 개설한 은행 등 여러 은행의 계좌를 한곳에서 볼 수 있으면 편리하지 않겠는가?   나는 즉시 앱을 다운받아서 열어보았다. 열린 장면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자세한 정보가 펼쳐졌다. 내가 개설해 놓은 여러 은행의 계좌가 모두 나열되어있다. 그런데 생각나지도 않는 여러 은행에 있는 내 휴면계좌들도 눈에 띄었다. 잔고도 나와 있는데 몇천 원도 있고 액수가 큰 것은 이십삼 만원도 있었다. 요즘 경제활동도 못 하는 나에게 생각지도 않은 이십 만원은 큰돈이다.   픽사베이    다음날 읍내에 있는 여러 은행에 들러서 휴면계좌를 모두 정리하고, 잔고는 거래은행으로 송금했다. 옛날 가계수표를 이용하던 계좌는 발행은행의 해당지점으로 가야만 정리된다고 했다. 하지만 잔고도 얼마 되지 않아서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 지점이 없는 은행은 복지관에 가는 날 향남지점에서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편의상 직장이나 거주지 부근에 있는 가까운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여 이용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본의 아니게 몇 십 년간 이 은행, 저 은행으로 옮겨가면서 거래를 하다 보면 까맣게 잊고 있는 휴면계좌가 한두 개는 있을 수 있다.   시니어 여러분, 모두 한번 찾아봅시다. 그리고 단 몇 천 원이라도 잔고가 남아있다면 지금 이용하는 은행 계좌로 옮겨서 이용합시다. 이런 휴면 계좌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벗이나 지인들은 없을까? 한때는 긴요하게 이용했던 계좌들처럼 한창 열심히 만났던 시절에는 다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휴면계좌야 정리하면 되지만, 오랜 세월 잊고 지낸 소중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비록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에서라도 되살려본다면 겨울날 화롯불을 쬐듯 가슴이 따뜻해질 것이다.
    • 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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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30
  • ‘국민훈장-대통령 표창’ 받은 서현영, 생활축구 부흥 일조한 숨은 일꾼
        [시니어투데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으스대는 게 아니라 내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KFA) 생활축구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서현영(79) 옹은 일평생을 두 가지 일에 몰두했다. 하나는 애향사업, 또 하나는 생활축구 부흥이다.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나 6·25 전쟁 때 피난 온 그는 실향민 1세대로서 황해도 연백군 명예군수 직함도 갖고 있다. 이북도민 권익 신장을 통해 국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그는 지난해 10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그런 그가 애향사업만큼이나 애착을 갖는 일은 다름 아니라 생활축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다. 서 위원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5년 동안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엘리트와 생활체육 일원화에 기여하는 등 생활축구 활성화의 기틀을 놓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2016년 대한축구협회와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가 통합된 이후에는 자문위원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활축구 발전을 위해 일했다. ‘KFA 홈페이지’가 2019년 세밑에 서 위원을 만났다. 그 나이 또래가 으레 그러하듯 호적 신고가 늦어 한국 나이로 여든을 넘긴 그는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신다”는 필자의 덕담에 서 위원은 “속은 썩었어요. 축구를 하다가 양쪽 무릎 인대가 모두 끊어져서 수술했습니다”라며 웃었다. - 최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셨어요. 축하 드립니다. “제가 실향민이라 애향사업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북도민을 위한 체육행사, 도민의 날 행사 등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제가 축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축구를 통해 실향민을 하나로 뭉치게끔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황해도 장학회 이사도 맡고 있는데 후진양성을 위해 장학금 모금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 2002년에는 대통령 표창도 받으셨네요. “국민훈장이 이북도민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라면 대통령 표창은 생활체육 발전을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제가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으로서 협회장기, 서울시장기, 육군참모총장기를 두루 다녔는데 그때 문체부 장관께서 그 모습을 좋게 보시고 추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 위원님이 살아오신 과정을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6·25 전쟁 때 피난 내려와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한성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학교를 다니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겨우 졸업했죠. 당시 한성고 럭비부가 유명했는데 저도 럭비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반대로 럭비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게 됐는데 운동을 계속 하고 싶어서 동네 조기축구회를 나가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축구는 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부가 됐습니다.” - 단순히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 체육단체장을 맡게 되셨잖아요. “네, 제가 좋아하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체육단체장도 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부터 서울시 구로구 생활체육회장, 서울시 생활체육회 수석부회장을 시작으로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 체육단체장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을 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상벌위원장도 겸임했는데 상벌기준을 강화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만 해도 생활축구 운동장에서는 싸움이 자주 일어났거든요.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별의별 소동이 일어났죠. 그래서 저는 운동장에서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설을 하면 강력하게 처벌했습니다. 처음에는 처벌 받는 당사자들이 강하게 저항했지만 나중에는 폭력, 욕설 문화가 많이 시정됐습니다. 지금은 운동장에서 즐기는 축구,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많이 정착된 것 같습니다. 정몽규 회장이 2013년 부임 이후 리스펙트 캠페인을 꾸준히 실시한 것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 엘리트와 생활체육 일원화에도 큰 기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전국축구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은 초기부터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두 상위 단체가 일원화되면 자연스럽게 회원종목단체인 대한축구협회와 전국축구연합회도 통합이 되는 것이죠. 당시에 저는 두 단체의 일원화가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가고 있는 것 같아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한 일원화 논의는 꼭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하는 내용이 포함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2015년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들을 일일이 만나며 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상위 단체 통합이 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축구계도 대통합을 이루게 된 거죠.” - 2002 한일월드컵 때는 월드컵 홍보위원으로도 활동하셨어요. “당시 서울시 체육회장과 함께 응원 분위기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국민들이 축구를 통해 하나된 느낌을 받으셨잖아요. 그때 제가 홍보위원으로서 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 생활축구 저변 확대를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정몽규 회장이 부임하면서 대한축구협회 임원진이 젊어졌어요. 이 자체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방향으로 가겠구나 싶었죠. 특히 협회가 디비전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의욕적으로 하고 있는데 생활체육인 입장에서 참 감사한 일이에요. 디비전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정착된다면 생활축구의 저변 확대 뿐만 아니라 엘리트 축구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겁니다. 특히 생활축구 영역인 K5, K6, K7리그에 많은 생활축구인들이 참여했으면 하네요.” - 앞으로 축구 발전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과거에 대학교수님과 함께 생활체육 지도자 육성체계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어느 종목이든 후진 양성이 필요합니다. 저는 후진 양성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이제 저는 마음을 비우고, 모든 걸 내려놨습니다. 인간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삽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욕심을 버리게 되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니까 삶이 편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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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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